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짱 퇴임 기념 인터뷰

잡록 2004. 12. 7. 01:15 |
3년 간의 학생회 일꾼 생활을 마치고 평민(?)으로 돌아온 익구와 인터뷰했다. 인터뷰 씩이나 해주는 곳이 있을리 없으니 주특기인 혼자 묻고 답하기로 진행했다. 그의 솔직한 심정 토로와 자화자찬을 감상해보자.^^ 스크롤의 압박이 좀 있으니 마음의 준비가 필요하다.


우선 지난 3년 간 고생 많으셨다. 시원섭섭하겠다.

- 시원섭섭하기보다는 그냥 시원할 뿐이다. 3년 간 학생회 일꾼으로써 해볼 수 있는 일, 겪어 볼만한 것들 다 해봐서 그런지 몰라도 더 이상의 미련이 없다. 오히려 마음이 홀가분해져서 시원한 기분만 압도할 뿐이다.^^


경영대 학생회장(이하 경짱)이 되기 전 학생회 생활을 정리한다면?

- 2002년 1월경 수시 합격생을 위한 오티에 참석했고, 그 때 35대 총학생회 홍보 시간이 있었다. 그 때 설문조사를 했을 때 학생회 일꾼 의사가 있다고 답했고 추후에 연락이 온 것이 인연이 되어 여기까지 이어져 오게 되었다. 입학하기도 전에 35대 총학생회 정책국원이 되었으니 지금 돌아보면 참 기막힌 노릇이다.

  총학생회 일꾼이었던 02학번은 나 이외에도 많았다. 하지만 36대 중앙선거관리위원회가 끝나는 그 순간까지 있었던 새내기는 나 혼자였다. 나는 35대 총학생회 기획국 차장이라는 제법 그럴 듯한 말단 일꾼으로 새내기로서의 한해를 살았다. 비록 잡일꾼이었지만 총학생회 살림이 꾸려지는 과정들을 새내기치고는 제법 관심을 가지고 지켜봤다. 35대 고려대학교 총학생회는 고대 최초의 비운동권 총학생회라는 명칭에 걸맞게(?) 이미 거의 대부분의 단과대를 장악한 운동권 학생회들과는 맨날 소모적 신경전이 벌어졌다. 사소한 차이를 메우지 못하고 비생산적인 다툼이 나중에는 너무 익숙해져버렸다. 아마도 그 때의 경험 덕분에 내 인내력이 많이 신장되었을 것이다.^^ 막내 입장이었고 치열하게 투신하지는 않았기 때문에 임기를 끝까지 채울 수 있었다고 생각하지만 뭐든지 일단 시작하면 중간에 그만 두지 않는 성격이 크게 작용했을 것이다.

  총학생회 일꾼 한해 동안 너무 지긋지긋하게 시달렸기 때문에 정말 딱 잊고 새롭게 대학생활을 꾸려나가려고 했었다. 그런데 총학생회 사무국장을 하셨던 장정우 형께서 36대 경영대 학생회장 선거를 나가셨다. 더 이상 학생회 바닥에 기웃거리지 않기로 했었는데 학생회 조직이 취약한 경영대 사정을 잘 아는 터라 무슨 측은지심이 들었던지 결국 돕기로 했다. 36대 경영대 학생회 기획국장 일은 2003 새터 준비나 매 학기 사물함 배분이 좀 빡세서 그랬지 총학생회 일꾼 생활의 1/10의 힘만 들이고 한해를 보낸 것 같다.


37대 경짱 출마는 어떻게 결심한 것인가?

