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문제 단상

사회 2003. 11. 14. 01:20 |
(잇따른 노동자들의 분신자결과 노동계의 울분 섞인 목소리를 접하면서 어떻게 입장을 정리해야 하나 고민했습니다. 잘 모르는 것에 대해 함부로 발언하는 것은 무서운 죄악이라고 여기는 터라 조심스럽긴 하지만 제 솔직한 생각을 정리해보려고 노력했습니다. 이 글은 제가 속한 조촐한 학회와 유시민 팬클럽 시민사랑 두 군데에 올린 글입니다. 인식의 박약함에 대한 질책을 환영합니다^^;)


최근 노동자들의 분신자결은 여러모로 가슴이 아프다. 노무현 대통령도 노동자들이 왜 죽음으로 내몰렸으며 죽음으로 무엇을 말하려 했는지에 대해 귀 기울이려는 제스추어를 충분히 취해주었으면 하는 아쉬움이 조금 있다. 하지만 일부 노동자들이 말하는 “노무현이 노동자들을 죽였다”같은 타박에는 동의하지 않는다. 물론 국정에 대한 일차적 책임은 대통령이 지는 것이 맞지만, 그렇다고 노 대통령이 노동자들을 “죽어라, 죽어라...”하고 있다는 인식에는 손을 들어줄 수가 없다.


솔직히 내가 어떤 위치잡기(포지셔닝)를 해야할지 혼란스럽다. 노동조합 같은 노동단체들도 결국 이익집단에 불과하다고 생각하는데, 이들이 사회적 약자에다가 양적 다수라는 점에서 사용자들의 이익집단과 동일선상에 놓을 수는 없다는 것은 대충 정리가 된다. 하지만 약자 프리미엄이 그네들에게 전폭적인 신뢰를 보내는 것과는 차원이 다른 문제라 입장 정리하기가 참 곤란하다.


노무현 정부 초기에 노동계의 의사를 보다 중시하는 방향으로 돌아갔었다. 난 이 분야에 그리 관심을 가지지 않아서 모르지만, 초기에는 그런 분위기가 어느 정도 존재했던 것 같다. 공무원 노조에 대해 전향적으로 검토했고, 화물연대 첫 파업에서도 어느 정도 요구를 들어주었으며, 조흥은행 노조 파업 때도 조흥은행 쪽의 입장을 상당부분 수용한 것으로 기억한다. (조흥은행 사건의 경우 신한은행 노조가 이에 반발하는 등 노조간의 갈등도 있었는데 그 후로 관심을 안 가져서 잘 해결이 되었는지는 모르겠음...)


하여간 노 대통령이 친노(親勞) 색깔이라는 말을 들었을 때 노동계가 그런 면은 제대로 옹호해주었는지 기억이 가물가물하다. 내 기억으로는 오히려 아쉬운 소리를 더 늘어놓았던 것 같다. 노무현 정부가 일부 언론과 재계에 반기업 정서를 들먹이며 협박하고, 굴욕적이라고 비난받을 때... 노동계는 노무현 편을 속시원하게 들어주기보다는 자기 요구를 100% 반영하지 않은 것에 대해 볼멘 소리를 더 낸 것으로 기억한다.


자기가 옳다고 믿고 싶은 것이 인지상정인 사람마음이다. 이러한 마음이 반드시 부정적인 것만은 아니어서, 마음먹기에서 그치지 않고 실제로 자신이 옳은 위치에 서기 위해 지적, 도덕적 노력을 기울인다면 꽤 긍정적인 효과를 낳을 수 있다. 그러나 자신이 아무리 옳다고 해서 자기와 조금 다르다고 함부로 매도한다면 애초에 대화는 불가능한 것이다. 요즘 보면 노동계와 정부가 아예 심리적 장벽을 쌓는 것이 아닌가 걱정스럽다.


물론 고통받고 죽어가는 노동자들의 아픔을 달래지 못했다는 것만으로도 노 대통령과 정부는 비판받아야 한다. 그러나 한 편으로는 노동계가 노무현 정부를 이용하지 못하고 상호간에 입지를 좁히는 자충수를 던지는 것이 아닌가 해서 아쉽다. 그러나 그들의 전략개념의 부재를 질타하기보다는 사용자측의 불성실함과 불관용에 더 큰 화살을 던진다. 노사 갈등이 문제라고 하지만 힘센 이들의 억지 엄살에는 너그러우면서 힘없는 이들의 목소리에는 짜증을 부리고 귀찮아하는 인색함을 보이지는 말아야겠다는 늘 다짐한다.


그러나 이런 총론적 합의만 있을 뿐, 노동 문제에 대한 각론적 판단은 아직은 뭐라 내리기 어렵다는 것이 내 솔직한 결론이다. 내가 귀가 얇아서인지 몰라도 이 쪽 입장을 검토하면 꽤 설득력 있고, 저 쪽 입장을 들어보면 그것도 호소력 짙은 경우가 많다. 다원주의 사회에서 절대선이라는 것은 없다고 했을 때, 열심히 듣고 부지런히 사유해서 조촐하게나마 나의 인식을 형성해야겠지만 그런 면에서는 확실히 나태하고 태만하다.


30여 년 전의 전태일 열사의 분신 이후 우리 사회는 분명 쉴새없이 발전해왔다. 그러나 힘없고 가난한 이들에게는 그 발전, 진보의 열매가 별로 돌아가지 않았다는 점도 확실하다. 세상을 욕하기는 쉽지만 티끌만큼 바꾸기는 참 어렵다. 모순투성이인 현실을 바꾸는 방법은 여러 가지이겠지만, 그 중에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인지 아직은 잘 모르겠다. 나도 노동자들의 권익이 향상되기를 바라지만 그 방법론은 어찌해야 할지 난감하다. 게으르면서도 약삭빠른 내가 이상과 현실 사이의 긴장을 팽팽히 잘 유지해나갈 수 있을까 돌아본다. - [憂弱]
Posted by 익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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