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0/11/26 쓴 글>

  행복에 대해 이야기를 하기 위해 먼저 칸트 이야기를 하겠습니다.개인적으로 제가 가장 존경하는 학자인 칸트는 그 학문의 내용도 물론이지만 한 학문을 위해 헌신한 그의 진지한 삶이 저를 매혹합니다. 아마 확실히는 모르지만 초등학교 생활의 길잡이에 나온 칸트의 규칙적인 생활 이야기를 접한 이후부터 그를 이렇게 받들게 되었던 것 같습니다.


  광대한 칸트의 철학중에서 (물론 아는 바도 없지만...)그가 말한 인식이론에 대해 살펴볼까 합니다. 자신의 인식이론을 칸트는 '코페르니쿠스적 전환'에 비유했습니다. 종래에는 대상에 따라 인식한다고 생각했지만, 인간에게 내재해 있는 선천적 형식에 따라 대상이 들어와 인식된다는 것은 마치 천문학상에서 천동설이 지동설로 뒤집힌 것만큼이나 획기적인 것이라고 생각한 것입니다.


  다시 말한다면 인식에서의 '코페르니쿠스의 전환'이란 대상이나 사물이 이미 완성된 상태로 주어져 있고, 우리가 그에 따라 모사하거나 반영함으로써 인식이 성립하는 대상 중심의 인식론이 아닙니다. 이것은 명확하지 않고 그럭저럭 주어지는 대상을 인간이 어떤 구체적인 대상이나 사물로 만들어서 인식한다는 인간 중심의 인식론을 말합니다.


  간략히 말해 이전의 인식론은 주어진 명백한 대상을 우리가 인식해 가는 것이었다면 칸트의 인식론은 그냥 주어진 대상을 우리가 여러 가지 범주를 이용하여 능동적으로 인식해 낸다는 차이가 있습니다.


  단적인 예를 들어보면 여기 오이 한 접시가 가득 있다고 합시다. 저같이 오이를 싫어하는 사람은 보자마자 눈살을 찌푸릴 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오이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잘 씻어서 아삭 깨물어 먹고 싶다고 생각할 지도 모릅니다. 피부미용에 관심이 많다면 오이마사지를 떠올릴 테고, 달팽이를 키워 본 사람(제가 옛날에 그랬죠...)은 오이를 썰어서 달팽이 먹이로 주고 싶을 겁니다. 이처럼 똑같은 오이를 두고서 사람마다 다른 인식의 형식이 있다고 주장하는 것입니다. 우리로서는 너무나 당연하게 느끼는 것임에도 말만 어려운 건지도 모르겠습니다.


  이제 본론으로 들어가 보자면 며칠전에 불현듯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행복이란 무엇일까?" 그러다가 "개개인의 행복이 최대한 보장되고 개인의 행복이 타인의 행복에 해를 끼치지 않는 한도 내에서의 행복이란 어떤 것일까?"라고 질문을 던졌습니다. 물음은 꼬리를 이었고, 그러다가 문득 내가 생각하고 있는 것이 공리주의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칸트의 정언명령에 다소 의문을 가지던 저로서는 일대 혼란에 빠졌습니다. (아시다시피 칸트는 절대론적 윤리설이고 공리주의는 상대론적 윤리설이지요.) 엉뚱하게 윤리 문제까지 번졌지만 결국에는 인간은 행복하게 살 권리와 의무가 있다고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한동안 행복의 방법론들을 모색하기에 여념이 없었습니다. 근 한달 간 행복주의니, 해피즘이니 하며 고민하던 저였는데 어느날 한 스님의 신문사설을 읽고 경악(?)했습니다. "반드시 행복해야 돼."라는 생각 속에서 행복은 무거운 짐이 되어버린다는 그 글을 읽고 나의 지난 한달간의 논의가 얼마나 허망했는가 돌아보니 허탈 그 자체였습니다. 나만의 행복은 무엇일까 하며 갖은 궁리를 하면서 행복에 집착하고 있었던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엄습했습니다.


  그러던 중 이런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러고서는 스스로 행복의 '코페르니쿠스적 전환'을 해냈다며 자화자찬(?)했습니다. 얻은 것이 있으면 잃는 것이 있다는 것은 진리지만 때로는 얻기 위해 잃은 건지, 잃기 위해 얻은 건지 알 수 없기도 합니다. 그때마다 잃은 것에 가슴 아파하는 건 비단 나만의 일은 아닐 겁니다. 잃은 것을, 모자란 것을 채워나가면 거기서 행복이 있는 줄 알았습니다. 하지만 너무 오랜동안 잊고 있었습니다. 얻은 것에 감사하고 있는 것에 만족할 줄 아는 마음을... 설령 얻은 것보다 잃은 것이 많다손 치더라도 우리는 얻은 것을 소중히 해야 합니다. 그렇다면 굳이 행복을 찾고자, 누리고자 헤매이지 않아도 되지 않을는지...


  이런 뻔한 이야기를 참 빙빙 둘러서 말했군요. 그래도 뭐... 어차피 행복이란 우리 삶을 영원한 화두일테니...


  달라이라마께서 이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진정한 자비심은 물질을 나눠주는 것이 아니라, 마음이 행복해지는 방법을 가르쳐주는 것이다." ...


  아직도 멀은 저입니다.

Posted by 익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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