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4년 2월 16일 ~ 18일 2004 새내기 새로배움터(이하 ‘새터’)가 막을 내렸다. 새터 이야기를 작년 12월 초부터 시작했으니 두달 간은 새터에 시달렸지만... 너무도 짧고 허망하게도 2박 3일은 지나가 버렸다. 처음부터 끝까지 학생들이 기획하고 참여하는 행사인 새터는 본디 어설프고 모자르게 마련이지만... 내가 책임지고 준비한 이번 경영대 새터는 여러모로 부족하고 아쉬운 점이 많다.


내가 좀 더 신경 쓰고 챙겼다면 좀 더 알찬 새터를 만들 수 있었을 텐데 내 게으름 때문에 못다 이룬 일들이 한둘이 아닌 것 같다. 다양한 사람들이 모이고 만나는 새터인 만큼 새터를 기억하는 것도 갖가지 빛깔들이 있을 것이다. 개중에는 새터의 부족함, 잘못된 모습들이 더 기억에 남을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런 것들은 다 허접한 학생회장인 나의 탓으로 돌려졌으면 좋겠다. 그간 못난 사람이 시키는 일 묵묵히 잘 도와준 03학번 후배님들, 새터에 열심히 참석해준 04학번 새내기들은 그저 좋은 기억만 간직하기를 바란다. 모든 잘못들은 내가 걸레가 되어 쓱싹쓱싹 훔쳐내고 싶다.


새터는 기본적으로 가장 위험부담이 높은 행사다. 학생회 사업 중에서 가장 먼저 맞부딪치는 행사임에도 불구하고 규모가 가장 큰 행사이기 때문이다. 웬만한 학생회 일꾼이 아니고서는 하나부터 열까지 잘 모르고 돈은 어떻게 써야하고, 뭐를 어떻게 준비해야할지 여기저기 물어서 채워나가야 하다보니 이래저래 삽질을 하기 십상이다.


그러나 이런 새터의 위험성과 비례해서 일년 행사 중에서 가장 참여율이 높다는 특징도 있다. 물론 9월에 있는 고연전도 엄청난 참여율을 보이고 있기는 하다. 그러나 경기에 열광하고, 응원에 미치는 고연전이라고 해도 낯설음과 설렘이 교차하면서 제 돈 내고 2박 3일간 어디론가 떠나서 새로운 사람과 뒹구는 새터의 위상을 따라잡지 못할 것이다. 새터 안가면 왕따가 되지 않을까 걱정하는 것들도 새터의 무시 못할 위상 때문이리라. 단지 처음이라는 이유만으로도 새터는 대학 한해살이 중에서 가장 큰 영향력을 가진다.


이렇게 거창하게 풀어놓지만 사실 조금 호들갑을 떠는 감도 없잖아 있다. 하지만 귀차니즘들을 뚫고 짬을 내어 회의를 하고 발로 뛰는 과정들 하나하나가... 지나가면 손해보는 장사 같아도 마냥 미워할 수만은 없는 기억이 되어 버린다. 경영학도로서 새터 준비에 발 담그는 것이 손해보는 장사가 될 수 있다는 것을 직감으로 느낄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담근 발을 차마 빼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어서 이렇게 이어지고 있는 것이 아닐까라는 생각이 든다. 반 일꾼들이 자꾸 손해 보는 일을 하는 것 같다고 하소연할 때 속 편히 맞장구를 치지는 못했지만 말이다.


