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촐한 누리집이 생기면서 컴퓨터 앞에 앉아 있는 시간이 무척이나 늘어난 것 같다. 비단 내 누리집에 올리는 글뿐만 아니라 다른 공간에 올리는 잡글들과 하찮은 꼬리에 이르기까지 그야말로 잡글들에 파묻혀 살고 있다고나 할까. 내가 그 많은 시간동안 컴퓨터 앞에 앉아서 하는 것이라고는 글 읽고 쓰는 것밖에 없으니 오죽하겠는가.^^;


어렸을 때부터 문자로 된 것을 접하고 구사하는 데 그리 큰 거부감이 없었던 것 같다. 글쓰기의 욕망이랄 것도 없이 내게는 그저 자연스럽고 가벼운 놀이에 지나지 않았다. 인터넷 세상이 된 요즘에는 글 읽고 쓰기는 내 일상생활의 일부로서 한 자리 단단히 꿰차고 있는 것 같다. 잡글이나마 써내려 가는 것의 매력에 푸욱 빠졌다고나 할까.


글을 혐오하거나 잘 안쓰는 이들의 핑계는 참 갖가지다. 열심히 쓴 글은 결국 보잘것없기 일쑤이고 그래서 시간낭비이기 때문에, 말장난은 읽는 것만도 고역인데 그것을 생산하는데 나까지 참여할 필요가 없다는 둥, 요즘같이 바쁜 세상에 글 쓸 시간이 어디 있으며 글 쓰는 것보다는 말로 해치우는 것이 더 간편하다는 이유까지 그 사람의 빛깔만큼이나 다양한 글쓰기 거부가 이어진다.


잘 모르는 것에는 침묵하는 겸손한 이들과는 달리 조금은 어설프게 알고 있지만 발언하기를 주저하지 않는 숱한 네티즌들도 있다. 혹자들은 네티즌들의 담론은 엄청나게 비효율적이고 때로는 거덜나는 장사라고 폄하하지만 꼬리글들이 쌓여가며 이루어지는 자정작용은 생각보다 힘이 세며 이른바 조회수의 법칙이라는 것도 무척이나 냉혹하다. 그간 지식인들의 뜬구름 잡는 소리였던 글쓰기가 지상으로 내려온 것은 환영할만한 일이다.


내가 글쓰기에 매혹된 것은 잡글을 쥐어짜내면서 나를 맴도는 두 가지 느낌 때문이다. 하나는 내가 참 무식하구나를 느끼며 더 열심히 배워야겠다는 가르침을 새삼 일깨워주고 있다는 것이다. 인식의 흐릿함과 지식의 모자람에도 불구하고 내 머릿속의 생각들을 정리해보고 논증해보려는 시도를 하면서 나의 무지는 더욱 돋보였다(!). 덕분에 겉멋만 들었던 나를 한없이 겸허하게 만들어주었다.


또 다른 하나는 새록새록 피어나는 모국어에 대한 사랑이다. 영문법을 틀리면 부끄러워하면서도 국문법은 아예 맞고 틀림조차 신경 쓰지 않는 풍토이지만 내 나라 말글에 대한 참을 수 없는 애틋함이 글을 쓸 때 생긴다. 아름다운 한국어 문장에 대한 욕망은 자꾸만 커져가고 있다. 제대로 된 한국어를 다루는 것은 소루하지만 그래도 모국어에 대한 경외심의 고백은 두터운 고마움에 비하면 한참이나 미치지 못한다.


글쓰기를 즐기는 이의 가장 큰 고민 중의 하나는 생산성의 문제다. 하찮은 글을 쓰는데도 시간은 엄청나게 잡아먹는 괴물 같은 녀석을 가까이 하기가 거북한 것이다. 글로 밥 벌어먹고 사는 것도 아닌 소인(素人, 아마추어)으로서 글 쓰는 이들은 늘 이것이 괴롭다. 나의 글이 들인 노동과 자본에 비해 만족할만한 산출물이 되어 나오지 않은 것에 대한 조바심은 언제나 나를 짓누른다.


이런 강박관념에도 불구하고, 투자 수익률이 그다지 형편없음에도 불구하고 내가 글쓰기를 그치지 않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것은 아마 대책 없는 낙관주의자다운 쥐꼬리만한 희망으로 도피해버리기 때문이다. 언젠가는 꽤 멋스럽고 군침이 도는 글 한 편 지어낼 수 있으리라는 믿음, 말쑥하고 산뜻하게 글을 지어서 읽는 이들에게 효용을 창출하게 만들고 싶다는 갈망이 효율성의 압박에서 나를 힘겹게 구제해주고 있다.


‘허영으로서의 작문’이 경제에 미쳐 돌아가는 세상에서 촉촉한 교양을 사수하는데 얼마나 보탬이 될지 장담할 수 없다. 나의 성실한 글쓰기는 아무리 해도 허술하고, 나의 진솔한 글 쓰기는 여전히 메마르다. 그러나 욕망하는 자가 발언하고, 발언하는 자가 권력을 얻는다는 것을 은밀히 믿고 있다. 이런 적당히 돌려 표현하는 권력의지는 나의 잡글 예찬의 주된 밑거름이기도 하다.


나에 대한 꼼꼼한 성찰이 자칫 음흉한 자기방어에 이용되지 않았는지 늘 반성할 것이다. 나의 미적지근한 끄적거림이 활동가적 열망에 찬물을 끼얹지는 않을지 항상 조심해야겠다. 글쓰기는 이렇게 경계할 것 넘치는 귀찮은 작업이지만 언젠가 헌걸찬 글 한편 나와주겠지 하며 너스레를 떨어본다. 끝으로 내가 이 짓을 왜 하나 스스로를 숱하게 구박하면서도 잡글 쓰기에 몸서리치는 것을 마다하지 않는 이들에게 은근한 연대의식을 표한다.


날카롭지만 따스한 내가 되기 위해서는 나는 한참이나 부지런해져야겠다. - [憂弱]


덧붙이며 - 앞으로 해보고 싶은 글쓰기가 있다면 내 전공과 관련한 경영, 경제학에서 파생된 지식들을 엮어 잡글을 써보는 것이다. 나의 이런 바람은 성사되지 못한 경우가 대부분이지만 얼치기 경영학도로서 내가 딛고 있는 분야에 대해 쉽고 이로운 글을 쓰는 것에 대한 열망만은 진정이다. “만일 내가 왕이 된다면, 자기도 그 뜻을 설명할 수 없는 말을 쓰는 작가는 글 쓰는 권리를 박탈하고, 백 번 볼기 치는 형벌에 처하라는 법률을 반포할 것이다”는 톨스토이의 말 때문에 괜스레 엉덩이가 무사한지 돌아볼지언정 말이다.^^;
Posted by 익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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