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화민국 생각

사회 2012. 8. 5. 07:09 |

중화민국(Republic of China)은 대만의 공식 국호이다. 여당인 중국국민당은 중화민국을 공식 국호로 존중하는 반면에 야당인 민주진보당은 사실상의 국호인 타이완(Taiwan)에 애정을 품는 편이다. 국공내전에서 패해 중국 본토에서 건너온 국민당 세력과 대만 토착인이 주축인 민진당 세력의 차이를 나타내는 지점이다. 2000~2008년 민진당의 천수이볜(陳水扁)이 총통으로 재임하던 시절에는 타이완을 공식 국호로 삼아 타이완 명의의 유엔 가입을 추진하기도 하였다. 이는 중국으로부터의 독립을 지향하는 의미가 컸다.

 

중화민국은 1949년부터 1971년까지 유엔 회원국이다가 중화인민공화국(People's Republic of China)이 유엔에 가입하면서 회원국 지위를 잃었다. 중화민국은 눈물겹게 유엔 재가입을 시도하고 있지만 중국의 강력한 반대에 막혀 번번이 실패하고 있다. 민진당 정권이 타이완이라는 이름으로 새로운 국가의 신규 가입 형식을 꾀한 것마저도 무산되었다. 명백한 주권국가인 중화민국의 유엔 가입이 좌절되는 건 국제사회의 부끄러움이라고 생각한다. 2008년 3월에는 총통선거와 함께 민진당이 발의한 타이완 명의의 유엔 가입안과 국민당이 발의한 중화민국 명의의 유엔 복귀안을 두고 국민투표를 실시하였으나 투표자수가 과반수에 미달하여 두 안건이 모두 부결되기도 하였다.

 

2012년 1월에 치러진 제13대 대만 총통선거에서 대다수의 대만 기업인들이 성명 등을 통해 국민당의 마잉주(馬英九) 후보를 지지했다고 한다. 중국에서 사업을 하던 대만인들이 투표를 하기 위해 비행기로 고향으로 몰려간 것도 박빙이라고 예상되던 선거 판세에 큰 영향을 미쳤다. 천수이볜 집권 시기에 대만의 독립을 둘러싸고 중국과 마찰이 잦았던 탓에 대만 경제에도 악영향을 끼쳤다고 보고, 중국과의 경제적 협력을 강화하자는 대만 경제계의 주장이 일반 국민들에게도 공감대를 얻어 마잉주 후보가 재선에 성공했다.

 

하지만 민진당의 차이잉원(蔡英文) 후보가 내세운 대만의 장래는 대만인들이 민주적 절차에 의해 결정한다는 ‘대만 컨센서스(臺灣共識)’에 대한 지지도 만만치 않음이 확인되었다. 천수이볜이 대만과 중국이 각각 한 개의 국가라는 뜻의 ‘일변일국론(一邊一國論)’을 주창하여 양국이 긴장관계를 불러일으킨 바 있기 때문에 차이잉원 후보는 다소 수위를 조절한 느낌이다. 중국과의 경제적 교류를 확대하는 것에 동감하면서도 대만의 자주와 민주주의를 건사하고자 하는 대만 국민의 복합적인 마음을 읽을 수 있다.

 

중국은 줄곧 대만은 중국 영토의 일부분으로 보고 하나의 성(省)쯤으로 간주하는 ‘하나의 중국’ 원칙을 고수하고 있다. 패주한 국민당 역시 다른 의미에서 하나의 중국이라는 입장을 견지했다. 본토 수복의 가능성이 희박해진 시점인 1992년, 국민당 정권은 홍콩에서 공산당 대표를 만나 92컨센서스(九二共識)을 합의한다. 하나의 중국을 인정하되 해석은 중국과 대만 각자에 맡기고 각자의 명칭을 사용하는 ‘하나의 중국, 두 개의 해석(one China, two interpretation)’이라는 내용을 담고 있다. 국민당 입장에서는 사실상 불가능해진 정치적 통일은 뒤로 미루는 명분을 챙기면서, 경제적 통합을 통해 경제를 부흥시키겠다는 실리를 선택한 것으로 보인다. 전쟁을 벌였던 반공주의자였던 국민당 세력이 오늘날 친중 노선을 내달리는 것은 고도의 통일전술일까, 이데올로기의 허망함일까.

