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과에 대한 변명

잡록 2003. 7. 21. 01:27 |
(고3 시절 이과생이었던 친구가 점수에 맞춰서 대학을 가기보다는
학과를 먼저 생각해보자는 글을 올렸을 때 답글로 올린 것이다.
만인의 예상을 뒤엎고 경영학도가 되게 된 나에 대한 궁색한 변명과
익구의 현실추수적인 단면들을 잘 엿볼 수 있는 것 같다.^^;)


나는 문과라서 문과 중심으로 생각해보자면...
문과는 학과들의 성격에 큰 차이가 있지 않다고 생각한다.
솔직히 국문과나 법학과, 정치학과에 관심이 있었던 내가
순식간에 경영학과를 지망하게 된 것도
결국 거기서 거기라는 생각이 들었던 것 같다.

하긴... 이번 수시모집에서도 내가 지망한 학과는
경영학과, 사회학과, 정치행정학과...로 정말 다양했다.
하지만 어느 것을 하게 되더라도 즐겁게 시작했을 것 같다.
진리의 길을 제대로 간다면 시작은 그리 중요한 문제가 아니기에...

만법귀일(萬法歸一)...
물리학자에서 출발하든 철학자에서 시작하든
결국 어딘가에서는 만날 거라고 생각한다.
정해진 길이라는 것을 믿지 않는다.
아무리 억지로 들어간 학과라도 혹시 재미있어 질지는 모르는 일이다.
실상 우리가 원하는 학과라는 것이 장래가 유망하다고 생각되는
몇몇 학과에 집중되지 않는가...
정말 좋아서 진정으로 원하는 학과가 있겠는가...

어느 학교나 전교 1등 치고 법학과와 의예과
지망하지 않는 사람이 없다. (가능성 90% 이상)
그럼 전교 1등들은 모두 법학과와 의예과를 좋아한다라는
법칙이 필연적으로 성립하는 것인가...
뭐,,, 어느 정도 성립한다고 할 수밖에 없는 현실이다.
소위 말하는 그런 학과를 갈 때의 '보장'이 탐날 수밖에 없다.
전교 1등 하는 정도의 영특한 머리의 소유자라면
이런 정도의 이해타산이 분명히 나올 것이다.
... 그냥 이런 현실이 별로 좋아 보이지 않아서 해본 말이다.

재미있는 이야기를 소개하자면...
독일의 법학자 라드브루흐는 법학을 지망하는 젊은이를
크게 세 부류로 나눌 수 있다고 했다.
첫째 부류는 남들이 법을 공부하면 결코 손해는 안된다는 바람에
학문에는 관심도 없이 지망한 사람들.
둘째 부류는 중, 고교에서 우수한 성적을 나타낸 우등생으로서
법학과가 좋다니 당연히(?) 들어온 사람들.
셋째 부류는 철학, 예술 혹은 사회와 인도주의에 기울어지면서도
외적인 사정 때문에 부득이 법학을 택하게 된 이들.
예로 경제적으로 가난하여 작가나 학자의 길을 포기하고
법학을 선택하게 된 사람들이다.

우스운 것은 라드브루흐는 셋째 부류의 사람들이 끝까지 법학을
공부하면 누구보다도 훌륭한 법학자와 법률가가 될 것이라고 말한다.
글쎄... 이 글을 읽고 나는 무척 웃겼는데... ^^

친구들이 농담인지 진담인지 철학과에 가라고 하지만...
내 자신은 철학과에 가기 싫다.
철학과 출신들마저 자기 학과에 오지 말라고 충고하는 사회에서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것과는 별개의 문제로 진로는 선택하고 싶다.
게다가 결정적으로 나는 머리가 나빠서 도저히 할 수 없는 일이다. ^^
이렇게 말을 하면 혹 이런 말을 들을까?
"너만은 그러지 않을 것 같았는데..."
할 말 없지만... 에구에구,,,
아직 이 땅은 정말 가난한 사람은 학문하기가 힘든 곳 같다.
왜 내가 사회학자의 꿈을 접어야 했던가...
학자라는 것만큼 소모적인 직업이 어디 있던가...
이런,,, 신세타령이 시작되기 전에... 각설.

결론을 내리자면...
학과에 대한 고민은 어쩌면 그리 중요한 문제가 아닐 수도 있다.
문제는 특정 학과가 신분 혹은 계급이 되어버리는 사회 현실일 뿐.
슬픈 현실이지만...
우리에게는 여전히 학과보다는 입학자체가 더 문제이니까... ᅮ.ᅮ (2001/10/14)
Posted by 익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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