작년 12월 기말고사가 다 끝난 금요일 오후에 새터준비위원회 구성을 위한 회의를 했다. 중앙 사무국 회의를 들어가서 새터 실무를 총괄해줄 새터준비위원장을 선임하는 것이 가장 중요한 문제였다. 아무래도 잡일들의 연속이라는 것을 다들 눈치채고 선뜻 자원자가 보이지 않았다. 그러니 다행스럽게도 D반 부반대표였던 03학번 이재희군이 주위의 권유를 뿌리치지 못하고 맡아주기로 하였다. 이렇게 하여 경영대 사무국장 겸 새터준비위원장 겸 D반 부반대표라는 초호화 감투가 등장하게 된다.^^; 사실 이번 새터에서 재희의 도움이 없었다면 아무것도 할 수 없었을 것이다. 본의 아니게 많은 시간과 노력을 빼앗았는데 정말 미안하고 고맙다.^^


새터준비위원장을 뽑고 사무국 회의가 시작되면서 새터 준비가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작년에 갔던 강원도 평창이 일부 단점에도 불구하고 괜찮아서 다시 갈까 생각도 했지만... 기획사는 강원도 속초 일대를 들고 나왔고 결국 강원도 속초 사조리조트라는 곳으로 최종 결정되었다. 장소 결정이 끝나고 이제 세부적인 내역들을 산정하기 시작했다. 가장 기본적인 예상인원 산출에서 술 베팅 같은 문제들이 바로 그것이다. 다행스레 2003 새터도 깊숙이 관여했던 터라 일단 작년 기준으로 가감을 하기로 해서 비교적 수월했던 것 같다.


예상인원은 400명이라고 잡았는데 실제 새터에 참석한 인원은 480명이 넘었을 것으로 추산된다. 새터를 마치고 학교로 오는 11대의 버스가 11번 버스가 몇 석 남은 것을 빼고는 거의 꽉 차서 갔으니 말이다. 준비한 입장에서는 의도하지 않은 대박이 터져서 뿌듯하기도 하지만... 물품들도 부족하고 숙소 환경도 만족스럽지 못했을 것을 생각하니 미안한 점이 한 둘이 아니다. 과연 이만한 인원들이 다음 새터에서 모이겠느냐는 자만심도 조금 생기기도 했지만 말이다.


술 같은 경우도 400명 예상하고 작년과 비교해서 산정했다. 2003 새터 때 소주 25상자, 막걸리 30상자(750ml 들이), 맥주 42상자였던 것이 2004 새터 때는 소주 40상자, 막걸리 40상자(750ml 들이), 맥주 3상자(패트병 6개 들이)로 큰 폭의 변화가 있었다. 일단 작년 새터 때 맥주가 남고 소주가 모자랐다는 평가와 막걸리가 부족했다는 평가를 수렴했다. 그러나 날로 늘어가는 술 못 마시는 이들을 위해 일정량의 맥주를 확보해야 한다는 의견이 소수여서 맥주가 상품용으로 최소한도로 책정된 것은 아쉽다. 내가 알아보지는 못했지만 술을 잘 못마셔서 곤혹을 치러야 했던 새내기들이 분명 적잖이 있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여하간 새터가 끝나고 돌아보니 소주나 막걸리가 모자랐다는 말을 들리지 않을 것을 보면 다행스러운 일이다. 예상인원보다 수십명이 오바했음에도 불구하고 다행스레 넘어간 것을 보면 확실히 술을 적게 마시는 문화가 확산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새내기들이 내게 가장 많이 물어보고 걱정한 것도 술을 강제적으로 마시게 하나요, 술을 못 마시는데 어쩌죠... 이런 것들이었기 때문이다. 나는 절대 그렇지 않다며 너무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고 둘러댔지만 모든 방에서 술을 강권하는 장면이 벌어지지 않았다고 장담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술 마실 자유가 있다면 술 안 마실 자유도 있다. 모든 주당들은 그 점을 명심해야 할 것이다.^^


새터 준비를 하면서 가장 힘들었던 것은 다름 아니라 각 반 일꾼들에게 연락해서 회의 일정을 맞추는 일이였다. 다들 바쁘게 사는 친구들인데 비는 시간 맞춰서 회의 한 번 열기가 녹록지 않았다. 하물며 방학중인데 학교까지 와서 잡스런 회의 잠깐 하러 들르라고 하기가 참 미안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온라인 회의는 단 한 번만 열고 모두 오프라인에서 회의를 연 것은 내가 아직 얼굴 맞대고 이야기 나누는 것을 좋아하는 아날로그적 감수성을 그리워하고 있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남한테 무언가 강제하는 것을 극도로 싫어하는 나이지만 회의 오라고 통보하고, 늦는다고 닦달하는 것은 참 고역이었다.^^; 그래도 열심히 회의에 참석해준 03학번 새터준비위원님들이 고마울 따름이다.


