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신행정수도 이전 대상기관에 입법부와 사법부가 포함되자 일각에서 사실상의 천도라고 반발하며 국민 투표를 주장하고 있다. 이는 국회에서 진행된 합의 과정과 의결 행위를 무력화시키는 의도다. (물론 누더기 친일규명진상특별법 통과 같은 경우는 대다수 국민들의 의사를 무시한 처사 같은 경우도 있겠지만 말이다) 신행정수도 이전은 지난 대선 때 노무현 대통령의 핵심공약이었고, 국회에서 국가균형발전 3대 특별법으로 통과되었다. 여소야대의 16대 국회에서 압도적 다수(재적 194명 중 찬성 167명, 반대 13명, 기권 14명)로 통과돼 국민적 합의를 얻었다고 볼 수 있다.


입법부와 사법부 이전은 특별법 6조 4항에 규정된 대로 '수립된 이전계획의 내용 중 정부에 속하지 아니하는 헌법기관의 이전계획에 대해서는 국회의 동의를 얻어야 한다'는 원칙에 따라 국회와 사법부 스스로 판단하면 된다. 뜬금없이 이전기관의 범위를 걸고넘어지는 것은 그간의 행정수도 이전 합의 과정에 참여한 자들이 일부러 사실을 호도하거나, 아니면 진짜 무식해서 법안 검토도 안 해본 것 둘 중의 하나일 것이다.


대선 직후 노무현 당선자가 국민투표를 거치지 않으면 동의가 안되는 상황이 오면 국민투표를 실시할 수도 있다는 입장을 밝히자 한나라당은 행정수도 이전 사안이 국민투표의 대상이 될 수 없다고 못박았다. 국회가 거부하면 불가능한 일이 되는 것이지 국민투표를 통하는 것은 국회를 경시하는 일이라고 비판하기까지 했다. 결국 여소야대의 상황에서 법안 통과를 장담할 수 없는 노 대통령이 제2의 방법으로 국민투표를 생각하고 있었겠지만 어디까지나 국회에서의 의결을 얻어내려고 했다. 가장 저렴한 비용으로 국민의 동의를 얻기 위한 노력의 결실이 작년 12월 신행정수도특별법 통과이다.


<"노무현 당선자가 충청지역에서 행정수도 이전을 국회가 반대하면 국민투표를 해서라도 하겠다고 하였다. 잘못 알고 있다. 헌법 72조에 따라 대통령은 필요하다고 인정할 때에는 외교, 국방, 통일 기타 국가안위에 관한 중요 정책을 국민투표에 부칠 수 있는 것이다. 일반 사항은 국민투표에 부칠 수 없는 것이다. 그것은 국회에서 법 제정이 되지 않거나 국회에서 거부하면 불가능한 일인 것이다. 국회를 얼마나 경시하는가 하는 면면을 엿볼 수 있는 것이다." (2003년 2월6일 주요당직자회의, 이상배 정책위의장)

"대다수 국민들은 수도이전을 가장 실현성 없는 헛공약으로 꼽고 있는데 노무현 당선자는 다시 충청권에 가서 헌법상 국민투표 대상도 아닌 사안을 국민투표를 해서라도 추진할테니 야당이 반대하면 좀 설득해 달라고 벌써 내년 총선을 겨냥한 허풍선전을 또 한 바 있다." (2003년 2월13일 주요당직자 회의, 김영일 사무총장) >


지난 16대 국회에서 여야가 합의해 통과시킨 정책에 대해서 대통령이 다시 국민투표를 한다는 것은 국회의 의사를 거역하거나 번복하게 하는 것으로 삼권 분립의 원칙에 맞지 않는다는 노무현 대통령의 입장 표명은 옳다. 한나라당은 이제 와서 충청도 표심을 의식한 졸속처리였다는 사실을 인정해봤자 국민적 합의를 운운한 자신들의 반대논리가 부실한 것을 드러낼 뿐이다. 한나라당은 자신들의 당론을 결정하고 국회에서 당당하게 논의에 임하라. 왜 자기네들이 할 일을 대통령이 국민투표를 결단해야 한다며 남에게 떠넘기는가. 혹시 17대 총선에서 의회권력을 빼앗겨서 국회에서의 합의에 자신이 없는 것인가?


한나라당은 국회에서의 승산은 별로 없고 국민투표에 불을 지펴 자신들의 든든한 텃밭인 영남과 혹시나 하며 불안해하는 수도권 유권자들을 엮어보겠다는 속셈일 것이다. 어차피 별로 표도 없는 충청권의 민심을 버리고 자신들의 지지기반을 수도권으로 확장해보려는 술수다. 표가 얼마 안 되는 호남권을 고립시킴으로써 영남 패권주의에 기생했던 지역주의 정당의 노림수에 현혹되어서는 안될 것이다. 대통령 탄핵을 의회 민주주의적 결단이라고 치켜세우던 자들이 대의 민주주의의 절차적 정당성을 짓밟고 다시금 논쟁의 소용돌이를 일으키는 것은 이제 자신들이 정치적 소수파가 된 것에 대한 투정에 지나지 않는다.


물론 노 대통령의 행정수도 이전 공약도 분명 표심을 잡기 위한 것임을 부인하기 어렵다. 그러나 분권화와 국토 균형발전이라는 분명한 논거를 가지고 있다. 서울을 비롯한 수도권의 과밀화 현상은 어제 오늘 이야기가 아니다. 지방 발전이 자꾸 더뎌지고 있고, 국토의 불균형 발전은 계속 심화되고 있고 지역감정 같은 국민적 갈등만을 유발하고 있다. 수도권에 경제, 정치, 교육, 행정이 집중되어 있는 상황에서 개별 경제주체가 지방으로 내려갈 유인은 거의 없다. 수도권 집중의 폐해를 줄이고 지방의 경제발전의 열쇠는 민간보다는 정부의 몫이고, 그 실천방안으로 행정기관의 이전이 추진되고 있는 것이다.


신라의 신문왕은 금성이 수도로서는 국토의 동남쪽에 너무 치우쳐 있어 이를 만회하고 위해 달구벌로의 천도를 추진했지만 경주 진골들의 강력한 저항으로 실패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신문왕은 그 대안으로 수도의 역할을 나눌 수 있는 5소경 제도를 창안했고, 수도의 편재성을 극복하려고 했다. 노무현 정부도 5소경 제도의 지혜를 다시금 살려 행정수도 이전을 국민통합에 이바지하도록 신중하지만 꾸준하게 추진해야 것이다. 참여정부는 국민들에게 국토 균형발전의 의지를 재천명하고 홍보해서 행정수도 이전 논란이 정파적 이해관계의 제물이 되는 것을 조기에 방지해야 한다. - [憂弱]
Posted by 익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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