탄핵 충격 그 후...

사회 2004. 3. 25. 02:53 |
탄핵 충격이 이제야 좀 가시는 듯하다. 하지만 여전히 슬픈 기운이 나를 압도한다. 우선 노무현 대통령이 국민들에게 많은 인기를 얻지 못한 것에 슬프고, 겨우 1년 만에 대통령직에서 밀려나 헌재 판결을 기다려야 하는 신세가 되는 상황을 그저 지켜볼 수밖에 없는 것도 슬프다.


이 넘치는 슬픔 속에서 내가 배운 것이 있다면... 자신이 좋아하는 것, 믿고 있는 것을 지켜내는 것은 막연한 확신이나 근거 없는 낙관만으로는 되지 않는다는 처절한 가르침이었는지도 모르겠다. 나의 주된 생활습성인 대책 없는 낙관주의가 이번 사태로 큰 타격을 입은 셈이다. 이번 탄핵 폭거는 인간 합리성에 대한 회의를 가지게 해줬다는 점에서 개인사적 전환기를 가져다 줄지 모르겠다.


국회를 규탄하는 목소리가 어느 때보다 드높은 요즘이지만 나는 여전히 의회 민주주의에 대한 애정을 버리지 않는다. 누구도 한 표 이상의 권리를 가질 수 없다는 민주주의의 대전제에 공감한다면, 우리는 개개인의 의사의 총합에 일정기간 지배력을 인정하는 것이 가장 생산적이고 효율적임을 인정해야 한다. 의회주의의 식탁 자체를 걷어찰 수 없다.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이라고는 밑반찬을 조금 바꾸거나, 입가심으로 녹차를 내어올지, 박하사탕을 준비할지 정도 같은 수준에 한정될 것이다.


다만 아쉬운 점은 이번 사태는 의회 민주주의의 이상과는 너무나 동떨어졌다는 것이다. 그간 민주적 방식으로 선출된 지도자의 권위를 일관되게 인정하지 않고, 모욕하고 트집잡던 이들이 민의를 겸허히 살피지 않고 수적 우위를 밀어붙인 것은 의회주의의 정신에 대한 모독이다. 이들에게 반민주주의 세력이라는 멍에를 씌우는 것에 주저하지 않겠다.


이제 내게 주어진 과제는 그 날의 슬픔을 똑똑이 간직하려는 노력일 것이다. 하지만 슬픔의 눈물 속에서 기쁨과 즐거움의 미소가 피어나고, 인간의 비루함에 대한 원망은 인간에 대한 따스한 배려와 사랑으로 치환될 수 있다고 믿는다. 결국 나는 다시 낙관주의에 지친 몸을 기댄다. - [憂弱]
Posted by 익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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