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8일 익구는 영어학원을 가는 길에 함께 수강하는 친구 청원이와 영어학원 결석을 극적으로 합의했다. 결국 동대문역에서 내릴 것을 5호선 광화문역으로 행선지를 바꾸어 교보문고로 향했다. 익구는 교보문고에 들어서자마자 느껴지는 탁한 기운에서 과도한 난방비 지출을 가슴 깊이 구박했다. 함께 서점을 둘러보던 청원과 익구는 결국 서로의 관심사가 너무나 다르다는 것을 실감하고 알아서 책들을 둘러보기로 결정했다.


익구는 교보문고를 들어서면 가장 먼저 철학 분야를 훑어본다. 읽지도 못할 난해한 책들을 들었다 놨다 하면서 철학소년으로서의 지난 시절을 추억하는 듯했다. 특히 경외하는 스승인 칸트 관련 서적들은 늘 똑같이 꽂혀있음에도 불구하고 그냥 맘이 설렌다는 특이한 반응을 보였다. 다음으로는 근처에 있는 경제분야 책들 중에 쉽고 재미난 것이 없을까 뒤적여 보지만 역시 선뜻 손이 가는 책이 없음을 느꼈다. 유명하다 싶은 입문 서적들은 일단 충동구매로 확보해둔 터라 딱히 더 추가할 책이 없어 보이는 반응이다. 다음으로는 정치학 서가에서 사회학 서가까지 이어지는 사회과학 분야를 주욱 돌아보았다. 역시 딱히 눈에 띄는 것이 없어서 몇 권 꺼내 보다 터무니없는 가격에 기겁하며 다시 집어넣고 말았다.


익구는 맨날 서점만 같이 가면 나올 줄 모른다며 타박하는 청원이의 등쌀을 감안해 이번에는 1시간만에 이 한바퀴를 돌아보는 속도를 냈다. 익구 집 책꽂이 꽂혀있는 수많은 충동구매 도서들이 아직도 간택(?)되기만을 기다리고 있는 데로 서점만 가면 알 수 없는 유혹에 이끌려 한권씩은 사들고 오는 익구를 보며 청원이는 병이라며 혀를 끌끌 찼다. 결국 서울대학교 출판부에서 나온 [정치경제학과 경제주의]라는 얄팍하고 곱상한 경제 개론서를 구매했다. 이번에도 역시나 ‘경제주의’라는 단어에 혹해서 충동구매했다는 평가다.


교보문고 회동을 즐거이 마치고 익구는 새터 회의 관계로 학교로 향했다. 새벽 5시까지 술 마시고 놀았음에도 불구하고 숙취 현상이 그리 크지 않은 것에 내심 만족했지만, 회의 내내 했던 말 또 하면서 이것저것 중구난방으로 이야기를 꺼내는 증세를 보여 회의 참가자들을 대략 아리송하게 만들었다. 여하간 회의도 단란하게 잘 마치고 집에 가는 길에 유니스토어에 들려 평소 점찍어 두었던 [시장의 도덕]이라는 책을 구매했다. 이 책 역시 제목과 서문을 읽고 충동구매했다는 지적이 자자하다. 그러나 익구는 인터넷 서점에서도 절판된 것이라 대학서점에서 재고 남았을 때 확보해둔 소장가치가 있는 책이라며 반박했다.


그러나 문제는 이 책을 마지막으로 그간 보유하고 있던 문화상품권을 모두 소진했던 것이다. 6, 7장 정도 보유하고 있던 문화상품권이 한달 만에 동이 난 것을 두고 논란이 일고 있다. 혹자는 익구에게 문화상품권을 맡기는 것은 고양이에게 물고기를 맡기는 격이라며 이미 예견된 결과라고 논평했다. 또한 삼월에 개강하고 대학 교재를 사기 위해 남겨 두겠다던 계획이 물거품이 된 것에 대한 반발도 예상된다. 그칠 줄 모르는 도서구매벽을 치유하기 위한 특단의 대책이 필요하지 않느냐는 주장이 다시 제기될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익구는 이런 문제의식에 통감하면서도 새로 사온 책들을 책꽂이에 꾸역꾸역 쑤셔 넣으며 흐뭇해하는 모습이다. - [憂弱]
Posted by 익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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