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로를 줄이는 법(?)
법 2012. 1. 21. 18:51 |2011년 2학기 사회보장법 과제로 ‘과로’에 대한 자유로운 글쓰기가 있었다. 고민 끝에 내 오랜 화두인 ‘노력에 대한 보상’이 과로를 줄이는 하나의 방법이 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봤다. 공정한 평가는 엄정한 상대평가만으로 달성할 수 없을 것이다.
1.
과로를 줄이는 해법 가운데 하나로 ‘노력에 대한 보상’을 제시하고자 한다. 과로를 줄이자며 ‘목적을 이루기 위하여 몸과 마음을 다하여 애를 쓰라니[努力]’!!! 일견 모순되는 소리로 들리겠지만 능력주의 보상 체계에 대한 보완책으로 노력에 대한 보상 체계를 구축하는 것이 우리 사회의 만연한 과로 현상을 해소하는 하나의 방책이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능력주의의 보상 체계는 뛰어난 ‘능력’은 대부분 빼어난 ‘성과’로 드러나기 마련이므로 그 성과에 대해 보상함을 골자로 한다. 유능과 성공 사이의 상관관계는 대체로 인정된다. 그런데 ‘능력’이 누구나 갖출 수 있는 성질의 힘인지에 대한 의문이 남는다. 왜냐하면 능력이 노력에 의해 계발된다고 하더라도 거기에 한계가 있음을 사회 구성원 대다수가 동감하기 때문이다. 만약 그 한계가 과도하게 커서 능력과 노력이 합치하는 정도가 너무 작다면 능력주의 사회의 대원칙은 흔들리게 된다. 개념의 혼란을 막기 위해 ‘능력(재능)’은 후천적인 ‘노력’과 선천적인 ‘재주’로 나눌 수 있다고 개념 정의하겠다.
능력이 노력보다는 재주에 의해 좌우된다면 능력주의 사회는 선천적인 요소가 크게 기능하는 셈이다. 노동소득조차도 이런데 재산소득으로 눈을 돌리면 문제는 더 심각하다. 재산소득은 부모로부터의 상속이라는 요인이 크게 작용하기 때문이다. 결국 재주와 상속의 혜택을 입지 못한 사람이 마지막으로 기댈 언덕이 바로 노력이며, 이것이 넘치면 과로가 된다. 과로가 대개 열심히 노력하는 보통 사람들에게서 자주 발생하는 것도 이런 이유 때문이다. 드워킨의 표현대로 자신의 의사에 상관없이 주어진 ‘재주에 둔감해지는(endowment-insensitive)’ 사회를 설계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재주에 둔감해진 만큼 노력에 민감해지기를 제안한다.
2.
사회 전체적으로 과로를 줄이는 아이디어로 능력과 필요의 대립 구조에서 노력의 가치를 도두볼 것을 제안한다. 피터 싱어는 『실천윤리학』에서 타고난 능력보다는 필요와 노력에 따른 지불의 원칙을 수용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능력과 필요 사이의 간극을 노력으로 메워야 한다고 보고 “그들의 능력이 어떠하든 간에 그들의 능력의 상한선 가까이까지 일하는 사람들에게 보다 많은 돈을 지불할 필요가 있을 것”이라고 언명했다. 싱어는 필요에 따른 분배의 단점을 극복하기 위해 노력에 따른 유인을 추가했다.
그의 논설을 곧이곧대로 받아들여 적용해보자. 갑의 잠재적인 능력이 100이고, 을의 잠재적인 능력이 50이라고 가정한다. 갑은 60%만 노력하더라도 을이 100% 노력한 것보다 더 많은 성과를 남긴다. 싱어가 구체적인 예시를 들지 않아서 단정하기 어렵지만 자기 능력의 상한선까지 오른 을에게 이전보다 더 많은 보상을 해줘야 함은 분명하다. 또한 을이 자신의 잠재적인 능력마저 뛰어넘는 120%의 초인적인 노력을 통해 갑과 같은 60의 성과를 낸다면 갑보다 더 큰 칭찬을 건네야 할 것이다.
능력을 노력과 재주의 합이라고 볼 때 노력을 어떻게 측정하느냐 하는 문제가 남는다. 두 요소의 총합인 능력을 측정하는 기준조차 마련하기 힘든 판국에 그 능력을 노력과 재주로 가름해서 그 둘의 비율을 따지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갑-을의 예처럼 보상 체계가 수립된다면 갑은 자신의 재주를 감추려는 전략을 취할 유혹에 빠진다. 갑은 자신의 잠재적인 능력을 을 정도라고 꾸미고 60%의 노력만 기울인다면 종전보다 더 높은 평가를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노력에 따른 유인이 너무 커진다면 이처럼 재주를 감춰서 노력이라고 분칠하고 잠재적인 능력에 도달하려는 노력을 소홀하게 된다. 갑이 60%의 노력보다는 70%의 노력을 기울이도록 이끌어서 사회적인 후생을 증가시키는 것이 좀 더 바람직하다고 할 때 재주 숨김 현상은 줄여야 한다.
