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꽤 오래 전에 썼던 글을 조금 덧붙여서 올린다. 나의 역사는 기억과의 투쟁이며 끊임없이 재평가되어야 한다고 믿기에... 이 글을 쓴지 꽤 되었는데 학생운동의 미묘한 변화의 흐름을 느낀다. 학생운동의 한 축이었던 전학협이 해소를 선언하고 한총련도 발전적 해소를 논의하고 있다. 학생회 해체 운동이라는 격한 목소리도 들린다. 학생사회에 대한 고민은 아직도 현재진행형이다.^^)


어느덧 대학 2학년이라는 직위(?)를 소지하게 된 것과 더불어 ‘헌내기’라는 칭호를 더하게 되었다. 문득 나의 대학 새내기시절을 돌아보니 별로 한 것도 없이 구질구질하게 보낸 것 같아서 영 안쓰럽다. 그나마 한 것이라고는... 35대 총학생회 기획국 차장이라는 제법 그럴듯해 보이는 말단 일꾼으로 활동했다는 것 정도라고 할까... 나는 입학하기 전인 2002년 1월에 총학생회 홍보를 듣고 지원을 했던 수많은 사람들 중에서 하나에 불과했다. 그런데 임기 끝까지 남아 있었던 거의 유일한 02학번 생존자(?)가 될 줄은 그때는 알 수 없었다. 나로서는 그 자랑스런(?) 업적을 드러내놓고 뽐낼 만도 하건만... 오히려 무거운 짐이 된 것만 같은 기분이다.



비록 잡일꾼이었지만 총학생회 살림이 꾸려지는 과정들을 새내기치고는 제법 관심을 가지고 지켜봤다. 35대 고려대학교 총학생회는 고대 최초의 비운동권 총학생회라는 명칭에 걸맞게(?) 이미 거의 대부분의 단과대를 장악한 운동권 학생회들과는 맨날 소모적 신경전이 벌어졌다. 말단 잡일부에 지나지 않았던 나이지만 그런 파행적인 모습들을 지켜보며 인식의 간극의 방대함에 경악을 금치 못했다. 일반학생들에 눈에는 뭐 저런 것을 가지고 피 터지게 싸우냐 싶을 정도로 그들만의 문제에 매몰되어 생산적인 활동을 이루어내지 못한 것도 많이 있다. 또한 운동권 내에서도 서로 계열이 다르다는 이유로 서먹서먹한 모습들을 볼 때면... 학생사회의 분열이라고 하는 말에 대해 어느 정도 감이 잡히기는 했다.



분명 나는 운동권학생들에게 진 빚이 있다고 늘 생각하고 있었다. 뭐 학생운동사나 그런 것들에 대한 지식이 전무했지만... 그저 남들이 그러니까 나도 덩달아 그러려니 하면서 말이다. 유시민씨의 말대로 ‘민주공화국 대한민국’은 이 ‘미련한 인간들’에게 엄청난 빚을 지고 있다. 그의 말대로 경제정의의 실현을 위해서 나는 채무의식을 내내 버리지 못했다. 침묵과 복종이 몸을 지키는 방책이던 시절에 말하려 했고 싸우려 했던 이들... 미련하고 바보스러웠던 사람들을 잊는다는 것은 ‘붕어대가리 같은 녀석’이라고 생각했다. 나쁜 기억력이 행복의 지름길이라지만, 모르는 게 약이라지만... 잊어야 하지 말아야 하는 것들은 분명 있다. 지금도 그 생각은 변함 없다. 또한 운동권에서 배출한 활동가와 이론가들이 이 땅의 민주화에 많은 기여를 한 것을 부인할 생각이 추호도 없다.



하지만 미련하지만 순수한 운동권 분들에 대한 첫인상은 점차 노련하고 노회한(?) 정치꾼의 모습과 별반 다를 바 없다고 생각되기 시작했다. 어쩌면 그간 운동권의 성지라고 불리던 고대에서 정권(?)을 빼앗긴 것에 대한 분풀이였을까. 총학생회와 단과대 학생회장들과의 마찰은 참으로 낯부끄러웠다. 한나라당과 민주당이 저렇게 싸우면서 접점을 찾지 못하는 이유를 축소판으로 보았다고나 할까. 하지만 난 또 낙관적인 견해를 내놨다. 결국 윗대가리들의 권력 다툼, 자존심 싸움일 뿐, 아랫사람들은 참으로 좋은 사람들이라고 생각한다고. 적대감에 불타 싸울 이유도 없다고, 다름이 있으면 그 다름을 인정하며 내가 더 적절하다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 열심히 노력하는 과정이 있으면 된다는 당위적 명제를 들먹거렸다. 하지만 여전히 대립은 날카롭다. ‘빨갱이 자식’과 ‘수구꼴통’이라고 서로를 손가락질하며 요원하기만 하다.



주위 또래친구들을 돌아봐도 학생운동, 특히 운동권에 호감을 가지고 있는 친구들은 거의 찾을 수 없었다. 민중을 외치면서도 급속히 대중성을 잃어가고 있는 운동권의 초라한 초상을 보는 듯해서 어떤 면에서는 아쉽기도 하다. 많은 분들을 겪어봤지만 참 영민한 분들이 많은데도 언뜻언뜻 발견하는 그들의 ‘계몽 전사’ 의식은 보통의 무식한(?) 이들에게는 부담감과 거부감을 주는 지도 모르겠다. “뭐 지들이 온갖 진보를 다 일구어내는 듯 생색을 내고 있다” 비슷한 의식들을 많이 접할 수 있었다. 그런 면에서 80년대 학생운동에 대한 애정과 관심을 깡그리 말아먹은 운동권들에게 상당한 역사적 책임이 있다고 생각한다. 요즘에는 운동권도 표현들이 많이 약해지고 좀 더 일반학생들에게 다가가기 위해 다각도로 노력을 기울이는 것 같기는 하지만 말이다. 학생운동은 ‘인기 없음’에 마냥 초연할 수만은 없다고 생각하기에 더욱 안타깝다. 대학 새내기 시절 호기심에 문을 두드리던 학생회 조직에 왜 한 두 해만 지나면 관심이 식어버리게 하는지 반성해야 한다.



