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교 1학년 2학기 교양 국어 과제로 제출했던 사기 독후감이다. 다소 긴 글이라 스크롤의 압박도 만만치 않다.^^;)



1. 사기에 대한 단상들

 나는 [사기(史記)]를 한 마디로 ‘배보다 배꼽이 크다’라고 표현하고 싶다. 제왕과 제후의 기록인 본기와 세가보다는 신하나 민중의 이야기인 열전이 더욱 재미나고 의미가 있다. 게다가 사기 자체보다는 사기를 쓴 사마천이라는 인물이 더욱 눈길이 가게 되는 점도 그렇다. 어디 그뿐인가. 어떤 인물의 일생보다는 어느 한 구절에서 더 선명한 가르침이 나오기 일쑤이다. 이처럼 배꼽으로 읽는 책 [사기]에 대해 배꼽차원에서 논의해보도록 하자.


 수능을 앞두고 중국어과 후배들 격려차원에서 돈을 모아 먹을 것을 사들고 3학년 교실로 찾아가게 되었다. (나는 외고 중국어과 출신이고, 중국어과는 7,8반이다.) 거기서 한 마디씩 해주는 시간을 가졌는데 그 때 나는 한창 읽고 있던 사기의 구절들을 인용했다. 3학년 7반에서는 ‘참으로 곧은 길은 굽어보인다’를 꺼내며 대학생이 된 후에 만나게 될 여러 문제들 사이에 고민될 때 참고로 삼아주었으면 좋겠다는 말을 했고, 3학년 8반에서는 관포지교에서 ‘나를 낳아준 사람은 부모지만 나를 알아주는 이는 포숙이다.(生我者父母, 知我者鮑叔也)’를 꺼내며 대학생이 되어서도 지금 옆에 있는 친구들을 잊지 말았으면 좋겠다고 이야기했다. 감히 그런 구절들을 들먹거릴 만큼의 위치에 있지 않아서 얼굴이 화끈거렸지만 그 만큼 내가 읽고 있던 사기에 나오는 지혜의 조각들을 공유하고 싶기도 했다.


 내가 읽은 서해문집에서 펴낸 세 권 짜리 사기는 사기의 열전을 주로 실었지만, 그렇다고 열전편만이 아닌 본기와 세가에서 특히 재미난 인물들인 항우, 유방, 여후, 공자, 진승 등을 싣고 있어서 더욱 흥미진진하게 읽을 수 있었다. 비록 완전한 열전이라고 볼 수는 없지만 이 정도면 사기의 세계를 이해하는 데 크게 무리가 없을 것 같다고 생각한다.


 지금까지 사기 열전을 얼치기로 세 번 읽었다고 할 수 있다. 초등학교 때 어린이용으로 나온 사기를 책이 닳도록 폈다 접었다 했고, 중학교 때 산 서해문집에서 낸 것을 조금은 산만했지만 나름대로 재미나게 읽어내려 갔고, 이번이 세 번째이다. 이미 인물의 이름만 접하면 대략 어찌하겠구나를 알고 있어서 조금 식상하겠거니 했는데 대학생이 되어서 펴드는 사기는 또 다른 맛이 있었다. 이래서 고전은 읽으면 읽을수록 그 맛이 다르다고 했던가.


2. 사기란 무엇인가?

