익구는 5월 3일부터 11일까지 진행된 석탑 대동제를 즐겁게 보냈다. 한 일이라고는 각 단위의 주점을 관리하는 일밖에 없었지만 무사히 잘 마쳐서 다행스럽다는 평가다. 축제 분위기에 휩싸였던 익구에게 있었던 일을 정리해봤다.


<5월 3일>
오전부터 비가 내려 주점 준비가 무척 고생스러웠다. 비가 저녁 늦게나마 그친 것이 그나마 다행이었다. 7교시 강의를 마치고 선생님과 선배님 이렇게 셋이서 삼성통닭에서 만남을 가졌다. 주점이 잘 돌아가고 있겠지라고 생각하고 즐거운 담소를 나눴다. 학생회장이라도 주점에서 돈을 내고 먹어야 한다는 익구의 말에 주점을 세 개나 가지고 있으면서 제대로 얻어먹지 못하는 익구 신세를 가여이 여겨주셨다. 특히 기억이 남는 것은 선생님과 선배님께서 요즘 대학생들은 참 불쌍하다며 혀를 차시는 것이었다. 예전의 낭만이 가득한 대학생활과는 판이하게 돌아가고 있는 요즘의 대학 풍속도가 화제에 올려지자 익구는 자꾸 불쌍하다 그러니까 더 처량해지는 것 같다며 너스레를 떨었다. 통닭에 골뱅이, 번데기까지 포식한 익구는 다시 경영관으로 향했으나 광란의 현장을 목도하고는 현기증을 느꼈다. 또한 익구에게 한마디 언질도 없이 강의실에서 책상과 의자를 무단으로 꺼내온 것 때문에 한바탕 난리가 일어났다. 적당히 무마를 하고 마저 즐거운 주점을 이어 나갔다. 자정을 전후로 익구는 주점 정리를 독촉하러 다녔고 모두들 귀찮은 잔소리에 마지못해 치우는 시늉을 했다. 특히 A반 주점을 정리하던 중에 상으로 썼던 종이상자들을 불태우게 된다. 익구는 처음에는 위험하다며 만류했지만 막상 불이 활활 타오르자 덩달아 신나서 기념 사진에도 동참하고 말았다.^^; 여하간 학생회실에 술병 환자를 잘 안치한 것을 확인하고 날이 밝아오기 전에 얼른 집으로 향했다. 새로 이사간 집까지 택시비는 6000원이 채 안 돼서 노원구 살 때 보다 2000원 가까이 싸게 나왔다. 익구는 흡족해하며 앞으로 차 끊기면 택시를 애용해야겠다고 다짐했다.


<5월 4일>
전날 책상과 의자를 무단으로 꺼내 쓰고 인공폭포에 쓰레기를 투기한 일로 학사지원부에서 언짢은 소리들을 했지만 한숨 쉬어가며 적당히 둘러대서 주점을 이어나가게 된다. (축제가 다 끝나고서야 주점 교통정리 하느라 고생했다는 소리를 들었지만 주점 하는 내내 티격태격해야 했다^^;) 학생들보다 잔디밭, 폭포, 기자재를 더 사랑하는 것이 아니냐고 버럭 따질 까도 생각했지만 그저 미안한 표정을 지었다. 이런 우여곡절 끝에 이어서 세 개 반 주점이 열렸다. E반 주점에 들러 01 선배님들과 잠시 자리를 가진 뒤, C반 주점에 잠시 들러 작년 경영대 학생회 일을 함께 나눈 치용이 형이 휴가를 나오셔서 뵈러 갔다. 하지만 98 선배님들께서 달리는 분위기를 연출하자 모종의 불안감을 감지한 익구는 다른 주점 확인 좀 하고 온다는 핑계를 대고 결국 다시 들르지 못했다. 다시 E반 주점으로 돌아온 익구는 A반 친구 칠성이를 비롯한 A반 일행들과 담소를 나누며 즐거운 한 때를 보냈다. 작년 주점을 회상하며 푸짐한 서비스를 기대했으나 어려운 경제상황이 반영된 탓인지 조금 팍팍해졌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익구는 주점에서 돈을 남기면 얼마나 남긴다고 그저 다같이 술 한잔 나누는 재미로 하는 것이지, 너무 인심을 박하게 쓰는 것이 아니냐며 쓴소리를 하기도 했다. 결국 말은 이렇게 해놓고 얻어먹을 것은 다 얻어먹었다.^^; 익구는 가정의 화목을 위해 전철 막차를 타고 집에 가는 칠성이를 배웅하고 B반 주점 정리를 감시했다. 거의 치워졌구나 싶을 때 C반 주점 정리 상태를 점검하러 갔으나 이게 웬일, 사람은 간데 없고 주점 자리는 온전하게 남아 있었다. 부랴부랴 연락을 돌려 아침에 와서 치우겠다는 확답을 받고도 모자라 신신당부를 해놨다. (이 덕분이었는지 나중에 학사지원부에서 C반 정리가 가장 훌륭했다는 소리를 듣게 된다^^;) 익구는 B반 뒤풀이 장소에 따라가서 해장국을 맛나게 먹은 뒤 첫차를 타고 집으로 돌아오게 된다.