- 사실 내 꿈은 단과대 학생회 사무국장이었다.^^; 농담 삼아 내 궁극적 장래 희망이 국무총리이듯이 말이다.^^ 그런데 36대 경짱님께서는 내 바람과는 달리 내게 사무국장을 시켜주시기 않았다. 사실 초기에 이게 은근히 불만이라 학생회 일꾼 그만두려고 했었다. 그런데 일단 시작하면 쉽게 그만 못 두는 성격 탓에 결국 한 해 꼬박 다 채운 것이다. 경짱의 꿈보다는 경영대 사무국장 자리가 더 탐났고, 서울외고 6기 중국어과 동창회 건설이나 경영 E반 학생회 건설 등에 더 뜻이 있었지만 모두 다 지지부진했다. 그 와중에 고등학교 친구 중에 청원, 효석 두 친구가 학생회장 출마를 사실상 부추기기도 했다.^^;

  2학기 들어서 학생회 일이 거의 마무리되는 시점에서 경영대 학생회 일이 크게 많은 것은 아니라서 부담 가지지 않고 한해 더 살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솔직히 말해서 그 때 당시 학생회장으로 나올 만한 분이 존재하지 않았다. 아무리 학생회 활동이 취약한 경영대라고 해도 학생회 건설마저 무산되어서는 안되겠다는 학생회주의자(?)의 집착이 발동했는지도 모르겠다. 단독선거도 이미 예상한 것이어서 부담 없이 출마하게 됐다. 애초에 작은 학생회를 공언하고, 현상유지하는 것을 목표로 정했기 때문에 욕심부릴 것도 없었다. 어쩌다가 팔자에도 없는 직선대표를 하게 된 것 같다. 학생회에 대한 무관심이 어쩌다가 나 같이 무능한 놈이 자리를 차지하게 만들어줬지 뭔가.^^;


경짱으로서 지내면서 가장 기억에 남는 일이나 가장 아쉬웠던 일이 있다면?

- 아무래도 2004 새터가 기억난다. 아쉬웠던 점은 거의 기억이 나지 않고 그 때 고생했던 많은 새터준비위원들에게 고마운 마음뿐이다. 물론 사발식 시주 네 번 째 반에서 정신을 잃어서 다섯 개반 돌지 못했던 대형 참사도 빼놓을 수는 없다.^^; 그간 멸실된 경영대 학생회칙도 제정했으며, 미약하기는 했지만 경영대 단과대운영위원회나 경영대 학생대표자회의도 복원하는 등의 안살림을 챙긴 것도 잘했다고 자평한다. 회칙개정을 위한 임시 전체학생대표자회의 때 투표율 50%가 넘어야 개표할 수 있다는 규정에 대한 삭제 발의도 당연시 되는 것에 대한 문제제기였다는 점에서 무척 뜻깊은 행위였다. 또한 각종 행사 때마다 다섯 개 반 뒤풀이 번갈아 가며 들렀는데 이 또한 소중한 추억이다. 슬픈 것은 잠깐씩 짬을 내어 들른 것이다 보니 깊은 관계를 맺지 못했고 막상 임기 끝나고 나니 좀 더 친해져 둘 걸이라는 아쉬움이 남는다. 학생회 일하면서 사람이라도 남기지 않으면 허무해서 어쩌겠는가?^^ 여하간 나를 도와줬던 분들, 나와 놀아줬던 분들과 앞으로도 좋은 관계 맺어간다면 경짱은 과거의 추억이기보다는 현재진행형으로 계속 존재할 것이다.

  아쉬웠던 점은 학생회 회의나 사업들을 잘 알리지 못한 것이다. “열려있고 쉽고 낮은 경영대 학생회”라는 모토를 사용했는데 그에 부응하지 못하고 닫혀있고 어렵고 높은 학생회가 되지는 않았나 반성이 된다. 회의 진행 과정이나 사업계획 같은 것을 좀 더 잘 알려서 관심을 유발했어야 했는데 막상 회의 소집해서 진행하는 것만도 벅차서 제대로 하지 못했다. 사실 단과대 학생회 진행 사항을 일일이 기록할 영양가는 그다지 없는 편이다. 중앙운영위원회 같은 큰 회의도 회의록 작성이 제대로 잘 이뤄지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도 개인적인 욕심 때문인지는 몰라도 서기를 좀 더 일찍 뽑아 활용했더라면 하는 후회는 여전히 남는다.


