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월 5일 익구는 규상이와 [화씨 911]을 관람했다. 조조영화로 볼 계획을 잡고 있었으나 연일 계속되는 열대야 때문에 밤잠을 설쳐 늦잠을 자는 바람에 계속 미뤄지던 것을 마음을 굳게 잡고 성사시켜 영화관으로 향했다. ‘자유와 진리가 불타는 온도’라는 뜻의 가진 영화제목답게 9.11 테러와 이라크 전쟁 등을 소재로 부시 일당들을 신랄하게 비꼰다. 익구는 통쾌하면서도 서글픈 복잡한 감정에 휩싸였다.


영화는 지난 2000년 미 대선에서 고어의 이상한 패배에서 출발한다. 모든 악의 근원이 부시 당선이라는 끔찍한 상황에서 연유된 것이라는 가정이다. 별 다른 저항 없이 받아들여질 정도로 그간 부시 일당들에게 많이 시달린 것 같다.^^; 당시 고어의 깨끗한 승복에 감동한 사람들이 적지 않았고, 이것이 미국의 민주주의 시스템이라며 찬사를 받았지만 여전히 석연치 않은 구석이 많다.


미 의회의 하원의원 일부가 부정선거 문제를 제기했지만 상원 의원 1명 이상의 서명을 받지 못한 나머지 모두 받아들여지지 않았다(나중에 안 것인데 현재 미국 의회에서 흑인 상원 의원은 한 명도 없다고 한다). 몇몇 하원의원들의 울분에 찬 목소리가 상원의원을 비롯한 대다수의 의원들의 비웃음에 파묻히는 광경에서 지난 탄핵 폭거가 오버랩되었다. 다수의 지배에만 매몰된 의회 민주주의의 역겨움을 목도하는 불편함이라고나 할까.


부정선거 의혹을 떨쳐내지 못하고 아버지 부시가 임명한 재판관 덕에 백악관에 입성하게 된 부시를 향해 달걀세례가 날라오자 행진을 포기해야 했던 부시는 이 때부터 맛이 가기 시작했다. 9.11 테러 발생 전 42%의 시간을 여가활동으로 보냈다는 부시를 보면서도 놀 거 다 놀면서 정무를 돌보는 미국식 스타일을 찬양했던 호사가들은 좀 부끄러워했으면 좋겠다. 9.11이 터진 것을 보고 받는 순간의 부시의 멍한 표정은 이 인간의 또라이 기질을 여과 없이 드러내주고 있다.


이어서 참사 이후 미국에 있던 빈 라덴 일가가 백악관의 도움으로 미국을 유유히 빠져나간 데 대한 의문이 이어진다. 여러 가지 증거가 제시되며 빈 라덴 일가, 사우디아라비아 왕가와 부시 일당과의 밀착관계가 폭로된다. 민중들의 고혈을 빨아먹고 있을 것이 뻔한 사우디 왕족들이나 그에 기생하고 있을 빈 라덴 일가, 이런 집안 분위기 떨치고 일어나서 한다는 게 고작 이슬람 근본주의 광신도인 오사마 빈 라덴, 허구한 날 사업 말아먹고 여기저기 손 벌리는 부시 조합이라니 정말 끼리끼리도 이렇게 최악일 수가 없다. 여기다가 아프간 전쟁과 이라크 전쟁으로 미소짓는 군수업체와 석유회사까지 끼어 드니 정말 이것이야말로 악의 축이 아니고 무엇인가.


또한 테러에 대한 공포심을 빌미로 제정한 애국법도 코미디다. 가뜩이나 박정희 망령을 등에 업은 박근혜의 헛소리에 정신이 없는 마당에 부시에게서 지난 날 반공에 대한 열정(?)을 강요함으로써 국민을 총화단결시킨 박정희를 찾는 것을 그리 어려운 일은 아니었다. 공동의 적에 대한 적개심으로 국민을 불안하게 하고, 서로를 감시하게 만드는 모습은 이것이 우리가 닮고자 했던 미국의 모습인가 싶을 정도였다. 훼손된 자유에 무감각한 미국인이라면 굳이 경애할 필요는 없을 듯 하다.