 

냉엄한 국제사회에서는 ‘하나의 중국’을 중화인민공화국의 뜻에 따라 해석되고 있다. 2012년 런던올림픽에서 다시금 확인되었지만 국제행사에서는 중화민국이나 타이완 대신 차이니스 타이베이(Chinese Taipei)로 나라이름을 표기해야 한다. 실지(失地)를 수복하지 못한 중화민국의 타이베이 정부라는 의미이기 때문에 국민당 정권의 ‘하나의 중국’ 기조에도 부합하는 측면이 있기는 하지만 말이다. 또한 대만의 국기인 청천백일기(靑天白日旗)와 국가(國歌)를 사용할 수 없다. 올림픽 개막을 축하해 런던 시내에 걸렸던 청천백일기가 사흘 만에 철거된 것도 중국의 입김 탓이다. 2004년 아테네 올림픽 태권도 종목에서 대만 스포츠 사상 첫 올림픽 금메달을 땄을 때도 시상식에서 대만올림픽위원회 깃발이 올라가고 국제올림픽위원회(國旗歌)가 울려 퍼졌다. 이번 올림픽에서 대만의 선전을 응원하면서도 서글픈 광경이 재연되는 것은 가슴이 아프다.

 

올해는 한ㆍ중 수교 20년이면서 한ㆍ대만 단교 20년이기도 하다. 대한민국과 중화민국은 1948년에 국교를 맺었으나 1992년 노태우 정부는 북방외교의 일환으로 중국과 전격적으로 수교하면서 단교했다. 1992년 8월 24일 한국과 대만의 단교에 따른 조치로 서울 명동 대사관 및 부산 영사관의 중화민국 국기와 현판을 한ㆍ중 수교 발표 후 72시간 내에 철거할 것을 통보하는 것으로 양국의 공식 관계를 끝이 났다. ‘하나의 중국’ 원칙을 관철하는 중국과 수교를 하기 위해 대만과의 단교는 불가피한 조건이었지만 한때 ‘자유중국’이라는 애칭으로 부르던 이 나라를 매몰차게 버려야 했던 것은 씁쓸한 일이다.

 

장제스(蔣介石)는 우리의 독립에 적잖은 지원과 격려를 해줬고, 유엔에서 쫓겨나기 전까지 우리의 입장을 많이 대변했다고 한다. 일제강점기에서 대한민국 임시정부를 지원한 나라, 한국전쟁 당시 파병해준 나라와의 단교는 아무리 정중하게 이뤄졌더라도 대만 사람들에게 깊은 상처가 되었다. 2010년 광저우 아시안게임 때 대만의 태권도 선수 양수쥔(楊淑君)이 반칙패를 당하자 중국 선수의 우승을 위해 한국 심판이 개입했다는 허위사실이 유포되면서 대만 내 반한 감정이 고조된 적이 있다. 해프닝으로 끝날 일이 이렇게 번진 것을 보면 그간 우리가 대만을 홀대한 영향도 작용하지 않았을까 싶다. 양국의 경제교역 규모도 큰 만큼 국익과 실리 차원에서도 교류를 좀 더 넓혀나가길 희망한다.

 

1600년대 이래로 늘 스페인, 네덜란드, 일본 등 외세의 침략에 시달렸던 대만인들의 독립 의지에 심정적으로 동감하지만, 국호만큼은 타이완보다는 중화민국을 편애한다. 아시아 최초의 민주공화국인 중화민국의 역사를 아끼기 때문이다. 중화민국의 면적은 36,191㎢, 중화인민공화국의 면적은 9,596,961㎢로 중화민국은 중화인민공화국 영토의 0.0038% 수준에 불과하다. 하지만 이 작은 땅에서 표현의 자유, 인권의 신장, 평화적 정권교체 등이 이뤄지면서 중국과는 다른 발전 모델을 제시하고 있다. 양안 관계는 변형된 중화주의라고 할 만한 중국적 예외주의에 대항하는 가치관의 다툼이기 때문에 풀기 어려운 문제인 듯싶다.

 

중화민국을 고찰할수록 우리나라에 시사 하는 바가 참 많다. 가령 정치적 접근과 경제적 교류를 구분하려는 시도는 남북관계에서도 응용할 점이 적잖다. 대만의 중국에 대한 경제적 예속은 결국 정치적 예속을 가져올 것이라는 지적도 충분히 수긍하면서 말이다. 무엇보다 민주공화국 시민으로서 사는 것이 마냥 쉬운 일이 아님을 중화민국은 묵묵히 웅변하고 있다. 언젠가 중화민국이 중국의 구심력을 극복하지 못하고 현재의 민주주의 체제를 상당 부분 수정하게 되는 날이 온다면 아시아 민주주의의 자존심을 우리가 이어나가야 하지 않겠는가. - [無棄]

Posted by 익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