나는 운동권들이 이를 갈았던 비운동권 총학생회에서 한 해를 살았다. 하지만 그저 약간의 잡일을 거들던 위치에 있어서 그랬는지는 몰라도, 그 첨예한 대립과정에서 낄 일이 없었던 나는 여전히 운동권 분들은 학생사회의 좋은 일꾼 분들이시며... 아마 계속해서 논의되고 있다는 학생운동의 통합 혹은 발전적 해체와 관련된 것들에도 조만간 가시적인 성과가 있으리라고 믿고 있다. 요즘 자꾸 들려오는 ‘한총련 합법화’뿐만 아니라 소위 운동권이라고 지칭되는 모든 학생 운동의 흐름은 당연히 인정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대한민국이 정녕 ‘자유민주주의’국가가 맞다면 말이다. 별로 한 것도 없지만 지난 한해 소위 말하는 학생사회의 일꾼 역을 해본 소감은 아직도 정리가 되고 있지 못하다. 총학생회 내부에서의 모순, 그리고 운동권 단과대 학생회의 모순... 그리고 그 모순들의 요란한 파열음... 나름대로 시간을 투자해가며 활동한 것에 후회는 없지만 뭔가 뒤끝이 켕기는 것은 왜인지 모르겠다.



한때는 꽤나 많은 사람들이 착각하듯이 나도 진보주의자인줄 알았고... 사회 변혁에 뭔가 안다는 듯이 남의 의견을 부지런히 주워 나르기도 했다. 그러나 차차 생각해보니 오래 전부터 나는 개인주의자, 자유주의자였다. 아무리 사탕발림이 되어 있어도 전체주의 냄새가 나는 좌파나 우파는 별로 호감이 가지 않는다. 개인의 자유를 인정하는 좌파, 우파의 입지가 여전히 좁지 않은가라는 나의 짧은 생각이다. 결국 중간자가 으레 겪는 ‘회색인’ 취급을 받을지라도. 지난 한 해의 경험으로 운동권에 대한 환상이 철저히 깨진 것은 틀림없다. 그러나 극우 헤게모니가 춤추는 한국 사회에서... 그들과 연대해야 할 일들이 많이 있음을 새삼 느끼기도 한다. 하지만 생각보다 더 깊고 넓은 서로간의 오해와 불신은 여전히 학생사회의 큰 과제로 남아 있는 것 같다.



총학생회에서 알고 지내게 된 친구가 넌지시 묻는다. “작년에 조금 안 맞는 점이 있었을 것 같은데?” 나는 뜨거운 마음으로 답한다. “어, 물론 다 맞는 것은 아니었지.” 그랬다. 솔직히 일하는 내내 조금 나와 맞지 않는 부분과 투쟁해왔는지 모른다. 그러나 35대 고대총학에서 보고 배우고 느꼈던 것들은 너무나 소중하며, 그 점에 있어서는 후회가 없다. 또 그 친구는 나를 진보, 개혁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고 평해 주었다. 물론 관심이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과연 ‘진보, 개혁적인 사람’이냐고 묻는다면 선뜻 답하기가 어렵다. 이데올로기의 시대가 끝났다는 이야기가 여기저기서 나오고 있지만, 기본적인 삶의 양태로서 이념적 좌표를 대충이나마 잡아보는 것. 아직 조금 더 고민해볼 일이다.



“오랫동안 꿈을 그리는 사람은 그 꿈을 닮아간다.”고 앙드레 말로가 말했다. 내게는 꼭꼭 담아두고 평생을 두고 추구할 꿈이 있는지 늘 생각한다. 요즘 들어 조금씩 그런 거대한 희망보다는 좀 멋이 없지만... 평생을 담고 갈 삶의 자세에 마음이 머문다. 똘레랑스와 불관용에 맞설 수 있는 최소한의 용기, 자유에 대한 철저한 옹호와 남을 배려하는 마음, 내 자신에게 부끄럽지 않은 당당함과 나를 아는 사람들에 대한 성실함과 진솔함... 이런 자그마한 부분들을 차곡차곡 쌓아가다 보면 어느새 희망은 내 곁에 함께 해줄 것이다. 날로 소박해지는 나는 부끄럽기보다는 조금은 안쓰럽고 오히려 더욱 사랑스럽다. 6(^.^)9



덧붙이며...
결국 이것도 정치 이야기의 변종에 지나지 않는다. 요즘 정치 관련 이야기는 최소한도로 하려고 노력한다. 정치 이야기를 좋아하는 친구들보다는 싫어하는 친구들이 훨씬 많은 현실을 마냥 외면할 수 없다. 대중성 확보에 목맨 나로서는 더더욱. 다만 정치는 일부 사람들이 거창한 명제를 들먹이며 하는 것이 아니라, 생활 속에서 즐겁고 재미나게, 의사결정의 일환으로서 자연스레 이루어지는 것이라는 인식을 확산시키고 싶다. 정치가 별거냐? 우리 모두가 정치를 하자. 그래야 쓰레기 정치인들이 발을 못 붙이게 된다.^^


(이 글은 어디까지나 개인적인 생각을 주절거린 거랍니다. 인식의 박약함에 대한 질책은 얼마든지 받겠습니다. 어수선한 글 읽어주셔서 고맙습니다.^^)  

Posted by 익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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