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가장 좋아하는 가수는 김동률이다. 나는 그가 전람회라는 그룹으로 활동하던 시절에는 알지 못했고, 전람회가 해체된 지 6개월 뒤에야 전람회와 김동률의 존재를 알게된 꽤나 뒤늦은 팬이었다. 중학교 2학년 9월에 라디오를 처음 들었을 때 케이비에스 에프엠 김동률의 인기가요라는 라디오 프로그램을 즐겨 들었던 것이 인연이 되었는데, 이마저도 9월말쯤에 디제이를 그만두는 바람에 디제이로서의 그를 한달도 채 즐기지 못했다. 참 이래저래 뒷북이 아닐 수 없었다. 그러나 다행히도 이적과의 프로젝트 앨범 ‘카니발’이 곧 발매되었고, 그의 솔로 앨범도 어느덧 3집까지 나왔다. (4집이 조금 늦는 듯해서 안달이 난다^^;)


예체능에는 예나 지금이나 그다지 관심이 없고, 잘하지도 못한다고 입에 달고 사는 나이지만... 김동률은 여느 사람들처럼 누군가의 음악을 좋아하고, 그 사람의 팬이 된다는 보편적인 감정을 나도 느껴볼 수 있게 해준 참으로 고마운 사람이다. 그래서 나는 늘 김동률을 동률公이라고 나름대로 높여 부른다. 그런데 참으로 무심한 팬은 오늘에서야 그의 누리집(http://www.kimdongryul.com)을 방문했다. 그의 에세이 몇 편을 읽으며 무척 가슴이 푸근해진다. 전람회 2집에 있는 10년의 약속이라는 곡을 참 좋아하는데 그 곡에 대한 에세이가 있었다.


[10년의 약속]

모두들 짐작하고 있었겠지만 전람회 2집의 '10년의 약속'이라는 곡은 동욱이와 나와의 얘기다. 며칠전 어떤 분이 요즘에 차에서 그 노래를 꽂아놓고 듣는다는 얘기를 듣고 문득 계산을 해보니 노래속의 10년뒤가 바로 2003년 올해다. 강산도 변한다는 10년, 막연한 기대와 희망 그리고 설레임으로 그려봐도 뿌옇기만 하던 그 '10년뒤'가 어느샌가 슬쩍 와버렸다.


오늘은 동욱군의 신혼집을 방문하였다.
결혼식 이후로 서로 바뻐서 차일피일 미루다가 오늘에서야 짬이 났다. 동욱이는 곧 미국으로 유학을 갈 예정이기에 어차피 잠시 머무는 집이라서 신혼집같은 아기자기함이나 거창한 집들이같은 이벤트는 없었지만 10년 전부터 함께 봐왔던 두사람이 자기들의 공간에서 함께 나를 접대하는 모습을 지켜보니 정말 수많은 생각들이 스쳐간다. 고3때 처음 동욱이가 여자친구라며 소개시켜주던 일, 대학가요제 예선때 셋이 나란히 주머니 난로를 손에 넣고 들뜬 마음으로 덕수궁 돌담길을 건던일, 셋이서 동욱이 방에 꾸겨앉아서 같이 노래부르던 일, 함께 스키장에 놀러갔던 일등등... 정말 서로들의 얼굴과 말투에선 변한게 거의 없는 듯한데 우리를 둘려싼 환경만이 10년의 흐름을 증명해주듯 싹 바뀌어 있는게 신기하기도 하고 왠지 그때가 그립기도 하고, 약간은 흐뭇하기도 하고...


동욱!
넌 나의 너무 자랑스러운 친구인데, 넌 내가 그럴까?
아까 했던 은희의 말이 자꾸 머리속에 맴도네.
"동률아 그럼 '그다음 10년'이란 노래를 써봐!'


다음 10년에도 그 다음 10년에도
누구보다 자랑스런
너의 친구로....
멋지게...



전람회시절 멤버로 활동했던 서동욱이 결혼을 했다는 사실에 세월의 무게를 실감한다. 서동욱과 김동률의 우정을 실감할 기회는 없었지만... 언뜻언뜻 느껴지는 그들의 우정의 끈끈함과 뜨거움이 늘 부럽다. 10년의 약속은 고등학교 졸업식이 끝난 후 두 친구가 10년후에 멋진 모습으로 만나자는 내용의 노래인데, 나도 이 노래를 따라서 고등학교 졸업 전후해서 10년의 약속 비슷한 것을 해보려고 했지만... 그 당시의 어수선함과 나의 게으름으로 그 좋은 시기를 놓쳐버린 것을 가끔 생각해도 영 아쉬운 일이다.^^; 뭐 지금이라도 10년의 약속 할 벗이 있다면 조금 뒷북이기는 하지만 기꺼이 받아들이리...^^


그의 또 다른 에세이가 나에게 좋은 경고의 메시지가 되어 울린다.


[2003년 비오는 신촌]

대학동창들을 만났다.
일주일 뒤에 결혼하는 친구의 총각파티.
신촌 한구석 어느 곱창집에서 소주를 기울이고 있으려니 10년이란 세월이 참 우습다.
언제나 그렇지만 옛날얘기들 욹어먹기는 참 재미나다.
만날때마다 했던 얘기 또하구 했던 얘기 또하구.
과거 지향적 천성이긴 하지만 갑자기 감당할수 없을만큼의 무게로 그리움이 밀려온다.


휙 둘러보니 이녀석들은 얘나 지금이나 똑같다.
다만 주위 다른 테이블 사람들이 확 어려보일뿐.


곱창살을 우적우적 씹으면서 문득 튀어나올뻔한 말.
'앞으로 10년뒤엔 우린 또 어떤 모습일까'


나도 모르게 그냥 꾹 삼겨버린다.
이렇게 또 훌쩍 와버릴까봐 무서워서.



친구들과의 술자리가 적당히 무르익으면, 나도 이 이야기를 꼭 나눠보고 싶다.

“앞으로 10년 뒤에는 우린 또 어떤 모습일까?”

뭐 아마 그 물음에 우물쭈물 얼버무릴 것이 확실한 내 자신을 돌아보며 그 물음을 감히 던지지 못하겠지만... 나도 무섭다. 세월이 훌쩍 지나가서 내 앞에 무시무시한 미소를 짓고 있을까봐.


아직은 하루하루 근근히 살아가도, 그 때 그 때 맞춰가며 살아가도 그럭저럭 넘어가겠지만, 이제는 과거도 돌아볼 줄 알고, 현재를 음미할 줄 알며, 미래를 대비할 줄 아는 인생, 그런 우정을 꾸려나갈 때가 다가오고 있음을 느끼고 있다. 그 때가 머지 않았다. 6(^.^)9


덧붙이며 - 동률공 3집을 오랜만에 들으며 감상에 푸욱 적셔진다. 내가 좋아하는 것에 무심한 나의 고질병을 다시금 반성하며, 남의 것, 얻지 못한 것에 침흘리기보다 내 것, 이미 있는 것에 충실하고 아낄 수 있는 내가 되어야겠다.
Posted by 익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