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개 두 녀석 덕분에(?)

잡록 2003. 7. 15. 21:08 |

<2001/11/20 쓴 글>

저의 침대에는 베개가 두 개 놓여 있습니다.
언제부터인가 베개 두 개가 있는 것은 낯익은 제 방 풍경입니다.
한 녀석은 노란색과 남색의 체크무늬
한 녀석은 노란색도, 연두색도 아닌 어정쩡한 색깔...
두 녀석 중에 잠을 잘 때는 '체크무늬 베개'를 썼습니다.
그 베개가 더 낮아서 더 편하기 때문에...

그런데 어느 날 엄마께서 베개를 빨고 나신 후에
베개 껍데기를 바꿔 놓으셨습니다.
몇 년만에 벌어진 사건(?)이었습니다.

베개가 바뀐 관계로...
이제는 '어정쩡한 색의 베개'를 베고 자야했습니다.
하지만 며칠간은 무의식적으로
체크무늬 베개를 끌어다 베다가
높이가 맞지 않는다는 것을 느끼고 다시 베개를 바꿔야 했습니다.

밤마다 베개를 바꾸기를 며칠...
문득 "익숙함"이라는 것에 대해 생각이 들더군요.

어린 왕자에서의 "길들여짐"이라는 단어도 스쳐갔지만
저를 흔들었던 것은 "실존(實存)"이라는 단어였습니다.

살다보면 많은 사람들을 만나게 됩니다.
그 중에는 친구라는 이름을 얻는 사람도 있을테지만...
친구라는 이름에 머물지 않고
정말 익숙한 친구, 실존하고 있는 친구를
두기란 정말 힘든 일입니다.
여기서부터는 양(量)이 문제가 아니라 질(質)이 문제이기에...

과연 나는 얼마나 많은 친구에게 "실존"하고 있을까?
저는 좀 더 많은 이들에게 실존하기 위하여
부단히 노력하려고 하지만 쉽지만은 않습니다.
나는 누군가에게 익숙한 사람이 될 수 있으려나?

누군가에게 실존하고 있다는 것,
익숙하다는 것은 기분 좋은 일일 것입니다.
실존 해야만이 의미가 있는 것입니다.

'사르트르'가 주창한 "실존은 본질에 앞선다."라는 명제를 알 듯 모를 듯.
"나"라는 개체의 본질도 정말 중요합니다.
하지만 그 누군가에게 실존하고 있지 않다면
자신에게 익숙한 것 몇 개조차 두지 못했다면...
"나"라는 개체는 허상에 지나지 않을까요?

살아가면서 우리 안에 실존하고 있는 것은 얼마되지 않습니다.
그걸 명심하고 우리에게 익숙한 것에 더 소중히 여겨야겠습니다.

만화 [원피스] 16권에서 닥터 히루루크의 대사를 꺼내봅니다.

"사람이 언제 죽는다고 생각하냐? ...(중략)
사람들에게서 잊혀졌을 때다!!!
내가 사라져도 내 꿈은 이루어진다.
"이어 받는 자"가 있다면..."

베개 두 녀석 덕분에(?)
새삼 익숙함의 축복, 실존한다는 것의 가치를 생각합니다.
지금 여러분에게 익숙하게 느껴지는 것은 무엇입니까?
여러분에게 실존하고 있는 것들에 충실하고 있습니까? 6(^.^)9

Posted by 익구

댓글을 달아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