 [사기]는 한나라 시대에 사마천이 지은 역사책으로, 중국인의 공통시조 황제(黃帝)로부터 사마천이 살았던 당시 한무제에 이르는 근 3천년을 기록한 통사이다. [사기] 이전의 역사기록은 단편적인 역사적 사실을 기록하거나 간략한 연대기적 서술에 불과했다. 그런 상황에서 사마천은 수많은 문헌과 실제 답사를 통해 자신의 역사관을 투영한 인물중심의 새로운 역사기술 형태인 기전체(紀傳體)를 창조했다. 실로 [사기]하면 한 번쯤은 접했을 개념이 바로 기전체의 대표주자라는 점이다. 우리나라의 삼국사기나 고려사가 조선왕조실록의 편년체와는 다른 기전체로 기술되어 있다는 것 정도의 내용이 수능을 준비했던 이들에게 한 번쯤은 거쳐갔으리라고 생각된다. 이러한 사기는 제왕의 연대기인 본기(本紀) 12편, 제후를 중심으로 한 세가(世家) 30편, 역대 제도 문물의 연혁에 관한 서(書) 8편, 연표인 표(表) 10편, 시대를 상징하는 뛰어난 개인의 활동을 다룬 전기 열전(列傳) 70편, 총 130편으로 구성되어 있다. 인간 중심의 역사를 기술하려한 저자의 의도대로 열전에 가장 많은 비중이 할애되어 있다. 열전의 인물들은 실로 무궁무진하다. 재상과 장군, 사상가, 유협과 자객, 충신과 간신배, 대지주와 상인 등 모든 등장인물들은 강한 개성을 내뿜고 있다.


 한 인간의 개성은 격렬한 역사의 변동기에서는 그저 미미한 존재로 치부된다. 그런데 사마천은 여러 역사적 인물들의 인생을 제시하면서 그 인간성이 역사에 미치는 영향력을 주시하며 역사를 쓰고 있다. 제왕이 아닌 황후에 불과한 여후를 본기에 올려놓고, 역사의 패자였던 항우도 당당히 제왕의 반열에 올려놓았다. 또한 공자나 진승 같은 인물들을 제후의 기록인 세가에 올려놓는 파격은 그가 얼마나 개인의 개성이 역사에 미치는 힘이 큰지를 부각시키기 위한 상징적인 조치이다. 열전에서도 개성 있는 특이한 삶의 방식을 포착하여 촌철살인의 날카로운 분석을 아끼지 않고 있다.


 열전은 백이. 숙제 열전에서 시작해 화식열전(貨殖列傳)으로 맺고 있다. 백이, 숙제가 고사리를 캐먹다가 굶어죽은 행위는 지극히 순수한 정신주의를 표현한다. 반면에 화식열전에서는 극단적인 물질주의를 논하고 있다. 이는 마치 채근담을 읽을 때의 당혹감을 재연시켰다. 채근담에서 보이는 논리적 모순과 앞뒤가 맞지 않음이 [사기]에서도 보이는 것이다. 단순화시켜 말하면 여기서는 이렇게 하라고 했다고 저기서는 저렇게 하는 것이 맞다는 식의 논지를 종종 발견할 수 있었다. 이는 성공한 장사꾼은 현명한 대상인으로 추앙되고, 실패한 장사꾼은 한낱 장사치로 폄하되는 식의 논리, 즉 ‘성공하면 충신, 실패하면 역적’이라는 논리가 아닌가 의심쩍었다.


 그러나 열전의 첫 머리에 이념과 원칙에 따라 굶어죽은 백이, 숙제 열전을, 마지막에 이(利)를 좇는 상인의 열전 화식열전(貨殖列傳)을 둔 것은 위대한 성현에서 시정잡배에 이르기까지 도덕적 당위와 물질적 본능 사이에서 방황하고 고뇌하는 모습을 생생하게 제시한다. 이로써 ‘살아 숨쉬는 인간’에 의해서 역사가 창조된다는 점을 분명하게 드러내면서 융통성 있는 현실 윤리를 고민하게 만들고 있다. 편견 없이 인간을 직시하는 현실주의 정신이 [사기]에 일관되게 흐르고 있는 것이다.


3. 백이, 숙제 열전에서 엿보는 사마천의 역사의식

 이제 사마천이 의미심장한 질문을 던지고 있는 열전의 처음인 백이, 숙제전을 살펴보자. 주의 역성혁명에 반대하며 절개를 지키다가 죽은 백이, 숙제의 고사에 대한 사마천의 언급은 다음과 같다.