2003년 3월 부시 일당은 이라크 침공을 감행한다. 많은 매체들을 통해 익히 접해왔던 것들을 다시 마주했지만 새로운 따가움으로 다가왔다. 한 이라크 여성이 “알라신이시여, 저들을 응징해 주소서, 저들을 용서하지 마소서”를 외치는 모습에서 익구도 같은 절규를 했다. 부시가 열렬히 믿는 다는 그 신은 과연 피눈물을 흘리고 있을지를 상상해보았다. 알라신의 침묵은 차치하고 부시가 믿는 신이 침묵한 것은 참기 힘든 일 아닌가.^^;


장면이 바뀌어 자기 자식을 비롯해 많은 친척들이 입대한 미국의 어느 여성은 조국에 봉사하는 것을 자랑스러워하고 있었다. 이라크에 가기 싫다는 아들을 달래 보내고 조국에 대한 사랑에 한껏 부푼 이 어머니는 아들의 죽음과 부시는 또라이이며, 명분 없는 전쟁에 동원된 자신을 한탄하는 아들의 마지막 편지를 읽으며 단지 아들이 보고 싶다는 말만을 되뇌인다. 모두가 패배자일 뿐인 전쟁의 속성을 여실히 증명해주는 대목이다.


끝으로 상하원 의원 중에 자식을 이라크에 보낸 사람이 단 한 명뿐이라는 사실도 씁쓸하게 다가왔다. 미국의 가난한 젊은이들을 사지로 몰아넣는 것도 모자라 한국 등지의 젊은이들의 피까지 요구하는 부시 일당들의 간악함과 이와 한통속인 미국 지배계급들의 마수에 우리가 얼마나 시달리고 있는가. 그리스 시인 핀다로스는 “전쟁을 재미있어 하는 것은 무경험자 뿐이다”라고 말했다. 전쟁에 미친 자들을 위한 묘약은 역시 그네들을 전쟁터에 집어넣는 수밖에 없나보다.^^;


화씨 911은 현직 대통령을 드러내놓고 비난하고 있다는 점에서 경이롭다. 한국에서 아직 이런 영화는 상상하기 힘들기 때문에 더욱 군침이 도는 지도 모른다. 실미도를 보고 색깔이 의심스럽다며 빨간 칠을 해보려는 자들이 있는 판에 말이다. 사실 미국의 진짜 무서움은 마이클 무어 같은 이들의 존재라는 혹자의 평이 제법 근사하게 들린다. 아무 거리낌없이 민주당 전당대회에 참석하는 마이클 무어의 모습을 보며 정파적 이해에 죽고 사는 우리네 정치판의 초라한 몰골도 부끄럽다. 하지만 여전히 부시의 지지율이 40%는 가뿐히 넘고 있다는 사실에 경악할 수밖에 없다. 한국에서는 대통령이 말실수 한 번 해도 지지율이 뚝뚝 떨어진다는데, 전쟁 일으키고 인권 유린해도 지지율이 안정적이니 부시는 좋겠다.^^;


영화를 함께 본 규상이는 연신 투덜거리며 분노를 삭이고 있었고, 익구 또한 프레첼 과자가 왜 부시 기도를 좀 더 꽉 막지 못했을까 아쉬워했다. 부시 일당은 지난 4년 간 우리에게 테러 그 자체였다. 익구는 부시의 낙선을 꿈에서도 빌고 있지만 그렇다고 마이클 무어의 의도대로 케리가 당선되면 새로운 세상이 올 것이라고 생각지는 않는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부시의 재선은 만성 식욕부진의 신호탄이 될 수 있겠다는 커다란 공포다. - [憂弱]


미국은 프라이버시를 포함한 시민적 자유의 일부를 헌납하고서야 안전을 얻을 수 있는 사회가 되어가고 있는 것 같다. 이 안전은 타인(특히 외국인)에 대한 불신을 통해 확보되고 있다. 여기서기자는 자유와 안전이라는 두 가치사이의 고전적 갈등을 목격한다. 극도로 위생처리된 사회는 분명히 안전한 사회일 것이다. 그러나 그 살균된 사회 속에서 사람들은 숨이 가쁠 것이다. 자유의 공기에는 늘 병균이 묻어 있는 법이다. 미국인들 다수는 이런 위생처리를 받아들이고 있는 것 같다. 시민적 자유의 모국에서 그런 풍경을 보는 것은 우울했다. 자유의 헌납과 타인의 불신에 대범해질 수 있다면, 세상에 북한 사회만큼 안전한 곳이 있겠는가?

- 고종석, [살균된 사회, 위생처리된 자유], 한국일보 2001.12/26

Posted by 익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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