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성의 미학

잡록 2004. 4. 4. 06:15 |
‘평범의 미학’이라는 것이 있다. 둥글둥글 원만하게 사는 것이 아름답다는 제법 근사한 레토릭이다. 중학교 2학년 때 나에게 ‘개성’이라는 단어가 찾아왔다. 대외적으로 고지식한 모범생이라는 평이 자자한 터에 내 삶의 정체성이라는 것에 대한 회의를 하기 시작했고, 개성이라는 단어는 나에게 구세주였다.


나는 ‘개성의 미학’을 선포하고 삶의 지표로 삼기로 했다. 도덕이나 원칙 같은 것에 얽매인 나에게 개성에의 천착은 시원한 샘물과도 같았다. 하지만 나의 개성이 모범생스러운 것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을 이내 발견하게 된다. 중학교 2학년 때 일기를 보면 이러한 고민이 나타나 있다.


나는 어딘가에 구속되거나 제약받는 것을 무척 싫어해. 하지만 이런 자유롭고 싶은 나이지만 나는 여태껏 원칙적이고 형식적인 삶을 고수해왔어. 그래서 몇몇 친구들은 내가 형식적이고 억압적인 것을 싫어한다고 하면 의아해 하기도 하고, 비판하기도 했지. 정말 나는 어떤 것이 나의 참모습인지 깨닫지 못하고 있는 것인지... - 1997년 11월 10일



늘 똑같이 돌아가는 세상에서 나라는 존재의 초라함이 참을 수 없어서, 개성이라는 것을 추구했는지 모른다. 하지만 나는 집단적 관성을 한번도 벗어나지 못했고, 그곳의 자양분을 부지런히 흡수하는 모범생에 불과했다. 개성이라는 단어는 ‘용기’라는 단어와 밀접하게 맺어져 있다는 것을 깨닫는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어른이 되어 가는 주요한 감정 중에 하나가 “세상은 나 없이도 잘 돌아간다”는 것을 처절하게 느끼는 것이다. 내가 사실 그리 중요한 존재가 아니라는 것, 쥐뿔도 아닌데 별것도 아닌 것 가지고 아웅다웅하는 것이 문득 서글퍼질 때가 오고 마는 것이다. 세상은 내 중심으로 돌아가지 않는다는 것... 이 코페르니쿠스적 전환에 누구나 몸서리를 치게 마련이다.


이런 허무를 감추기 위해서 자신만의 의미를 찾기 위해 노력하는 것, 개성을 추구하는 것은 아름다운 일이다. 그러다 보면 자신이 갈고 닦은 것들에 애착을 가지게 되는 것도 인지상정이다. 가령 내가 가지고 있는 지식은 다른 지식들보다 더 맛깔스럽고 빼어나 보인다. 남들은 상식수준의 말을 반복하는 것 같아 지겹다고 폄하하고, 자신이 좀 더 세상을 제대로 바라보고 있다고 생각하기 쉽다.


이런 인식의 오류가 조금 있는 것은 너그러이 넘겨줄 수 있다. 자신의 것이 소중한 것은 개인주의 사고의 기초이니까 말이다. 남의 것도 소중히 여겨주고, 배려하는 것은 그 다음의 일이다. 다만 일부 지식인 혹은 그에 준하는 윤똑똑이들은 자신의 지식은 훌륭하다고 여기면서 대중들의 일반상식은 경시하는 경우가 있다. 하지만 세상은 합리적 상식으로 굴러가고 있고, 지식이란 것은 좀 더 잘 굴러가기 위한 윤활유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 그 점을 직시해야 한다. 하지만 나 또한 이러한 덫에서 내내 자유롭지 못할 것 같다.


나는 내가 좀 더 개성이 넘치는 사람이 되길 바라며, 그러한 개성이 남들에게 인정받기를 바란다. 또한 나의 생각이 좀 더 살맛 나는 세상을 가져다 줄 수 있기를 소망하며, 이를 위해 창조적 상상력을 연마하는 데 나의 정성을 쏟을 것이다. 남들과 똑같다고 조바심 내지 않고, 남들과 다르다고 불안해하지 않는 사람만이 개성의 향연을 펼칠 수 있으리라. 개성이란 무작정 똑같음을 거부하는 것이 아니라 어떨 때는 기꺼이 함께 연대할 수 있다는 정신이며, 차이를 존중하되 차별에는 단호히 반대한다는 의지의 표상이기 때문이다. - [憂弱]
Posted by 익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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