 “하늘의 뜻이란 사사로움이 없으며 언제나 착한 사람 편이다라고 누군가 말했지만, 백이, 숙제 같은 인물은 왜 그처럼 굶어죽어야 했을까? 공자의 제자 중 가장 뛰어났던 안회는 끼니를 거를 정도로 가난하게 살다가 일찍 죽었다. 하늘이 착한 사람에게 지불하는 대가가 이런 것이란 말인가! 이와 반대로 도척 같은 이는 무수한 살인과 악행을 저지르면서도 천수를 누렸다. 이러한 것은 도대체 무슨 이유인가? 과연 하늘의 도리라는 것은 옳은 것인가, 잘못된 것인가!(天道是耶, 非耶)”


 이는 마치 내가 도덕경에서 발견하고 몸서리치고 무릎을 내리쳤던 구절인 “하늘의 도는 남는 데서 덜어내어 모자라는 데에 보태지만, 사람의 도는 그렇지 않아 모자라는 데서 덜어내어 남는 데에 바칩니다.”와도 일맥상통하는 이야기이다. 여기서 사마천은 ‘천도(天道)와 인사(人事)는 무관한 것이 아니겠는가?’ 라는, 심각한 의문을 던지고 있다. 우리가 자주 만나게 되는 행복과 도덕의 모순을 지적하고 있는 것이다. 실제로 인간세상은 정의보다는 불의, 진리보다는 허위, 진실보다는 위선, 원칙과 소신보다는 기회주의가 더 판을 치고 행세를 하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역사가로서의 사마천은 여기서 고민하게 된 것이다. 역사를 서술하는 입장에서 선인이 망하고 악인이 흥한 엄연한 사실을 어떻게 보아야할지 막막했을 것이다.


 그러나 어찌하랴. 인간이 살아나가는 한, 역사가 끝나지 않는 한, 이 모순은 해결되지 않을지도 모른다. 아마 사마천도 이런 나의 생각에 동의할 것이다. 2000년이 지난 후세 사람도 똑같은 상황이 놓여있으니 말이다. 그렇다면 이러한 모순에 차 있는 세상에서 역사가로서의 사명은 무엇이겠는가? 사마천은 일찍이 열전의 저술 목적을 “의를 돕고 결연히 나서 기회를 놓치지 않고 천하에 공명을 세운 사람들을 위해 70여 편의 열전을 짓는다.”라고 밝혔다. 여기서 해결의 실마리를 발견할 수 있을 것 같다. 사마천은 현실적 모순이 존재하는 것을 인정하지만, 비록 그 과정이 험난하고 시간이 걸리더라도 결국에는 정의와 진실이 승리하게 된다는 것을 보이는 것이 자신의 역할이라고 생각하게 된다. 그가 말한 대로 높은 도덕과 많은 업적을 남기고도 그만한 보상을 현세에서 받지 못한 사람들의 전기를 써서 지난날을 비판하고, 세상 사람들에게 본보기가 되게 하려 한 것이다. 비록 현실에서 악이 이기는 것 같아도 현실의 연속인 역사의 긴 흐름에서 볼 때 정의가 반드시 이긴다는 믿음을 사람들이 저버리지 않게 하도록 그의 일생을 바쳤다. 그는 위에 이어서 말한다.


 “백이, 숙제는 분명 현인이었지만 공자의 붓을 통해서 그 이름이 드러나게 되었고 안회는 학문에 충실했지만 공자의 논어에 나오게 됨으로써 그 품행이 더욱 돋보이게 되었던 것이다.”


 때를 만나지 못해 묻혀 버린 인물에 대한 강한 연민이 사마천이 대작을 탄생시킨 원동력이 아니었을까? 그는 역사상 안타까운 영혼들에게 다시 생명을 불어넣어 우리에게 제시하고 있다. 숱한 영웅 호걸들의 기구한 운명을 조명하는 데 그가 필생을 바친 데에는 어쩌면 그의 비참한 운명 또한 투영되어 있을 것이라 생각된다. 사마천은 이해타산도 없이 친구 이릉 장군을 변호하다가 궁형을 받는 치욕을 무릅쓰고 살아남아야 했다. 인간의 운명에 대한 애증과 역사에 대한 애증이 자기 자신에게서 이미 불타고 있던 것이었다. 임안에게 보내는 편지에서 그의 이런 마음을 엿볼 수 있다.