<5월 7일>
지야의 합성 입실렌티를 관람하기 위해 녹지 운동장으로 향하다. 노천극장과는 달리 탁 트인 공간 탓에 시선이 분산되는 감이 없잖아 있었지만 응원하고 놀기에는 더 넓고 좋은 것 같았다. 하지만 모래바람 때문에 목감기에 시달린 친구들이 많았다는 후문이다. 익구는 다섯 개 반들이 적당한 위치에 잘 자리잡았음을 확인한 뒤 가벼운 마음으로 입실렌티를 관람했다. 초대연사인 한비야씨의 “강자를 편들어 자연사하시겠습니까, 약자를 편들어 장렬히 싸우다 전사하시겠습니까?”라는 사자후에 큰 감명을 받았다. 익구는 한비야씨 같은 치열하고 따스한 마음을 가진 여성이 무척 매력적이라는 극찬을 아끼지 않았다. 마지막 초대가수인 전인권씨의 무대는 무척 흥겨운 한마당이었다. 중후한 멋에서 풍기는 카리스마라는 것이 이런 것이구나를 실감한 익구는 하지만 이런 무게감은 익구와는 맞지 않는다며 고개를 가로 저었다. 이어진 응원 한마당에서 익구는 02 친구들인 병만, 욱진과 함께 온몸을 달구는 응원을 즐겼다. 입실렌티가 성료되고 D반 뒤풀이를 함께 했다. 본래는 새로 장만한 디카로 사진도 좀 찍고, 이야기꽃을 피워보려고 했으나 다들 격한 응원 탓인지 조용히 안주만을 축내는 분위기라 익구도 맥주를 들이키며 지친 몸을 달랬다. 특히 세상에서 가장 매운 골뱅이 무침이 압권이었다. 뒤풀이가 얼추 끝나고 택시를 타고 집으로 가려고 생각했던 익구는 B반 일행을 만나 B반 뒤풀이에도 합류하게 된다. 02 친구인 미경이와 안면을 트게 되는 등 단란한 한 때를 보내고 아침 해장국까지 해치우고 집으로 향한다.


<5월 9일>
오랜만에 고등학교 친구들을 만났다. 본디 소풍을 기획했건만 비가 오는 바람에 무산되고 건대 근처 술집에서 만남을 가졌다. 큰 규모의 소풍이 취소되어서 당초 기획했던 것보다는 판이 작아졌지만 스무 명도 넘는 반가운 얼굴들을 만났다. 사발식 시주 이후 범 막걸리 계열의 술을 일체 입에 대지 않게 된 익구는 그날따라 잔뜩 시킨 동동주를 거의 마시지 못하고 낙지볶음 안주를 맛나게 먹었다. 그러자 여기저기서 “익구 잘 먹는다” “저거 또 안주킬러 짓 시작이다” “익구야 또 먹어?”라는 전형적인 구박이 시작되었다. 사실 익구는 술만 마시면 이상하게 허기가 더 심해지는 증상이 발동해서 안주에 자꾸 손이 가게 된다.^^; 이번에 대학 새내기로서 보내고 있는 수현이가 게임을 제안했고, 모두들 게임의 도가니에 빠지게 된다. 이미 게임이랑은 영 멀어진 02 고학번인 익구로서는 옆 쪽 테이블에서 山소주를 마시며 지나간 세월을 한탄했다. (익구는 예나 지금이나 게임을 즐기지 않는다. 게임의 블랙홀임을 잘 알기 때문이다^^)


