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해찬 국무총리 후보 지명자를 두고 열띤 논쟁이 벌어지고 있다. 기실 이해찬 1세대인 익구로서는 그 격랑의 한가운데에 있었기 때문에 사안을 객관적으로 바라볼 수 있을지에 대한 의구심이 든다. 우선 논의에 앞서 분명히 짚고 넘어갈 점이 있다. 이해찬 총리 지명자가 교육부장관 재직시절 추진했던 각종 교육 개혁정책들은 김영삼 정부 시절 입안된 정책을 구체화한 것이라는 점이다. 7차 교육과정의 고시는 김영삼 정부 말인 97년 말에 이루어졌으며 이해찬 장관이 추진했던 새학교 문화창조의 방안들은 사실 문민 정부의 교육개혁위원회에서 도안해 낸 정책들이다.


물론 이해찬 장관이 다양한 전형 방법으로 대학 신입생을 뽑는 2002 입시 개혁을 주도한 것은 사실이지만 그 기조는 이전 정권의 기본구상을 받아들인 것이다. 아무리 심심하면 바뀌는 교육 제도라지만 국가차원의 교육 정책이 이해찬 개인의 농간(?)으로 좌지우지되는 것이 아님을 밝히고 싶다. 정리하자면 이해찬 장관은 이미 하기로 되어 있었던 것을 시행한 것이지, 새롭게 무언가를 뚝딱 만들어 낸 것은 아니다. 2002 입시 개혁안이 98년에 대서특필되다보니 그렇게 오해하기 쉬울 수도 있겠다는 노파심에 말씀드린다.


여담이지만 어느 교육부 간부가 이해찬 당시 장관에게 2002 입시 개혁안을 ‘무시험 전형’이 아니라 ‘다양한 전형’으로 명명해야 한다고 건의했다고 한다. 그런데 결국 이해찬 장관이 좀 더 관심이 끌릴 만한 무시험 전형이라는 용어를 선택하고 말았다. 이 용어는 결국 많은 오해를 낳았다. 한가지만 잘해도 대학 갈 수 있기는 했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다양한 입시전형의 일부분일 뿐이었다. 또한 시험을 보지 않고도 대학에 갈 수 있다는 환상을 심어준 것도 크나큰 실책이다. (사실 이 부분은 교육부에서 홍보를 제대로 못한 것과 더불어 언론의 침소봉대도 한 몫을 했을 것이다)


혹자들은 멀리 내다보지 못하는 근시안적 교육 행정이라고 비판하기도 한다. 그러나 98년 입시 개혁안이 나온 내용이 2001년도(2002 대입)에 현실화된 것일 뿐 졸속 행정이라는 비판은 수긍하기 힘들다. 내신과 각종 특기가 중시되는 수시 제도나 총점제 폐지 같은 내용들은 다 98년도에 나온 이야기다. 대체 그 때는 가만히 있다가 막상 닥치니 난리법석인 것은 온당치 못한 처사였다고 생각한다. 또한 입시 개혁안에 부응하지 못하고 기존의 입시 전형을 고수해온 대학 당국에게도 비판의 화살을 돌려야 공정할 것이다.


입시 개혁안과 더불어 추진 된 모의고사/야간자율학습/보충학습 폐지 같은 정책들도 일선 학교들에게 혼란을 조장했다. 이런 정책들로 말미암아 고교생들이 공부를 제대로 하지 않아 기초 학력이 떨어졌다는 세간의 눈초리를 받아야 했다. 이른바 이해찬 세대의 탄생이다. 가만히 물어보자. 정녕 이해찬 세대 스스로가 단군 이래 최저학력이라는 손가락질에 동의하는 것인지를... 이해찬이라는 사람 때문에 우리가 이 모양 이 꼴로 살고 있다고 생각하는지를.