이제 대강의 윤곽이 잡히고 2월 3,4일로 경영대 LT를 다녀왔다. 가서 주로 한 일은 새터 답사와 새터 실무 논의였다. 공간들을 열심히 나눴지만 막상 답사를 가서 보니 반별 공간이 턱없이 부족했다. 아쉬운 대로 함께 가는 단과대와 공간을 나누고 경영대 각 반별 공간을 나눴다. 다음으로 가장 중요한 안전대책에 대해 논의를 나눴다. 여러 가지 이야기를 나눴지만 실제로 크게 지킨 것은 없는 것 같다. 그러나 각 방의 안전은 각 방이 책임진다는 대원칙은 확실히 지켜져서 2박 3일간 안전 걱정 없이 보낸 것 같다. 철저한 출입통제 등을 기획했지만 내 도가적 습성이 폭발해서 흐지부지되었고, 매시간 인원보고도 없던 일이 되어버렸다.


경영대 LT를 마치고 본격적인 새내기 연락에 들어갔다. 확보한 새내기 연락처를 각 반별로 분배해서 새터에 대해 알렸다. 이번 새터에서 엄청난 인원이 몰린 것은 높은 재학생의 참여와 더불어 새내기들의 열성적인 참여가 합쳐진 결과다. 이 두 개가 한꺼번에 일어났다는 점에서 나는 행운아임에 틀림없다.^^ 물론 이 행운은 어디까지나 모든 이들의 노고의 산물이기는 하지만 말이다. 각 반 03학번들이 개별 연락을 하는 사이 나 또한 04학번 커뮤니티나 전자우편, 쪽지를 통해 새터에 대한 홍보와 문의사항을 받았다. 인터넷 중독자인 나로서는 이런 일은 그리 어렵지 않게 뚝딱 해치울 수 있었다.^^;


새내기 연락들을 돌리고 온라인 공지를 띄우는 동시에 본격적인 새터비 수납이 시작되었다. 작년에도 새내기 새터비를 걷었던 터라 익숙하게 통장정리와 입금확인을 했다. 사실 새터 결산이 끝나는 그 날까지 나를 괴롭힌 것은 적자의 압박이었다. 회계학적 보수주의에 따라 최대한 비관적으로 계산한 새터 재정 운영은 나를 내내 괴롭혔다. 아마 모든 새터준비위원들도 걱정이 태산 같았을 것이다. 다행히 예상을 웃도는 참가인원으로 인해 새터비를 많이 걷혔고, 각 반에 작년 새터와는 달리 풍성한 뒤풀이비까지 남기는 쾌거를 이뤘다. 40만원이라는 손망실비를 지불하고서도 끄떡없었던 이번 새터는 정말 재정적으로도 성공을 거뒀다.


새터 당일날 아침 잠을 설치다 새벽에 눈을 떴다. 학교에 가서 먼저 점검할 일들을 확인하고 짐을 꾸린 뒤 학교를 향했다. 사실 나는 메모하는 습관이 없고, 그저 이면지를 사용해서 여기저기 끄적이는 수준이라 급히 할 일도 종종 빼먹기도 했다. “기억력이 좋은 머리보다도 무딘 연필이 더 낫다”는 독일 격언이나 총명불여둔필(聰明不如鈍筆)이라는 한자성어를 들먹이지 않아도 기록하는 습관은 어느 정도 들이는 자세가 필요하다. 다행히 수집욕이 있어서 잡글을 잘 모아두는 것은 잘 하니 그나마 다행이지만 말이다. 여하간 내가 까맣게 있고 있던 것들은 03학번 후배님들이 상기시켜 주고 해가며 빠짐없이 꾸렸던 것 같다.


