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토요일에 스승의 날 겸해서 고등학교를 찾아갔다. 뭐 이제는 제법 낯설어진 것 같기도 하다. 이제 이 학교의 주인은 교복을 갖춰 입은 후배님들의 것이니까... 내 것도 아닌 것에 자꾸 침 흘리는 것도 상도덕에 어긋나는 처사이리라.^^; 고등학교 친구들 만나면 여전히 고등학교 시절이 그립다는 이야기가 쏟아지지만... 그 투정은 지난날의 추억이나 고민들이 점점 옅어져가고 있다는 반증일 것이다.


이제 서로 얼굴 한 번 보기도 점차 힘들어지고, 딱 잘라 말해 콩가루 현상이 가속화되고 있다. 역설적이게도 고등학교에 얽매여 있던 것들에서 상당수 벗어난 것만 같은 기분이 든다. 얽매인 것에서 벗어난다는 것은 홀가분함이 가장 먼저 찾아오지만... 그 뒤를 이어 두려움과 혼란 등이 줄지어 찾아오기에 당분간은 이 어수선함을 달게 받아들여야겠다.


지나가 버린 것은 미화되기 쉬운 법이다. 좋은 것은 더욱 좋게, 그저 그런 것은 좋은 쪽으로, 나쁜 것은 덮어두려 하는 것은 한 개인의 소박한 심리적 방어기제일 것이다. 대학 새내기 시절을 어영부영 제대로 한 것도 없다고 매섭게 몰아붙이다가도, 당시의 선택 하나하나에 담긴 고민을 돌아보며 조금씩 누그러뜨리는 것도 마찬가지의 방어다.


고등학교를 찾아갔을 때 윤리 선생님께서 뼈 있는 말씀을 던지셨다. “이제 학교일랑 찾아오지 마라. 앞으로 나가기도 바쁜 너희들이 자꾸 뒤를 돌아봐서야 되겠냐.” 어찌나 가슴을 파고들던지 모르겠다. 과거지향적인 모습을 많이 보여주던 나에게는 더욱 날카로운 비수였다. 갈 길이 멀다는 것을 당연히 알고 있다. 쉬어 간다는 핑계로 숨 고르는 시간이 자꾸 길어지고 있다는 것도 충분히 느끼고 있다.


아직도 간간이 나를 ‘익구어린이’라는 애칭으로 불러주는 친구가 있을 정도로 유치한 짓거리를 많이 하며 살아왔다. 물론 ‘익구어린이’에 담긴 애정 어린 뜻 한 편에는 현실감각 없이 좌충우돌하는 익구에 대한 경멸의식도 조금은 섞여있다는 것을 모르는바 아니다. ‘익구청년’으로 갈아치운 지 꽤 오래되었지만 여전히 ‘익구어린이’는 뜨거운 감자다. 익구어린이가 품었던 ‘순수’와 ‘이상’이라는 화두는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성년의 날이다. 그간 어리게 놀던 것들이 한꺼번에 무너지면서 왕창 늙어버린(?) 기분이다. 이런 내 기분을 아는지 노원구청에서 고맙게도 성년의 날 기념 카드를 보내왔다.


성년이 된 것을 축하드립니다.
이웃과 사회에 큰 일꾼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이 두 줄을 여러 차례 읽으면서 떨림... 다음으로 서글픔을 느꼈다.


“익구어린이가 성인이 되기는 하는 걸까?” 6(^.^)9 (2003/05/19)
Posted by 익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