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이가 차별이 되어서는 안 된다”

이는 모든 교양 있는 사람들의 상식이다. 그러나 이 상식은 너무나 많이 짓밟히고 있다.


양성평등을 주창할 때... 무식한 마초들이 주절대는 것이 있다.
“억울하면 남자처럼 군대도 가고, 무거운 물건도 들어봐. 못하면 좀 가만히 있어.”


남성이 여성보다 근력이 세다는 생물학적 우위를 주장하며 우월감을 확인하려는 일부 무식한 마초들. 그것밖에 자랑할 게 없다니 인생이 불쌍할 뿐이다.


일부 극단적인 마초들은 이 땅을 동물의 왕국으로 규정하려고 노력한다. 약육강식의 논리를 옹호하는 한 편으로는 인간만이 가지는 허위와 위선으로 치장하기 여념이 없다. 전혀 인간답지 않은 논리를 사랑하면서, 인간다운 품위를 누려보려는 모순이다.


최근 금녀의 영역에 여성들이 성취를 하는 모습들이 여기저기 보이면서 여권신장이라는 호들갑을 떤다. 과연 여성도 남성과 똑같이 할 수 있다는 것을 보이는 것이 양성평등의 길일까? 아니다. 그렇게 할 필요도 없다. 그저 여성과 남성의 차이가 차별이 되는 것만 막으면 된다.


여자답게 살고 싶은 여자도 내버려 두고, 남자답고 싶은 남자도 내버려 두라. 그러나 그렇지 못한 사람들에게 자신의 가치관을 강요하자 말라. 특히 일부 극단적인 마초들은 자신의 단순함을 타인에게 전염시키려 하지 말라.


차이가 차별의 명분이 되는 세상은 명백히 잘못된 것이다. ‘고정적이고 획일화된 아름다움’이 그 기준에 도달하지 못하는 많은 사람에게 고통을 줄뿐이다. 양성이 ‘정말로’ 평등하게 공존하는 사회에서 개개인은 좀더 개성적이고 창의적이며, 무엇보다도 자유로울 수 있다고 생각한다.


양성평등주의를 지지한다. 그러나 평등에 대한 열정보다는 차별에 대한 경계로써 지지한다. 일각에서의 차별이 싫다고 차이마저 없애려는 시도에는 동의할 수 없다. 차이는 자유의 자연스런 산출물이다. 아울러 차이에 대한 상이한 보상도 당연하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차이가 폭압적 차별의 징검다리가 되는 것은 단호히 반대한다.


이 당연한 이야기가 아직도 유효한 세상이라니 참 우스운 일이다.^^; 양성평등 실현을 위해 사소한 것에 시비를 거는 용기를 가지기를 다짐해본다. 6(^.^)9


잡담들...

극우 헤게모니가 춤추는 한국 사회에서 소수파 노릇이란 두려운 일이다. ‘주류편입’과 ‘별류(別流)창조’(개성적인 흐름 정도의 의미)사이의 고민은 주류편입으로 점점 기울어져간다. 나같이 모자른 사람이 새로운 흐름을 만들어 주류에 대항하기가 힘에 부친다는 솔직한 자기인식이 진행되면서, 주류로 끼어 들고 싶은 욕망이 꿈틀댄다.


전체주의가 해체되고 모두가 개인 자체에서 출발하는 세상을 옹호하는 개인주의자라는 정체성이 무색할 만큼 현실추수적으로 살아가는 나를 바라보면 씁쓸함만 느껴진다.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에 대한 고민은 계속 되겠지만... 이것 하나만은 약속하자. “올챙이적 생각을 잊지말자고.”


나는 변방을 넓혀 중앙 없는 세상을 만들고 싶다. 모두가 서얼인 세상, 서울도 서얼이고 대구도 서얼인 세상, 자유주의자도 서얼이고 사회주의자도 서얼인 세상, 모두가 서북이고 송도인 세상, 남자도 서얼이고 여자도 서얼인 세상, 모두가 소수인 세상, 그래서 모두가 궁극적 소수 곧 개인인 세상. 모두가 서얼인 그 세상은 아무도 서얼이 아닌 세상일 것이다. 그 세상에서 나는 전라도 사람이기 이전에 개인이고, 서울 사람이기 이전에 개인이고, 한국인이기 이전에 개인이고, 아시아인이기 이전에 개인이고, 남성이기 이전에 개인이고, 김대중의 비판적 지지자이기 이전에 개인이고, 문필가이기 이전에 개인이고, 4인 가족의 가장이기 이전에 개인이고, 무신론자이기 이전에 개인일 것이다.
- 고종석, [서얼단상] 148쪽

(2003/05/23)

Posted by 익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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