여기저기서 연락이 빗발치고 나도 여기저기 연락하며 정신이 없는 와중에 이런저런 일들을 해치우고 새터 중앙판 행사 장소인 노천극장으로 향했다. 새터비 현장납부를 하면서 새내기들의 학번과 반을 알려주고, 술과 기념품 같은 물품들을 분배해서 나르는 등의 일들이 이어졌다. 새터 중앙판 행사를 마치고 차에 타는데 놀랍게도 새터 참가 인원이 예상을 넘었음을 그제서야 확인했다. 결국 고민 끝에 여분의 차를 한 대 더 신청했다. 버스 한 대당 44만원이서 꽤 부담이 컸지만 그래도 사람이 넘쳐서 한 대를 더 부른 것이라 기분이 좋았다. 여행자보험을 한명도 빠짐없이 쓰게 하기 위해 각 차를 들락날락거리다 보니 시간이 많이 지체되었다. 강원도 속초까지는 먼 여정이라 초조해졌다. 결국 당초 계획한 진부령 길 대신 꾸불꾸불해서 불편하지만 시간이 단축되는 미시령 길을 타기로 했다.


미시령의 가파른 고개를 넘었음에도 불구하고 도착해서 짐들을 풀어 놓고 보니 어느덧 8시가 다 되어 있었다. 결국 경영대 중앙판 행사는 11시가 되어서야 시작하게 되었다. 5곡을 위해 겨울방학 내내 준비한 경영대 밴드 너와나의 흥겨운 공연과 고려대학교 응원단 기수부 YT의 열정적인 응원 한마당을 이어갔다. 여기까지는 정말 좋았는데 KUBS와 KUTV 영상물 상영을 기술적인 결함으로 상영하지 못한 것이었다. 나름대로 신경 써서 빔 프로젝터도 대여하고 VTR로 챙겨왔건만 실패한 것은 아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슬프게도 최악의 기계치로 유명한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아무것도 없었다는 점이다.^^;


여하간 새벽 1시가 넘어서야 중앙판 행사를 석연치 않게 마무리 짓고 각 방별 친목의 시간이 이어졌다. 그런 와중에 경영대 본부실에서는 머리를 쥐어뜯는 결산 회의가 이어지고 있었다. 다행히 새터 재정 적자의 공포는 없었지만 재학생 참여도에 따라 새터 뒤풀이비가 크게 차이나서 당황했다. 그러나 결국 당초 합의한대로 각반에서 중앙 할당량을 제외한 모든 금액은 각 반별 뒤풀이비로 쓰기로 결정했다. 높은 참가율만큼이나 넉넉한 새터 재정이 꾸려져서 얼마나 흐뭇했는지 모른다.


많이 늦어진 일정과 계속된 새터 결산 회의의 피곤함으로 안전대책에 대한 논의를 깊게 하지는 못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각 방별로 안전수칙이 잘 지켜져서 2박 3일간 큰 사고 없이 무사히 새터를 치를 수 있었다. 본디 아침이 밝아올 때까지 깨어 있으려고 했건만, 각 방 안전이 잘 지켜지고 있다는 확신이 들자 잠이 몰려와서 술 창고 마련된 방에서 술도 지키고, 한 손에는 숙소비 지급을 위한 돈 가방을 꼭 끼고 새우잠을 잠시 청했다. 나는 꼭 무슨 일을 할 때 밥을 굶고서 하는 습관이 있는데 새터 첫째 날 내가 한 식사라고는 저녁 때 먹은 서늘하게 식은 점심 때 도시락이 전부였다. 제발 밥은 챙겨먹고 일을 해야겠다. 다 먹고 살자고 하는 짓인데 말이다.^^