<5월 14일>
익구는 오전에 탄핵 기각이라는 기분 좋은 소식을 접하고 지난 두 달간의 묵힌 가슴이 뻥 뚫리는 시원함을 느꼈다. 대학 새내기 시절에도 가지 않았던 연대 아카라카를 02 노구를 이끌고 머나먼 원정길을 떠나게 된다. 입구통제하는 사람들과 밀고 당기는 실랑이를 한참 벌이고서야 겨우 입장을 할 수 있게 된다. (큰 폭력 사태는 없었지만 다소간의 주먹질이 오갔다는 점은 슬픈 일이다. 축제 분위기를 퇴색시키는 우울한 풍경이다) 인기 가수들이 많이 나온다는 평이 자자한 아카라카이지만 본래 가수 공연 같은 것에는 흥미가 없는 익구는 초등학교 친구인 애란이와 저녁을 먹었다. 1년만에 만난 애란이와 대학생활의 애환을 즐거이 나눴으나 연세 방송국에서 일하는 애란이는 방송제 준비로 독촉 전화가 오기 시작했다. 익구는 내가 주로 독촉을 하는 입장이 되어봐서 잘 안다며 얼른 들어가 보라고 말했고, 우리는 다음을 기약했다. 아카라카는 마지막 초대 가수로 신승훈이 나왔고 분위기는 절정에 달했다. 이어진 응원 한마당을 물끄러미 바라보며 익구는 상념에 잠겼다. 저 거대한 파란 물결을 보며 때로는 팽팽한 대립각을 세우면서도 선의의 경쟁자로서 연세인들의 존재를 실감하게 되었다. 익구는 아카라카를 마치고 나오는 길에 그만 와당탕 넘어지는 바람에 디카도 긁히고, 휴대전화 액정도 깨지고, 여기저기 생채기가 나는 촌극을 연출했다. 익구는 역시 신촌동네의 불길한 기운이 사단을 내고 말았다며 호들갑을 떨었다. A반 뒤풀이에서 맥주를 마신 익구는 역시 신촌이라 그런지 맥주맛이 일품이라며 흡족한 반응을 보였다. 이어서 D반 뒤풀이를 참석해서 연세인들과 함께 하는 응원을 즐겼다. (주로 눈으로... 몸이 말이 아니라서... 쿨럭) 좀 전까지는 연대의 복잡다단한 응원이 신기하기도 했으나 이내 연세인들도 능란하게 구사할 줄 아는 응원은 네댓 개에 지나지 않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끝으로 B반 뒤풀이에 갔다가 첫차를 타고 돌아왔다. 술 취한 04 창헌이를 중계역까지 데려다 주지 않고 내린 것이 두고두고 후회된다. 창헌이는 그날 신대방역까지 갔다가 와야했다고 한다.^^;


<5월 15일>
아카라카까지 달리면서 만신창이가 된 몸이었지만 거의 2년 만에 수옥 누나와의 만남을 가졌다. 35대 총학생회 일을 함께 했던 수옥 누나께서는 지금은 어엿한 직장인으로 그 출중한 실력을 뽐내고 있으시다. 역시 총학 일로 알게 된 선임이와 함께 강남역으로 향하는 길 내내 너무 멀다고 투덜거렸다. 사실 아카라카의 여독이 덜 풀린 탓도 있었으리라. 강남역에서 수옥 누나와 함께 나오신 진관 형님과 반갑게 인사를 나눴다. 저녁으로 난생 처음 접하는 샤브샤브를 먹었는데 마지막에 담가 먹는 칼국수가 별미였다. 보드카페에서 젠가, CLUE, 할리갈리를 재미나게 했다. 불꽃튀는 젠가 대결에서 와르르 무너진 것이 누구의 탓인가 미스터리이지만... 아마도 익구가 팥빙수 국물 흘려서 휴지로 훔치려고 하는 찰나에 무너졌으니 익구탓도 지대하다는 것을 이 자리를 들어 밝힌다.^^; CLUE는 아무리 해도 맞추지 못하는 익구머리의 한계를 절감했으며, 할리갈리는 산수감각과 순발력이 함께 부족한 익구의 부실한 몸뚱아리를 한탄할 수밖에 없었다. 익구는 수옥 누나와의 회동을 통해 어떤 모임이나 약속이든 내가 먼저 다가가서 챙기지 않으면 결국 아무것도 성사되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축제를 핑계로 들뜬 기분에 젖어서 한 때를 보낸 익구는 어느덧 다가온 이번 학기의 마지막을 차분히 정리할 준비를 하고 있다. 이제 얼마 남지 않은 이번 학기를 축제의 흥겨움을 유지하며, 즐겁게 마무리하겠다는 자세다. 축제 끝의 무료한 일상이라기 보다 이제는 일상의 소소한 즐거움으로 승부한다는 계획이다. 지난 축제 기간 익구와 함께 해준 모든 이들께 깊은 고마움을 표한다. - [憂弱]

Posted by 익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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