경영대 학생회 운영은 어떤 식으로 했나?

- 보다시피 나란 녀석이 풍채 당당한 카리스마가 있는 것도 아니고 기댈 것은 오로지 자유주의와 민주주의밖에 없었다. 이것저것 처음부터 이야기 나누다 보니 회의가 길어지는 경향이 있었고 언젠가는 한 번 “어쩜 그렇게 쉬지 않고 계속 말할 수가 있죠?”라는 구박도 들었다.^^; 반일꾼들 상당수는 함께 토론해서 무언가를 정하기보다는 내가 딱딱 정해서 공지해주는 것을 바라는 눈치였다. 어지간한 사안들은 토론을 유도해서 좀 더 숙고해서 정하려는 내 방식이 어리버리, 우유부단하다고 질타 받기도 했다. 또 일이 지지부진할 때도 마냥 싱글벙글하다 보니 “화를 내본 적이 있어요?”는 진지한(?) 질문까지 받기도 했다.

  내가 비록 모질지 못해서 조금 강단이 없어 보이기는 했지만 한해 동안 숱한 회의에서 민주주의 원칙을 지켜 가면서 실무적인 것을 비교적 깔끔하게 처리했다고 자부한다. 앞으로도 어떤 조직의 일꾼 역할을 하게 될 것이다. 그런 기회가 온다면 나는 통솔력 있는 사람도 아니고, 번뜩이는 재주를 지닌 사람도 아니지만 소심함에서 우러나오는 꼼꼼함과 성실함으로, 어수룩함에서 묻어 나오는 진솔함과 편안함으로 꾸려나갈 것이다.

  나는 도덕경 제 8장의 첫 구절인 '上善若水(가장 좋은 것은 물과 같다)'의 정신으로 학생회를 꾸려나가기로 약속했다. 자기를 비우고, 조용하고 성실하게, 오직 섬기는 자세로 시의 적절하게 움직이는 물, 어느 누구와도 다투는 일 없이 자기를 끝까지 낮추는 물의 자세를 얼마나 실현했는지는 잘 모르겠다. 물이 더러운 것을 씻어 준다는 것은 남의 허물을 대신 떠맡는다는 뜻이다. 부디 지난 한해 경영대 학생회의 모든 실수와 실책은 직간접적으로 다 내 책임이다.


상선약수는 익숙한 구호다.

- 사실 익구 전 생애를 통 털어 유지될 삶의 양식이라고나 할까. 뭐 지적하셨다시피 고등학교 학생회장 선거 때도 상선약수라는 구호를 내걸었다. 당시 중국어과 후보 단일화만 없었다면 상선약수를 좀 더 구체화되어 설명할 수 있었을 것인데 아쉽다. 이제사 하는 말이지만 상선약수 하나만 연설에 제대로 반영했다면 3등은 가볍게 했을 것이다(참고로 고등학교 학생회장 선거 당시 1위 500여표, 2위 300여표, 3위 120여표, 4위 110여표, 5위 딱 100표, 6위 60여표 득표했다. 후보 단일화를 통해 연설도 대충하는 등 선거 관련 행동은 일체 하지 않았던 익구는 100표 득표로 5등 했다). 나는 도덕경에 나오는 물과 같은 사람이 되고 싶다. 내 공로를 인정받기 위해 애쓰거나 남들 위에서 군림하려고 집착하기보다는 그저 밑에서 묵묵히 섬기는 자세를 갖추고 싶다. 상선약수는 앞으로도 내 단골 구호가 될 것이다.


학생회 집행부 이야기 좀 해달라.