3.
결국 우리는 재주 많은 사람이 자신의 능력을 최대한 발휘한 만큼 보상을 받는 것을 인정해야 한다. 노력은 이러한 인정과 더불어 고려할 요소다. 능력 있는 사람의 성과에 미치지 못했지만 제 나름대로 노력한 사람에게 현재 수준보다는 높은 수준의 보상을 주도록 설계해야 한다. 다만 재원이 한정되어 있다고 가정할 때, 노력한 사람에게 돌아갈 재원은 필요에 따른 분배의 몫을 유지한 채 유능한 사람에게 주던 보상에서 일부를 끌어와야 한다. 이를 통해 보상의 차이가 성과의 차이보다 현격히 차이나지 않도록 조정할 수 있다.
이러한 조치가 현행 능력주의 보상 체계의 상층부에 위치한 유능한 사람에게 반드시 불리한 것도 아니다. 엄격한 능력주의는 자칫 잘못하면 1등이나 2등에게만 초점을 맞추는데 비해 노력을 통해 중상위권에 다다른 사람을 위한 보상 체계에 신경을 쓰게 되면 10등, 20등을 하더라도 상당한 보상을 얻을 수 있다. 유능한 사람이라고 해도 매번 1등이나 2등을 할 수 없는 노릇이다. 그렇다면 10등, 20등까지도 충분한 보상을 하는 시스템이 사회적 보험 역할로 작용하는 것을 마냥 반대할 일은 아닐 것이다. 이를 통해 전반적인 과로 수준이나 과잉 경쟁의 강도를 낮추기를 기대한다.
4.
후천적인 노력의 가치를 재조명했더라도 의문점이 생긴다. 정의하기에 따라 노력도 상당 부분 선천적인 재주의 성격을 지니기 때문이다. 노력이라는 재능이 오로지 후천적으로 계발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의사가 아닌 우연적인 이유로 노력을 싫어하는 성품을 부여받을 수 있다고 반박할 소지가 다분하다. 그런 속성을 부인하지 않는다. 다만 재주보다는 노력이 우연성이 좀 덜하고, 보통 사람도 습득할 수 있는 재능이라는 점에 주목할 따름이다.
노력의 적극적 재조명으로 말미암아 상위 1%가 아닌 상위 10%, 20%까지 보상 체계의 접근성이 높아진다면 재주가 모자란 사람과 노력이 부족한 사람도 도전할 동기 부여가 될 것이다. 1등에 도전하기는 힘들어도 10등, 20등은 도전해볼 만하다고 용기를 북돋을 수 있으니까 말이다. 그렇다면 또 다른 과로 유발요인이 되는 것은 아닐까 하는 우려가 생긴다. 그러나 다양한 분야에서 여러 종류의 경쟁을 설계하고, 노력에 대한 보상이 정착한다면, 적어도 열심히 사는 보통 사람들은 적당한 강도의 경쟁을 유지할 수 있으리라 전망한다.
5.
국제중이나 자율형 사립고 입시는 추첨을 마지막 전형으로 채택했다. 추첨제는 정부가 수월성 교육을 목표로 하는 학교를 도입하면서 사교육비 증가에 대한 우려가 높아지자 고육지책으로 등장했다. 사교육을 조장하지 않겠다는 점을 부각하는데 급급했을 뿐 추첨을 결단한 것에 대한 철학적 고려가 부족한 듯싶다. 의미 부여를 하자면 시험이나 경시대회 성적으로 1배수를 뽑는 것을 지양함으로써 경쟁의 압력을 완화하고 불필요한 과로를 절감하려는 목적을 긍정적으로 검토할 만하다.
나는 추첨제의 부분적인 도입이 노력에 대한 보상 체계를 수립하는데 부합한다고 생각한다. 추첨제를 1%에 대한 보상에서 10%, 20%에 대한 보상으로 늘리는 대표적인 수단으로 활용할 수 있다고 본다. 노력을 해서 이룬 성과에 따른 정당한 차별이라는 대원칙을 훼손하지 않는 선에서 추첨제를 적용하는 것도 과로를 줄이는 방법이 될 것이다. - [無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