20일 설연휴를 앞두고 들뜬 기분에 있던 익구는 친구 청원이와 영화를 한 편 보기로 했다. 당초 계획은 반지의 제왕 3편을 한 번 더 볼 생각이었으나 청원이의 만류로 다른 영화를 보기로 결정했다. 때마침 둘 다 실미도도 안 본 만큼 청원이가 실미도를 보자고 제안했으나 익구는 실미도의 슬픈 결말을 들어 알고 있는 터라 거부하고 말죽거리 잔혹사를 주장해서 가까스로 타협을 보았다. 그러나 말죽거리 잔혹사는 한바탕 웃고 즐기는 가운데 묘한 쓰라림을 남기게 된다. 무지막지한 해피엔딩 영화를 좋아하는 익구로서는 다소 불편했지만 무척 감명 깊었다는 평가다.


영화의 배경은 1978년 말죽거리에 위치한 정문 고등학교이다. 시대적 무게는 영화 곳곳에서 만날 수 있다. 군복을 입고 설치는 교련 선생뿐만 아니라 죄다 군사주의적 폭악스러움과 저열한 차별의식으로 무장한 선생들, 쥐꼬리만한 권력으로 온갖 오만을 떠는 선도부원들을 보는 역겨움, 유신 시대의 그 숨막힘과 더러운 권력에의 비굴함, 인간성을 흔드는 교육 현실까지 어느 하나 마음을 콕콕 찌르지 않는 것이 없다. 그나마 안도의 한숨을 쉬게 만드는 것은 그 속에서 웃음 짓게 만드는 소년들의 이야기이다.


익구는 이른바 특목고라고 불리는 서울외고에서 보냈다. 영화에서 보이는 남자 고등학교의 거칠음과는 무관하게 보냈다. 전형적인 소심한 범생으로 학창시절을 깔끔히(!) 마무리한 기억밖에 없는 익구로서는 영화 속 이야기들의 혼돈에 어지러움을 느꼈다. 같은 과 친구들과는 가끔 논쟁을 벌여봤을 뿐 몸을 부대껴본 적은 결코 없으며, 여남공학이라 남성성이 무한팽창 되지도 않았고, 여성비하적 문화가 함부로 꽃피지 못하는 곳이었다. (물론 아주 없지는 않았다) 운동 같은 육체적 움직임에는 젬병이었던 나는 책상머리에서 굴린 것들로 유희하며, 운 좋게도 과분한 찬사도 적당히 얻어가며 그렇게 고등학교 시절을 보냈다.


영화 주인공들의 청춘은 넘치도록 뜨겁지만, 익구의 청춘은 아기자기하지만 차갑다. 주인공인 범생 김현수가 이소룡의 기운을 받아 열혈사나이로 승격(?)되는 모습을 보인다면 익구는 한결같이 범생원리주의(?)의 길을 걸었고 사내다움에 대한 거부를 천명하는 호사를 부리기도 했다. 현수가 못된 선도부 패거리들을 쌍절곤으로 제압하고 피범벅이 된 채로 터벅터벅 내려오는 걸음의 무거움은 결국 “대한민국 학교 ×까라 그래!”라는 부르짖음으로 폭발한다. 현수가 느꼈던 것이 분노를 머금은 나른함이라면 고등학교 시절 익구를 지배했던 것은 적당한 침묵과 타협으로 일구는 개운함이었다. (물론 그 개운함이 반드시 사전적인 의미로 쓰이지만은 않았지만)


영화 내내 끊이지 않던 폭력적 분위기는 익구를 우울하게 만들었다. 인간 내부에 상당한 폭력적 기질이 있지 않느냐는 자조 섞인 투항을 할 수밖에 없도록 만들게 한다. 세상에 점점 다가가면 갈수록 폭력은 또렷해지고 야만은 선명해진다. 폭력이 부자연스러운 것이라는 익구 신조의 반례들만 쏟아지면서 폭력이 오히려 자연스러운 삶의 양태로 다가온다. 영화의 배경인 유신시대는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지만, 여전히 그 시절의 상흔은 아물지 않고 새끼 폭력들이 미시적으로 기생하고 있다. 여전히 미만한 이 전체주의적 비루함을 걷어내는 일은 너무나 버겁다. 현수의 욕지기와 비슷한 고함이 몇 번 반복되다가 잊혀지고 상처는 재생산될지도 모른다.


영화는 마지막 장면을 익살스럽게 처리함으로써 지난날의 그 암울한 기억들을 편하게 기억하자고 말한다. 과거는 미화되기 쉽지만 지나간 것에 대한 그리움을 간직하는 것과 더불어 지난날의 잔혹함을 잊지 않고 새겨두는 노력이 있어야 할 것이다. 망각을 거스르는 의지만이 잔혹함의 대물림을 막을 수 있다. 함께 영화를 보고 나온 청원이는 재미는 있는데 뭔가 좀 내용이 없는 것 같다며 투덜거렸다. 그러나 익구는 엿보고 싶지 않은 우울한 과거를 돌아보면서 아직 크게 나아가지 못한 오늘날의 모습을 반성하는 좋은 기회가 되는 맛깔스러운 영화라고 호평을 했다. 익구가 해피엔딩도 아닌데다 결말이 모호한 영화에 좋은 평을 내리는 것은 무척 이례적인 일이다. - [憂弱]
Posted by 익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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