- 우리 경영대는 학생회 인력풀이 거의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초기부터 고민한 것이 일꾼을 모집하는 것이다. 그래서 많은 노력을 기울였는데 퇴임 즈음해서는 10명의 집행부를 거느릴 수(?) 있게 되었다. 일이 있을 때만 모여서 일을 돕고는 흩어져버리다 보니까 농담 삼아 007 첩보 활동이라고 부르기도 했다.^^; 내 임기 시작부터 끝까지 한결같이 내 곁을 지켜준 사무국장 재희, 내 꾀임(?)에 넘어가 입대도 한참 늦추고 나를 수행하느라 고생 많았던 기획국장 현수, 나랑 잘 놀아주는 다정다감한 교육국장 미선, 성실한 문화복지국장 회선, 글씨 잘 쓰는 홍보국장 윤원, 궂은 일도 마다치 않는 정책국장 호영, 든든한 인사관리국장 화영, 재치만점의 대외교류국장 철운, 촌철살인의 서기 겸 수석보좌관 은기, 꼼꼼한 편집국장 효진이까지 모두들 참 고맙다. 다들 마음에 쏙 드는 후배들이다. 좀 더 잘해주고 싶고 더 많은 이야기를 나누고 싶다. 우리의 임기는 끝났지만 우리의 교류는 이제 시작이다.


비운동권을 자처했는데 학생 운동은 어떻게 생각하나?

- 열심히 운동권을 비판하고 있지만, 부당한 매도에는 방어를 해주는 편이다. 오늘날의 학생 운동이 상당부분 그들 스스로의 잘못과 실책으로 쇠락하고 있다. 하지만 우리는 배우는 학생들이며 누구나 실수를 하게 마련이다. 비록 나와는 정치적 라이벌이지만 그네들이 불신의 눈초리를 받는 것은 가슴 아프다. 좋은 세상을 만들어 가는데는 여러 가지 길이 있다. 운동을 하는 학우들의 길이 조금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해서 완전히 외면하지 말았으면 한다. 한국사회가 학생운동에게 진 빚은 여전히 지대하다.

  학생회 일꾼들의 땀과 눈물을 너무 무겁게 여길 필요도 없지만 너무 가볍게 여기지도 말아줬으면 한다. 살맛 나는 세상을 위해 노력하는 일꾼들에게 정파와 이해를 떠나 따스한 관심 부탁한다. 누구나 결점은 있게 마련이지만 그 결점을 채워나가려는 노력을 보시고 애정 어린 비판을 아끼지 말아주시기 바란다. 건실한 경쟁 속에서 참된 진보를 만들어낼 수 있을 것이다.

  다만 학생회 일꾼들이 명심할 것은 이제 학생회 조직으로 대동단결하는 시대는 끝났다는 것이다. 얼마 전 전직 학생회장 친구들과 이야기하며 앞으로 학우들이 이렇게 학생회를 필요로 하지 않으면 없어질 수도 있겠다고 말했다. 개인적으로는 학부 학생회도 대학원 학생회 정도의 위상이 될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하고 있기도 하다. 이번 38대 총학생회 선거에서 연장투표가 진행되자 전례 없이 많은 학우들께서 반발하셨다. 이제 학우들은 아무리 선의가 충만한 것이라고 해도 정치적 동원이라는 생각이 들면 결연히 반대하실 것이다. 학우들의 의사와 괴리되어 대리인 비용을 높이는 것을 이제 용납하지 않는 추세이다. 학생회 일꾼들은 대의 민주주의제 하에서 필연적으로 발생하는 대리인 비용을 줄이기 위한 노력을 더 기울여야 한다. 원론적인 이야기지만 참 힘든 과제다.


경짱을 하면서 받았던 오해가 있다면?

- 많은 이들이 정치에 관심이 있느냐 묻고 앞으로 그 쪽 방면에서 일할 것이냐고 물었다. 사실 이건 오해가 아니라 그냥 사실이다. 예나 지금이나 나는 정치적 사안에 대해 발언도 많이 하고 관심도 많은 편이다. 앞으로도 그렇게 정치가 잘 돌아가기를 바라는 마음을 가지고 눈길을 보낼 것이다. 실제로 내가 지지하는 대통령과 정치 세력에게 도움을 주고도 싶다. 자유주의를 참칭하는 사이비 자유주의자들이 아닌 진짜 자유주의자가 이 땅의 개혁을 책임지는 모습을 보고 싶다. 다만 내가 생각하는 정치란 국회의사당과 청와대에서만 이뤄지는 것이 아니라 이런저런 성격의 조직의 의사결정 속에서 백가쟁명 백화제방하는 생활정치가 실현되는 것을 말한다. 누구나 자신의 의견을 자유로이 말하고 논의할 수 있는 분위기에 더 관심이 있다. 삼천포로 빠지는 이야기지만 국가보안법은 얼른 폐지해야 한다.^^

