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8월 7일부터 10일까지 3박 4일 간의 일정으로 가평 꽃동네에 다녀왔다.
노체 리안드리 자애병원이라는 곳에서 일을 거들게 되었는데
2층에 거동을 못하시는 중환자 16분을 모셔둔 호스피스 병동에 배정 받았다.
(그 곳에서는 ‘환자’라는 말 대신 ‘가족’이라는 정겨운 말을 썼다)
앙상한 가족들의 이따금 들리는 마른기침 소리가 무척이나 크게 들리는 곳이었다.
식사 수발, 설거지와 청소, 세탁물 나르기, 똥 기저귀 빨래, 세안하기, 체위 변경...
이것저것 하나하나 요령을 배워가며 서투른 손을 놀렸다.
대인 접촉을 해야하는 가족들 식사 수발과 세안이 가장 힘들었던 것 같다.
의사소통이 가능한 가족이 거의 없어서 말벗이 되어 드리지 못했지만
아마 의사소통이 자유로운 가족 앞에서도 쉽사리 입을 열지 못했을 것이다.
낯가림하는 무심한 성격이 이럴 때 더욱 드러나 버리는 것이 부끄럽다.


우연찮게 Night라고 지칭되는 야근도 해보게 되었는데
아침 식사 전까지 체위변경을 7번 하는 것이었다.
체위변경을 하는 이유는 24시간 누워지내는 가족이 병상에 닿는 곳에
피부가 짓물러서 생기는 부스럼인 욕창(褥瘡)을 막기 위해서라고 한다.
그래서 낮에는 1시간에 한 번, 밤에는 2시간에 한 번
몸을 좌우나 가운데로 돌아 뉘여 드리는 것을 거르지 않는다.
힘들고 지칠 때는 자기보다 더 어려운 사람을 생각하라는...
중 3 도덕선생님의 말씀이 체위변경 끝나고 쉬는 중에 떠올랐다.
이 흔하디 흔한 말이 생각나버린 것은...
도덕선생님께서 이어서 하신 말씀이 더 인상 깊었기 때문이다.
“물론 그 사람들이 우리를 위해서 존재하는 것은 아니지만...”
가족들의 앙상함 앞에서 나는 내 안락함과 내가 속한 계급을 감사해야 했다.


조금 더우면 땀이 나고 발이 좀 아프면 통증이 찾아드는 것이 어김이 없는
몸은 참 정직하다. 그렇기 때문에 비루하다는 생각을 했었다.
그러나 결국 몸을 비루하다가 욕하지만, 결국 몸이 ‘시작’임을 간과하고 있었다.
작은 입병만 생겨도 세상만사가 괴로운데
하물며 침상 위를 벗어나지 못하는 가족들의 고통 앞에서
몸의 비루함을 논하던 매서운 눈은 어느덧 사라지고 없었다.
내가 야윈 가슴을 채우겠다며 잡념과 잡글에 파묻히는 호들갑을 떨 때
가족들은 당장에 야윈 몸을 걱정해야 했다. 이 간극이란...


‘형제님’이라고 살포시 불러주시던 어느 수녀님의 따스함이 여간 식지 않는다.
16인의 가족들의 건강과 일하시는 수녀님을 비롯한 형제, 자매님들 모두 평안하시길...
숨막히던 성찰의 공간에서 도망치듯 일상으로 복귀한 나는...
이 때의 기억들일랑 적당히 잊어버리고, 내 불평을 주절거리기 시작하겠지.
조금 덜 잊어버리고, 조금 덜 주절거린다면 그걸로 감지덕지하면서...  6(^.^)9
Posted by 익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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