여하간 아침이 밝았고, 여기저기 골아 떨어진 풍경들 속에서 최대한 아침밥을 먹으라고 깨워본 뒤 반별 대동놀이, 촌극 준비, 발표 같은 행사들이 진행되는 동안 나는 본부실을 지키며 별 탈 없이 진행되기를 기다렸다. 잠시 고종석 선생의 [코드 훔치기]라는 책을 펴들었는데 문화적 상대주의에 대해 논하면서 ‘차이의 권리’는 교묘하게도 ‘권리의 차이’로 전복된다는 구절을 접하고는 무릎을 치며 몇 번을 되뇌었다. 역시 밖에 나와서 읽는 책의 맛은 참으로 삼삼하다. 잠시 내가 속한 반인 E반 촌극을 보러 갔는데 2년 전에 선배님들께 촌극을 공연하던 기억이 나서 피식 웃어보였다. 나는 그 때 미팅 자리의 웨이터를 했는데 연기력은 정말 꽝이었다.^^; 그래도 제가 잘났다고 믿고 싶은 것이 사람 마음이라 나 때의 촌극이 더 재미있었던 것 같다는 생각이 들지 뭔가.^^;


여하간 오후 행사도 일단락되고 대망의 사발식이 이어졌다. 새터를 준비하면서 간단하게 이야기를 나누기도 했지만 결국 올해 새터에서도 경영대 5개 반 모두가 사발식을 하기로 결정했다. 사실 사발식을 안 하는 단위들이 늘어나고 있고, 사발식이 불필요하게 새내기들의 공포를 자아내는 경향도 없잖아 있다. 사발식은 고대문화의 패막 중에 대표적인 것으로 지목되어 뭇매를 맞고 있고, 이런 따가운 비판 덕분에 사발식의 양과 강도(?)과 많이 줄어 들었고, 강제하는 분위기도 거의 없어졌다고 볼 수 있다. 밉지만 선뜻 내팽개치기 힘든 고대문화의 한 단면이라고 좋게 생각하고 싶다.


일단 사발식의 의미는 종전까지의 획일화된 입시 위주의 교육을 벗어 던지고, 자유롭고 창조적인 지성인으로서 다시 태어나자 정도의 의미로서 막걸리를 마시고 토한다는 제법 비장한 의미를 가지고 있다. 기실 이 의미가 맞는 것인지의 여부는 알 길이 없지만 이 정도 선에서 매듭지어야지 사발식을 신성시하는 오바질도 삼가야 할 것이다. 사발식에 대해 그리 호의적인 생각을 가지고 있지 않은 나이지만, 막상 시주한답시고 새내기들 앞에 서니 갑자기 사발식이 나름의 충분한 의미와 가치가 있다고 역설하기 시작했다. 사발식을 앞두고 긴장된 새내기들 앞에서 사발식에 대한 험담을 하는 것은 도리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줄어드는 사발식의 양만큼 사발식의 위상도 축소되겠지만 한바탕 즐거운 마당으로써 기억될 수 있었으면 한다.


사실 학생회장이 사발식 시주를 하는 것이 그간의 관례였지만 할지 말지 무척 고민했다. 고대문화라는 것이 어느 정도 존재한다면 그것을 유지하고 계승하는 역할도 있지만, 그에 비례해서 이에 대한 전방위적 비판을 듣고 수용해야할 입장에 있는 나로서는 입장 정리를 선뜻 내릴 수 없었다. 그러나 내 개인적인 의사만으로 거부할 권리가 없다고 생각하고 각 반 사발식 시주를 하기로 결정했다. 그런데 문제는 여기서 사고를 쳤다는 것이다.^^;