  나는 정치에 관심이 많은 녀석이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다만 이 대목에서 많은 분들이 오해하고 있으신 점이 있다면 나는 정치 분야만 관심 있지는 않다는 점이다. 명색이 경영학도인데 그 쪽 분야도 관심이 지대하며, 역사, 철학 같은 인문학적 소양을 쌓기 위해서도 노력하고 있다. 나는 배우는 학생이고 이것저것 많이 익혀서 써먹고 싶다.

  아참 그리고 항간에 내가 학점 4.0이 넘는다는 루머가 떠돌고 있어서 해명해야겠다. 지난 5학기 평점평균은 3.8이니 오해들 마시라. 물론 나는 학생의 본분은 어디까지나 학업이고, 학업에 소홀해가면서까지 다른 일에 투신하는 것을 꺼리는 범생주의자다. 남은 학기들 학업에 열중해 졸업할 때는 4.0에 근접한 학점을 얻고 싶다. 재수강들 하면서 루머가 현실이 되도록 노력하겠다.^^


앞으로의 계획은?

- 35대 총학생회, 36대 중앙선거관리위원회, 36대 경영대 학생회, 37대 경영대 학생회, 38대 경영대 선거관리위원회로 이어진 지난 3년 간의 학생회 일꾼 생활에 회한도 많이 남지만 이제 깨끗이 정리했다. 이제 다시 새로운 인생의 보람거리를 찾아야 한다. 최근에 평소 해보고 싶었던 역사기행을 이래저래 다녔다. 서울시내 5대 궁궐을 비롯한 문화 유적들을 제법 둘러봤다. 그 다음에는 소개팅 등을 통해 연애나 한 번 해볼까도 생각 중인데 아직 잘 모르겠다. 내가 지지하는 대통령과 정당을 위한 활동도 해보고 싶은데 아마 최소한에서 그칠 것이다. 또한 이 해방감을 채우는 데는 역시 책이 제격일 것이다. 무엇보다도 학생회 생활을 계기로 맺었던 소중한 인연들을 꾸준히 이어나가기 위한 노력할 것이다. 내년 2/4 분기에 공익근무를 할 계획이라 당분간 휴학을 하며 어떤 공부를 할지 등도 좀 더 생각해야겠다. 여하간 그간 모자란 사람의 빈곳을 채우느라 고생했던 분들에게 참 고마웠다며 충심 어린 감사 인사를 나누고, 정을 담은 술 한잔을 건네고 싶다.


끝으로 한 마디 한다면?

- 익구는 앞으로 더 열심히 살 것이다. 지인 여러분들과의 관계도 더욱 돈독하게 이어나갈 것이다. 나는 빚지고는 못산다. 내게 아름다운 마음을 보여주신 분들, 모자란 녀석에게 투자해주셨던 모든 분들께 반드시 보답할 것이다. 에머슨은 “자기가 태어나기 전보다 세상을 조금이라도 살기 좋은 곳으로 만들어 놓고 떠나는 것, 자신이 한 때 이곳에 살았음으로 해서 단 한 사람의 인생이라도 행복해지는 것”이 진정한 성공이라고 말했다. 익구란 녀석과 함께 했던 시간이 살림살이에 코딱지만큼이라도 보탬이 되고, 쥐꼬리만큼이라도 유쾌해질 수 있도록 치열하게 정진할 것이다. 그래서 오래도록 사귀고 싶은, 곁에 두고 함께 이야기 나누고픈 녀석이 될 생각이다.^^ - [憂弱]
Posted by 익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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