 “그러나 그 고통과 굴욕을 참아내며 구차하게 삶을 이어가는 까닭은 가슴속에 품고 있는 숙원이 있어 비루하게 세상에서 사라질 경우 후세에 문장을 전하지 못함을 안타깝게 여겼기 때문입니다.”

 “만일 이 저술이 완성되어 명산(名山)에 보관되고 각지의 선비들에게 전해질 수 있게 된다면, 저의 치욕도 충분히 씻게 될 것이라 생각합니다. 설사 이 몸이 산산이 부서진다 해도 무슨 후회가 있겠습니까?”


4. 인상깊은 열전의 인물들

 열전의 많은 인물 중에서 나에게 강하게 인상을 남긴 것은 범여와 한신, 굴원과 맹상군이었다. 공교롭게도 두 사람씩 짝을 이루어 서로 대칭 되는 삶을 살았다는 것을 이내 발견할 수 있었다. 나왔던 인물이 또 나오고 여기서 인용된 사람이 저기서 인용되는 경우가 많은 사기 열전의 특성상 이런 분류나 비교의 작업이 무척 유의미하다고 생각한다.


 ‘토끼사냥이 끝나면 사냥개를 잡아먹는다(狡土死 走狗烹)’라는 말을 범여와 한신 모두 하게 된다. 범여는 오나라 정복에 같이 공을 세운 대부 종에게 보내고, 한신은 유방한테 잡혔을 때 이 말을 하게 된다. 그러나 범여는 이 말을 일찍 했고 한신은 너무 늦게 깨우쳤다.


 범여는 월나라왕 구천을 도와 오나라와의 결전에서 승리를 거둔 뒤 월나라를 떠난다. 구천은 범여와 이 나라를 나누어 가질 것이라며 감동적인 말을 했지만, 그럴수록 범여는 불안의 싹을 감지하고 미련 없이 월나라를 떠나게 된다. 범여는 물러날 때를 제대로 알아 실천에 옮긴 인물의 표본이라고 할 수 있다. 잘 나갈 때 그칠 수 있기란 여간 힘든 일이 아니다. ‘조금만 더’라는 마음이 결국 끝까지 가게 만드는 것이다. 그 후 범여는 뛰어난 장사수단으로 천금의 재산을 이루게 되고 화식열전에서도 범여는 비중 있게 다루어지는 영광을 얻게 된다.


 한신 또한 유방의 천하통일에 결정적인 영향을 했던 인물이다. 그가 만약 항우의 편에 섰더라면 감히 한이라 는 나라가 있기야 했겠는가? 한신의 책사 괴통은 한신이 초와 한의 사이의 제나라를 부여잡아 천하를 셋으로 나누라고 말한다. 하지만 한신은 자신을 알아준 유방의 의리를 저버리지 않겠다는 말을 한다. 괴통은 ‘망설이고 있는 호랑이는 벌만도 못하다.’며 한신을 거듭 설명하지만 한신은 끝내 받아들이지 않는다. 그는 자신의 공을 과신했던 것이다. 한신은 왕으로 자립할 마음도 없었지만, 그렇다고 해서 유방에서 단지 신하로서만 복종하고 싶지도 않았다. 이 애매한 태도가 그의 비극을 불러오게 된다. 그는 범여처럼 사심 없이 자신의 지위를 버리지는 못하고 오히려 자신의 지위가 낮아짐을 부끄러워했다. 실의의 나날들을 보내다가 뒤늦게 반란을 계획했지만 결국 제거되고 만다.


 한신의 딜레마는 자신의 역할에 뚜렷한 주관과 철학을 갖지 못한 채 냉혹한 권력의 언저리를 서성거렸다는 데 있었다. 한신은 권력욕을 버리지 못하고 우유부단하게 처신하다가 절호의 기회를 놓쳤다. 범여의 과감한 은퇴와 맹장 한신의 모호한 처신은 모두 타이밍의 문제였다. 그것은 자신의 역할에 대한 확고한 의식과 철학이 뒷받침 될 때 더욱 빛난다.