전날 술 한잔도 안 마시고 이래저래 노곤한 몸으로 막걸리를 들이 부으니 몸이 견디지 못한 것이다. 결국 마지막 반인 E반을 남겨두고 기절쇼(?)를 펼치는 초유의 사태를 벌여서 E반에서는 시주를 못하고 말았다. 네 번째 반인 B반에서 어떻게 나온 것 같기는 한데 나머지는 기억이 나지 않는다. 정황 수집을 해보니 쇼파에 기대 있다가 옆으로 스르르 쓰러졌다고 한다. 내가 새내기였던 02 새터 때 사발식 순서가 E반 새터 새내기 65명 중에 꼴지로 하는 바람에 5시간 가까이 기다린 끔찍한 기억이 있는데... 역시 나와 막걸리와는 대략 궁합이 좋지 않은 듯 하다.^^; 여하간 졸지에 사발식 시주 다 못하고 쓰러진 학생회장이 되고 말았다.^^;  


일찍 쓰러져서 잠든 관계로 아침에 무척 개운했다. 전날의 민망한 사건을 전혀 기억하지 못하던 나로서는 모두에게 웃으며 인사를 나눴지만 다들 괜찮냐는 반응들이었다.^^; 하긴 생각해보니 사발식 시주하던 내가 왜 본부실 이부자리에 누워있었는지 생각하니 전날 무슨 일이 있기는 있었구나하는 생각이 몰려왔다. 여기저기 증언들을 수집하고 내가 무슨 짓거리를 했는지 알 수 있었다. 사발식 시주를 끝까지 돌지 못한 것은 못내 미안한 일이었지만... 뭐 가끔은 학생회장이 먼저 쓰러질 수도 있지 라며 넉살좋게 받아 남겼다.^^


여하간 2박 3일은 이렇게 숨 돌릴 틈도 없이 빨리 지나가 버렸다. 서울로 올라오는 길 내내 착잡한 마음을 숨길 수 없었다. 욕심은 많았지만 내 개인의 역량부족과 철학의 부족이 새터를 제대로 꾸미지 못했다는 죄책감으로 다가왔다. 문득 고등학교 1학년 때 다니던 학원 국어 선생님의 해주셨던 이야기가 생각났다. 대학시절 연극부원이었다는 선생님은 정말 연습연습 끝에 상연한 연극이 끝나고 아무 이유 없이 그저 펑펑 울었다고 했다. 어린 마음에 잘 끝났으면 된 것을 가지고 울었다는 선생의 잉여적 행동을 이해할 수 없었다. 그런데 그 때 선생님은 지나가 보면 아무것도 아니고, 별 게 아닌 것이 되어버리는 세상사의 허망함을 말하려고 했던 것은 아니었을까. 그렇게 허망할지라도 그 순간만큼은 최선을 다해서 후회할 여지를 줄여야 한다는 말씀을 덧붙여 주셨더라면 오해도 안하고 좋았을 것을...


해질 무렵 고대로 돌아온 우리 모두는 반별 뒤풀이 장소로 흩어졌다. 이로써 나의 역할은 모두 끝났다. 나란 존재야 금세 잊혀지는 것이 지극히 정상이지만 모두들 이번 새터에서 좋은 만남들 가졌다면 그것으로 대성공이다. 끝으로 도덕경 2장의 功成而弗居(공성이불거)란 구절이 떠오른다. “공이 이루어져도 그 공 속에서 살지 않는다”라는 뜻이다. 하기사 이번 새터에서 나의 역할이란 극히 미미해서 공을 주장할 것도 없지만...^^; 이제 새내기들이 각 반으로 흩어져 동기들과 선배들과 알콩달콩 재미나게 보내는 모습을 보며 괜히 침 흘리지 말고, 하나둘 나란 녀석을 모른 체 해도 기꺼이 받아들이자는 다짐이다.


잊지 못할 2004 새터 함께 해준 모든 이들께 머리 숙여 감사 인사를 전한다. 앓던 이를 뽑은 시원함보다 더 강한 서운함이 나를 짓누르지만... 지금은 회한보다는 새로운 만남을 주선했다는 벅찬 뿌듯함을 이야기할 때다. 끝으로 고생하신 모든 경영대 학우 여러분 사랑합니다. - [憂弱]
Posted by 익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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