익구 중랑구민 되다

잡록 2004. 3. 30. 02:57 |

익구네는 3월 26일 중랑구 묵2동으로 이사를 했다. 이사 전날에 민족고대 전체학생대표자회의에 참석해서 밤샘 회의를 하다가 아침 9시 30분 경에 탈출해서 부랴부랴 노원구 상계동 집으로 달려왔다. 아침 8시부터 짐싸기가 시작되어서 꽤 상당부분 진척이 되어 있었다. 포장이사를 불러서 한 관계로 사실 익구가 거들만한 일은 없어서 밤샘회의의 여파로 인해 쏟아지는 졸음을 막을 수가 없었다. 결국 새집으로 이삿짐을 어지러이 나를 때 익구는 빈 공간을 여기저기 찾아다니면서 새우잠을 청하는 촌극을 벌였다.


그저께도 컴퓨터 앞에서 노느라 잠을 2시간밖에 못 잔 터라 이틀 간 잠을 제대로 자지 못한 것이 폭발하면서 그 난리통속에서 꿋꿋이 잠을 자는 기염을 토했다. 이번 사건을 계기로 익구는 절대 잠을 줄이면서 어떤 일을 해서는 안되겠다는 확신을 얻었다는 평가다. 익구 생활에 있어서 ‘수면총량 불변의 법칙’은 이번에도 여지없이 증명된 셈이다. 한참이나 단잠을 자고 일어나 보니 날은 저물어 있었고, 이사는 일단락 나 있었다.


새집은 일단 넓은 거실이 인상적이고, 창가에 중랑천변이 훤히 보인다는 특징이 있었다. 약간의 고소공포증의 기운이 있는 익구로서는 처음에는 약간의 어지러움을 느끼는 듯 했으나 어차피 살 집이라는 생각이 발동해서였는지 금세 상쾌한 기운을 찾을 수 있었다. 익구방에는 책꽂이와 책상, 침대와 함께 옛집 거실에 있던 피아노가 들어섰다. 본디 피아노를 방에 들이지 말기를 강력히 제안했으나 거실에 둘 공간이 없다는 이유로 부득이 익구방에 피아노가 자리를 꿰차게 되었다. 예체능에는 천부적인 무소질(!)을 보여주는 익구가 어린 시절 힘겹게 배웠던 피아노 연주의 악몽이 떠올랐지만 할 수 없이 방구석을 차지하는 것을 수락했다.


익구방 정리는 책꽂이에 책을 이리저리 정리해서 꽂은 것밖에 할 일이 없었다. 한참을 이리저리 책배치를 하면서 읽지도 않을 것을 괜히 산 책들에 부끄러워지고, 허영의 독서를 반성해봤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책들의 조각들이 모여 지금의 익구를 있게 했다는 자부심은 분명했다. 아직 못다 읽은 많은 책들을 시간이 허락하는 대로 최대한 손길이 닿도록 하겠다는 다짐을 새삼 해봤다. 그러나 컴퓨터에게 상당시간을 할애하고 있는 익구가 책읽는 시간을 얼마나 확보해낼 수 있을지는 여전히 미지수다.


익구는 주말을 이용해 주변 지하철 동선을 파악하고, 근처 상점들을 둘러보았다. 먹골역 주변을 꽤 뒤져보았으나 아직 변변한 서점을 찾지 못한 것을 제외하고는 상점들이 거의 다 구비되어 있었다. 특히 익구는 애견 야니를 위해 가까운 거리에 동물병원이 있는 것을 확인하고 크게 안도하는 반응을 보였다. 9년 만에 펼쳐진 이 낯선 풍경들 앞에서 익구는 지나간 것들, 익숙한 것들의 소중함을 다시 한 번 확인할 수 있었다. 물론 새로 맞이하게 될 인연에 대한 기대감도 한껏 부풀어 올랐지만 말이다. 익구의 새로운 보금자리에서 진지한 사색과 깨끗한 실천이 이루어지기를 기원한다. - [憂弱]

Posted by 익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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