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가 문자를 보내왔다. 네 잎 클로버의 꽃말이 ‘행운’이라면 세 잎 클로버의 꽃말은 ‘행복’이라는 것을 알리는 문자였다. 그냥 ‘그런 줄 몰랐다, 좋은 거 배웠다’고 둘러대면 좋으련만... 이 심보가 그렇지 못하고 “나중에 내가 써먹으려던 건데 선수를 당했구만”이라는 답문을 보냈다. 열심히 엄지손가락 혹사시켜가며 문자를 보내준 친구가 민망하게 말이다.^^;


세 잎 클로버의 꽃말이 ‘행복’이라는 것을 안지도 제법 되었는데... 여전히 행복이라는 풀밭에서 행운을 찾아 헤맨 건지도 모르겠다. 지금 내가 쥐고 있는 행복보다는 저만치 떨어져 있는 행운의 형상들에 끊임없이 손짓하며 딴 마음을 품었는지 모르겠다. 이미 갖고 있거나, 언제든 얻을 수 있는 것보다는 좀 더 요원한 것에 마음이 끌리는 무책임한 확장욕구다.


전에는 내가 제법 용감한 내부 고발자쯤이나 되는 줄 알았다. 그래서 괜한 시비와 트집으로 평지풍파를 일으키기 일쑤였다. 이건 아니라며 분연히 따진 것들 중에는 꽤 호응을 얻은 것도 있고, 차가운 반응만을 받은 것도 있었다. 전체적으로 손익계산서를 만들어보자면 그다지 남는 장사가 아니었다는 것을 많이 느끼고 있다.


손해봤다는 생각이 커서였을까. 요즘에는 나의 칼날이 많이 무뎌진 것 같다. 전 같으면 왜 이렇게 못하냐, 왜 그런 식이냐며 닦달을 했을 나이지만... 이제는 될 수 있으면 좋게 받아들이려고 노력한다. 상대방 입장에서 저런 행동이 최선이 되었으리라고 선의의 해석을 하려고 한다. 좋게 말해서 역지사지이지만, 조금 비꼬면 알아서 기는 모드로 전환한 것이다.^^;


설령 아쉬운 점이 있더라도, 모자른 점이 있더라도... 지금 딛고 있는 곳을 옹호하고 사랑한다는 것은 치졸한 자기 방어 이전에 인지상정인지도 모르겠다. 현상황을 더욱 긍정하려한다는 점에서 조금 더 보수적이 되었는지 모르겠다. 그러나 진취적인 모습이 거세되었다고 슬퍼하기 전에, 나의 한계를 인정하고 내가 거둔 것들에 더욱 충실할 수 있는 모습을 아껴야겠다.


이렇게 된 데에는 아무래도 대학생활의 피상적인 인간관계가 한 몫을 했으리라. 굳건한 우정으로 영원할 것 같던 고등학교 친구들과 소원해지는 것이 꽤나 진척되고... 나름대로 노력해도 대학살이에서 사람과의 만남이 지지부진하다보니... 지금 있는 것에 만족하고, 기존의 것에 더욱 충실하기를 강요받게 된 것 같기도 하다.


어쨌든 네 잎 클로버의 허상만을 좇기보다는 세 잎 클로버의 소소한 행복을 누릴 줄 알게 되었다는 점에서 딱 그만큼은 더 현실적이 되었다. 어쩌면 세상은 나에게 좀 더 무뎌지기를 요구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계몽의 열정'이 식은 자리에 '상실에 대한 경계'가 피어난다. 아직은 세 잎 클로버에 좀 더 다가설 때이다. 지금 이 순간, 지금 만나는 사람들, 지금 하는 일이 가장 중요하다. 6(^.^)9 (2003/06/06)
Posted by 익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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