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법재판소가 신행정수도특별법에 대해 위헌결정을 내렸다. 헌재의 결정 요지를 보면 “서울이 수도라는 명문화된 헌법 규정은 없지만, 조선시대 한양을 도읍으로 결정한 이후 건국 이후에도 모든 국민이 수도라고 의심의 여지 없이 확신해온 것으로 관습헌법으로 볼 수 있다”며 “우리나라의 수도가 서울이라는 점에 대한 관습헌법을 폐지하기 위해서는 헌법이 정한 절차에 따른 헌법개정이 이뤄져야만 한다”는 것이다.


관습헌법이라는 낯선 용어도 문제지만, 설령 그 존재를 인정할 경우에도 성문법 국가에서 그 효력을 성문헌법과 동일하게 볼 수 있는 가에 대한 기본적인 문제의식은 지울 수 없다. 국회의 입법행위와 대통령의 정책 추진에 대해 관습 헌법으로 제동은 건 것을 삼권분립의 원칙을 넘어서는 오바질이다. 헌법에 규정되지 않은 사항은 입법기관인 국회에 위임하고 있는 삼권분립의 원칙을 심각하게 훼손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서는 소수의견을 낸 전효숙 재판관을 의견을 경청할만하다. 관습헌법이 억지 춘향이임을 간파한 전효숙 재판관에게 경의를 표한다. 사실 대한민국은 상식이 통하지 않아서 겪은 비용이 너무 크다.


“'서울이 수도'라는 관습헌법의 변경은 헌법개정에 의해야 한다면, 이는 관습헌법이 헌법이 부여한 국회의 입법권을 변경시키는 것이다. 그것은 관습헌법에 대하여 국회의 입법권 보다 우월적인 힘을 인정하는 것이 된다. 헌법은 '입법권은 국회에 속한다'(제40조)고 규정하며, 헌법에 달리 규정이 없는 한 국회의 입법권은 포괄적 대상을 지닌다. 입법권의 주체는 다름아닌 국민에 의하여 직접 선출된 대의기관이며 헌법은 국민주권과 자유민주주의를 실현하는 방법으로 대의제를 기본형태로 채택하고 국민으로부터 민주적 정당성을 부여받은 대표기관이 입법작용을 통하여 그 이념을 수행하도록 하고 있다”


신행정수도특별법은 국회에서 여야의 압도적 찬성으로 가결된 법률이다. 2002 대선에서 노무현 후보의 대선 핵심 공약 중에 하나이기도 했다. 또한 지난 4.15 총선에서 이를 공약으로 내세운 열린우리당이 다수당이 되었다. 이러한 대의 민주주의상의 일련의 과정들을 거쳤음에도 관습헌법이라는 논리로 위헌 판결을 내린 것은 납득하기 힘든 처사다. 대통령과 정부, 국회와 일반 국민들도 가늠하기 힘든 관습헌법을 헤아릴 수 있는 헌법 재판관들의 문학가적 상상력과 역사가적 고증력에 무릎을 꿇고 감동의 눈물이라도 흘려야 하나?


관습헌법을 성문헌법과 똑같이 취급한다면 관습헌법을 판단할 수 있는 권한을 독차지한 헌재가 국회의 입법권을 제약할 위험이 크다. 앞으로 열린우리당이 추진할 각종 개혁법안들이 수구기득권 세력에 의해 위헌 소송이 잇따라 제기될 경우 관습헌법을 판별할 수 있는 놀라운 능력(?)을 가진 헌법재판관 9인이 대한민국을 실질적으로 통치하게될지도 모른다. 얼마 전 헌재는 국가보안법에 대한 헌법소원은 전원일치로, 양심적 병역거부는 7대 2라는 압도적 다수로 합헌 결정을 내린바 있다. 이러한 헌재의 보수성은 행정권력과 입법권력의 교체에도 불구하고 수구기득권 세력이 큰 소리 칠 수 있는 토양이 되고 있다는 강한 의구심을 가지게 한다.


우리는 이번 사태를 통해 두 가지를 정리해볼 수 있다. 우선 헌재의 권위가 어디까지 정당한 것인가에 대해 근본적으로 문제제기를 해야 한다. 헌법재판관이나 대법관이 비록 대통령으로부터 임명을 받아 간접적으로 민주적 절차를 거치기는 하지만, 대통령과 국회에 비해 민주적 정당성이 떨어지는 것은 사실이다. 이런 측면에서 헌법 재판관이 자신의 분수를 망각하고 대의 민주주의를 위협할 경우에 자신들 스스로가 헌법 질서를 문란하게 만드는 우스운 꼴이 될 것이다. 헌재의 결정은 존중하지만 관습헌법 같이 억지 짜맞추기식 논리를 남발하다가는 국민들의 분노를 면치 못할 것이다(하지만 분노를 해도 심판을 할 뾰족한 방도는 없는 실정이다ᅳ.ᅳ). 앞으로 민주적 대표성을 확립하고, 다양한 사회적 가치를 반영할 수 있는 헌재를 구성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다음으로 참여정부는 이러한 정치적 시련에 굴복하지 말고 지방 분권화와 국토 균형발전이라는 목표를 흔들림 없이 추진해야 한다. 행정수도 이전이 한나라당, 서울시 의회의 선동과 정파적 이해관계에 함몰되면서 국민적 지지를 얻어내는데 실패한 것은 겸허하게 반성해야 한다. 앞으로 수구기득권 세력의 악의적인 선동과 저주 속에서도 국민들의 삶의 질이 고루 개선될 수 있는 방안을 궁리하는 데 더욱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또한 의기소침해졌답시고 개혁입법 추진에 더 이상의 지체가 있어서도 안 된다. 노무현 대통령과 열린우리당이 이 위기를 “위대한 기회”로 만들 수 있기를 기대한다.


물론 이번 사태에서 긍정적 측면이 아주 없는 것은 아니다. 이번 헌재 코미디는 알 수 없는 소리들을 주절거려 우리를 쫄게 만들었던 법관들이 사실 쥐뿔도 아닐 수 있구나 하는 유쾌한 깨달음을 선사해준 것이다. 아~  법관들이 괜히 좋은 우리말 비비꼬아서 사용할 때부터 알아 챘어야했다. 이 사람들이 잘 몰라서 그러는 것이라는 것을... - [憂弱]

엄마야, 누나야 관습헌법이 보우하는 서울살자.
Posted by 익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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