  세상에 버릴 사람은 하나도 없다며 3천의 식객을 모았던 계명구도(鷄鳴狗盜)의 주인공 맹상군은 어릴 적 나의 우상이었다. 솔직히 사교에 드는 비용들을 고통스럽게 생각하면서도 다른 한 편으로는 맹상군 같은 풍요로운 인간관계에 둘러싸여 사는 재미를 부러워했다. 특히 나에게 감동을 준 것은 맹상군이 파직되자 수많은 식객들이 모조리 그의 곁을 떠났을 때의 이야기이다. 맹상군이 복직되자 유일하게 남아있던 풍환이 다시 식객들을 모으려고 했다. 이에 맹상군은 다시 찾아오는 이가 있다면 침을 뱉어주고 싶다며 서운해했지만 풍환은 담담히 ‘세상 인심이란 원래 그런 것이다.’ 라고 말한다. 여기서 그가 둔 비유가 압권이다.


 “시장에 가서 보십시오. 아침에는 서로 앞을 다투어 먼저 문으로 들어가려고 하지만, 해가 진 뒤에는 시장을 쳐다보지도 않습니다. 이는 아침에 시장을 좋아하다가 저녁에는 미워하기 때문이 아닙니다. 다만 저녁 시장에는 원하는 물건이 없기 때문인 것입니다.”


 사람 사귀기를 즐겨, 많은 인재들이 모였던 맹상군과는 달리 굴원은 고고한 영혼의 소유자였지만 불운한 생애를 보냈다. 굴원은 뛰어난 재능에도 불구하고 간신들의 참소에 뜻을 펴지 못하고 결국 멱라수에 몸을 던졌다. 사마천도 굴원이 스스로 빠져 죽은 강을 보고는 눈물을 흘렸다고 한다. 어부사(漁父辭)에는 그의 심정이 잘 드러나 있다.


 “온 세상이 모두 혼탁한데 나만 홀로 깨끗하고 뭇사람들이 모두 취해있는데 나만 홀로 깨어 있으니 그래서 추방을 당했소이다.”


 혹자들은 이런 그의 처신방법에 의문을 제기할 것이다. 시대의 흐름은 나몰라라 하고 순결한 척하는 것 아니냐고 시비를 걸어봄직도 하다. 일면 타당한 지적이겠지만, 이런 굽히지 않는 의지를 가진 선비들로 해서 인류 역사는 힘을 얻는 것이 아닐까.


맹상군과 굴원은 사람을 대하는 태도가 각기 달랐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어느 게 더 낫다고 함부로 말할 수 없다. 다만 나의 경우에는 남의 떡이 커 보인다는 이치에 비추어 맹상군을 좀 더 배워야겠다고 조심스레 말할 뿐이다. 물론 반대로 생각하면 굴원을 좀 더 배워야 할 사람도 있을 것이다.


 이처럼 열전에서 접하게 되는 다양한 인간 군상에서 울고 웃으며 우리는 저마다 제 입맛대로 건져 가는 것이 있게 된다. 붕어빵을 먹을 때 머리를 먼저 먹든지, 꼬리를 먼저 먹든지, 지느러미가 먼저가 되든 우리는 아무런 신경을 쓰지 않는다. 사기에 나오는 인물 중에 자기에게 맞는 인물을 좌표로 삼아 삶을 꾸려 가는 것도 사기가 우리에게 주는 쏠쏠한 재미일 것이다. 역사에서 배울 줄 모르는 것만큼의 어리석은 행동은 없다.


5. 역사를 읽는다는 것

 몇 해전 도올 선생의 노자강의를 듣던 중에 이런 이야기가 나왔다. “서양에서는 죽으면 천국과 지옥에 간다고 믿었지만, 동양에서는 죽으면 역사가 평가한다.”는 정도의 뜻이었던 걸로 기억한다. 그런 동양적 세계관이 형성된 것에 사마천의 역할이 크다고 생각한다. 동양의 인물들은 현세에서 성공하는 것 이상으로 자신의 행동이 역사상에서 명성을 남겨 불후하게 되기를 원하게 되었다. 중국 최초의 정사인 [사기]는 이렇게 해서 동양인의 정신 구조, 동양적인 인간상을 형성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고 할 수 있다.