얼마 전 익구는 서울외고를 방문해서 어느 선생님 말씀을 들었는데 요즘에는 0교시도 없고, 야자도 강제가 아니라고 한다. 그럼 고등학교 후배님들의 학력은 바닥을 긁다못해 지하로 들어가야 정상이다. 하지만 아마도 그럴 일은 없을 것이다. 후배님들도 우리와는 사뭇 다르지만 나름대로의 공부를 할 것이다. 후배님들도 배울 것은 다 배울 것이고, 우리도 지난날 배울 것은 얼추 다 배웠다. 이것은 ‘정책이 어찌 되었건 공부할 놈들은 다한다’의 논리가 아니라 ‘정책 덕분에 다양한 공부의 싹이 틀 토양이 마련되었다’로 해석할 수 있다. 부디 이해찬이라는 사람 때문에 우리가 이렇게 무식해졌다고 하지말고, 우리 신세가 처량하다고 생각지 말자. 살다보면 외적 귀인(external attribution)을 하는 것이 스트레스 해소에 도움이 되기도 하지만 죄 이상의 벌을 내리는 것은 또 하나의 죄가 될 수도 있다.


이해찬 장관의 교육 개혁은 탄탄한 제도적 보완을 받지 못해 크게 성공하지는 못했다. 그러나 분명 이전보다 개선된 제도를 만들려고 했다는 점은 확실하다. 교육 개혁에 대한 논쟁은 앞으로도 계속될 것이다. 이해찬 세대라고 불리는 우리를 둘러싼 논란도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이해찬 장관의 교육 개혁은 고등 교육을 가만히 두고 초, 중등 교육을 아무리 지지고 볶아봤자 한계가 있음을 여실히 증명해 보였다. 이 점에서 전략적 패착을 거듭했고 지적 받아 마땅하다. 그러나 제도 몇 개가 바뀌었다고 해서 우리 의식 속의 학벌주의를 비롯한 한국 교육의 병폐들을 몰아내지는 못할 것이다. 정책의 취지는 옳았으나 학벌 피라미드의 근본 구조가 온전한 가운데 변죽만 울리고 끝나버린 아쉬움이 남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도 개선과 우리의 내면 의식이 상호작용하면서 조금씩 바뀌어 나가고 있다.


이해찬 총리 지명자가 적절한지의 여부는 교육부장관으로 재직하면서 저질렀던 잘잘못과 더불어 총체적으로 총리로서의 자질을 논하는 인사청문회 과정을 지켜보며 판단해도 늦지 않을 것이다. 그것보다 괜히 이해찬 세대 논쟁이 불거져 나와 그 시대를 살아왔던 우리의 마음을 다시금 흔들어 놓는다. 그러나 이것 하나는 분명하다. 우리를 망하게 하는 것이 있다면, 우리의 신세를 누추하게 만드는 것이 있다면 그것은 바로 우리 자신일 것이라는 점이다. 또한 어떤 공부든 자신이 좋아하고 의미를 찾을 수 있다면 열심히 하면 그만이라는 점이다.


오늘날 대학사회는 하고 싶은 공부보다는 해야만 하는 공부를 더 많이 해야하는 서글픈 모습이다. 그러나 그 핑계는 고등학교 때도 지겹게 했다. 아마 훗날 취업을 하거나 사업을 하게 된다면 그 때는 먹고 사는 일이 바빠서 하고 싶은 공부를 못한다고 할 것이다. 이 끝없는 핑계와 유보의 고리를 끊고 우리 지금 이 순간을 알콩달콩 재미나게 살아갔으면 좋겠다. 물론 그 순간 순간을 소중한 지인들(이 글을 읽는 여러분!)과 나눌 수 있기를 누구보다 바란다. 우리를 보고 공부도 못한 것들이라는 부당한 매도에 당당히 방어하는 이해찬 세대들이 되었으면 한다. 우리는 충분히 그럴만한 자격이 있다. - [憂弱]
Posted by 익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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