익구는 6일 02년도 새터 때 같은 조를 해서 인연을 맺었던 성연, 상훈, 두수와 오랜만에 만남을 가졌다. 현재 이 세 친구 모두 군인이어서 대화의 90% 이상이 군대 관련 소재들로 채워졌다. 그 분야에 무심한 익구로서는 하나같이 낯설고 정신 없는 이야기였지만, 친구들이 재미나게 풀어내는 이야기에 시간 가는 줄 몰랐다. 특히 상훈이와 두수는 카투사인 관계로 이런저런 관련 용어들을 알아듣는데 무척 애를 먹어야 했다.^^;


현재 상병인 성연이는 1년 남은 군생활이 얼른 지나가서 전역했으면 좋겠다고 내내 푸념했고, 상훈이, 두수도 맞장구를 치며 얼른 학교로 돌아오고 싶다고 말했다. 그러나 익구는 학교생활이 5학기에 접어드니까 많은 의욕을 상실해가고 있어서 쉬었으면 하는 바람이 있다며 반박했다. 그러다가 복학했을 때의 학기 수를 따져보며 네 사람이 모두 함께 강의를 듣는 것은 네 사람 모두가 4학년이 되었을 때나 가능하겠다며 혀를 내둘렀다.


고깃집에서 저녁을 맛나게 먹은 네 사람은 술집으로 자리를 옮겨 발렌타인12년산 작은 병을 시켰다. 음주인생 최초로 친구들 모임에서 양주가 등장하게 되자 익구는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하지만 양주가 그 값에 비해 맛이나 양이 부족한 것이 아닌가라는 의구심을 가지고 있던 익구로서는 65,000원짜리 발렌타인12년산이 과연 3,000원짜리 山소주의 효용에 비교해서 얼마나 차이가 있을까 머리를 굴려보기도 했다. 또한 유명한 맥주 브랜드인 하이네켄도 마셔보았는데, 미각이 둔한 익구로서는 일반 맥주와의 차이점을 발견하지 못했다. 특히 병맥주임에도 흑맥주의 단맛이 느껴지지 않는 생맥주의 느낌이라 실망감은 더욱 컸다.


1년 만에 네 사람이 한자리에 모였다는 것만으로 무척 즐거웠고, 대학 와서 처음 알게 된 친구들과의 관계가 이렇게 유지되고 있다는 것이 고마웠다. 특히 이야기 소재가 죄다 군대 이야기들뿐이었는데, 익구는 편한 마음으로 들었다. 사실 군사주의에 대한 반감이나 성차별적 군대문화에 대한 불편함을 가지고 있던 익구였지만 이런 생각들이 크게 떠오르지는 않았다. 후임병을 갈궈야 피차 편하게 된다느니, 여자 경험 없는 순진한 사람들은 별로 없다느니 하는 이야기들이 크게 불편하지 않았다는 것은 아마도 지금 군인으로 고생하고 있을 숱한 친구들에 대한 모종의 예의였다.


군대에서의 시간을 허송세월로 생각하는 세 친구들의 일치된 견해를 보면서, 익구는 우리네 군대가 너무 과다한 비용을 지출해가며 유지되고 있는 것이 아닌가라는 생각을 다시금 했다. 그저 몸 건강히 나오기만 하면 그만이라는 군대라는 공간이 얼마나 합리성을 가지고 있는지 의구심을 가졌다. 익구는 획일적 문화를 재생산하는 군대문화에 대해 단호히 맞설 수 있을까에 대한 자신감이 점차 사라진다는 것을 느꼈다. 군대 휴가 나오는 친구들과 대화를 나누다 보면 이 친구들에게 내가 비판 내지는 어떤 방향을 제시한다는 것은 무척 어렵고 힘든 일임을 알 수 있었다.


세 친구들과 헤어진 익구는 얼른 노원역으로 향했다. 중고등학교 6년 간 같은 반이 된 적이 없지만 단짝으로 지내는 친구 동욱이의 입대 환송회가 있었기 때문이다. 1차 감자탕집에서 나오는 것에서 합류한 고등학교 친구들 일행은 2차로 파전집을 잡았다. 익구는 아까 먹다 남은 발렌타인12년산을 동욱이에게 맛보라고 건넸고, 대신 제주도의 한라산 소주를 얻었다. 술은 동동주를 시켰는데, 익구는 막걸리 생각이 나서 한 잔 정도 마시고는 도저히 더 먹을 수 없었다(이는 사발식에 대한 안 좋은 추억에 기인한 것으로 2004 새터 후기를 참조하면 알 수 있다). 결국 동동주를 포기하고 동욱이에게 받은 한라산 소주 남은 것을 마시니 상대적으로 어찌나 달고 맛날 수가 없었다.^^;


여하간 전날 개강잔치가 있어 A반 사발식 시주와 E반 개강잔치 3차까지 이어지는 강행군을 소화한 익구는 이틀간 여러 종류의 술을 접하면서 풍성한 개강 맞이 행사를 가졌다. 익구는 이틀 간 마셨던 술의 종류만큼 다양한 사람들과의 즐거운 만남과 이틀 간 마셨던 술의 양만큼 많은 학습량으로 이번 학기를 지내겠다는 다짐을 했다. - [憂弱]
Posted by 익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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