 역사에 대한 이해와 비판의식은 그 나라 국민의 의식과 문화수준을 반영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역사를 따분하게 여기고 교육제도와 교육방식까지 이를 거들고 있다. ‘교육의 세계화’란 명목으로 국사시간을 줄이는 우리와는 대조적으로 외국의 국사교육은 점차 강화되는 추세라고 한다. 6살부터 18살까지의 의무교육의 전과정에서 역사과목이 필수인 프랑스를 보며 배울 점이 많다고 생각한다.


 흔히들 역사, 특히 국사에서 민족의식과 민족정체성을 강조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비단 역사뿐만 아니라 월드컵 경기 응원, 국토 대장정 같은 것들도 민족의식을 고취하게 해준다. 그렇다면 역사가 맡아야 할 진정한 역할이란 무엇인가? 역사는 단지 민족정신과 애국심을 불어넣는 것에서 그쳐서는 안 된다. 오히려 민주주의와 사회정의를 위해 시민사회의 일원으로서 갖추어야할 비판정신과 참여의식을 키워주는 데 있다. 역사야말로 현실을 비판적으로 인식할 수 있는 능력, 그리고 나아가 대안적인 삶의 방식을 창의적으로 모색할 수 있는 의지를 길러주기 때문이다.


 역사를 좋아하는 이들은 낙관적이라고 했다. 왜냐하면 이 세계가 그 숱한 대립과 갈등 속에서도 망하지 않고 꾸준히 이어져왔고, 때때로 후퇴하지만 대개는 조금씩 앞으로 나아가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길게 보고 너그럽게 볼 수 있는 안목이야말로 역사를 읽으며 우리가 얻을 수 있는 보배이다.


6. 나만의 가치를 찾아서

 끝으로 문정희가 쓴 [사랑하는 사마천 당신에게]라는 시를 읊는 것으로 이 글을 마칠까 한다. 배보다 배꼽이 크다는 원칙(?)에 맞추어 이 글에서 가장 재미난 부분이 이 시가 아닐까 염려스럽다. 이 시는 ‘투옥 당한 패장을 양심과 정의에 따라 변호하다가 남근을 잘리는 치욕적인 궁형(宮刑)을 받고도 방대한 역사책 [사기(史記)]를 써서 ’인간이란 무엇인가‘를 규명해 낸 사나이를 위한 노래’라는 긴 부제를 달고 있다.


세상의 사나이들은 기둥 하나를
세우기 위해 산다.
좀더 튼튼하고
좀더 당당하게
시대와 밤을 찌를 수 있는 기둥
그래서 그들은 개고기를 뜯어먹고
해구신을 고아먹고
산삼을 찾아
날마다 허둥거리며
붉은 눈을 번득인다.

그런데 꼿꼿한 기둥을 자르고
천년을 얻은 사내가 있다.
기둥에서 해방되어 비로소
사내가 된 사내가 있다.
기둥으로 끌 수 없는
제 눈 속의 불
천년의 역사에다 당겨 놓은 방화범이 있다.

썰물처럼 공허한 말들이
모두 빠져 나간 후에도
오직 살아 있는 그의 목소리
모래처럼 시간의 비늘이 쓸려간 자리에
큼지막하게 찍어 놓은 그의 발자국을 본다.

천년 후의 여자 하나
오래 잠 못 들게 하는
멋진 사나이가 여기 있다. 


 사마천은 자신이 진정으로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를 알았고, 그것을 위해 '남자'라는 기득권을 포기했다. 그에게는 역사책을 위해 자신을 송두리째 던지는 순결하고 끓어 넘치는 용기가 있었다. 젊은 날의 키에르케고르는 자신의 목숨을 바칠만한 가치를 찾기 위해 고뇌했다고 한다. 이제 나에게 물을 차례다. 평생 남의 눈치를 살피며 기둥 크기나 재다가 갈 것인지, 아니면 기둥일랑 내던지고 순수한 열정을 연료 삼아 타오를 수 있는 멋진 사내가 될 것인지를. 이것 참 사기가 내게 많은 과제를 안겨주고 있다. - [憂弱]

Posted by 익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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