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부권 단상

사회 2004. 5. 22. 17:37 |
하나의 유령이 대학을 떠돌고 있다 - 공부권이라는 유령이.

대학 생활의 목표를 좋은 학점 취득과 대기업 취업, 고시 등 각종 시험 합격에 두고 학과 공부와 시험 공부에 매진하는 학생들을 일컫는 ‘공부권’이 무섭게 세를 넓혀가고 있다. 공부권이라는 단어를 처음 고안해 낸 서울대의 이규진씨는 “과거엔 학생들이 반독재 투쟁 등 사회운동에 적극적으로 나설 필요가 있었지만, 지금은 자신의 전공분야를 열심히 공부하는 것이 가장 큰 시대적 요구라고 생각한다(한국일보 2003. 11/02 기사 참조)”고 말했다.


공부권들의 등장이 가뜩이나 사회에 무관심한 대학생들이 개인주의에 더 매몰되고 있다는 비판이 적잖이 있지만 열심히 공부하겠다는 그네들의 욕구를 막지는 못할 듯 싶다. 설령 그 공부의 목적이 오로지 개인의 출세와 영달에만 국한되는 것이라고 해도, 또 어려운 경제상황으로 인한 생계형 포지셔닝이라고 해도, 치열하게 자신을 가꾸려는 노력이 힘을 얻고 있다는 것은 일단은 환영할만한 일이다. (그런 의미에서 뒹굴 뒹굴 놀 궁리만 하는 나는 정말 반성해야 한다^^;)


공부권의 선의를 받아들인다면 그들은 멀리 뛰기 위해 잠시 움츠리는 냉철한 현실감각을 갖추는 것이며 내일의 당당한 주체로 서기 위해 오늘의 땀방울을 아끼지 않는 자세이다. 순간의 행복을 포기하고 싶은 사람은 아무도 없다. 순간의 행복을 유보한 만큼 얼마나 더 큰 행복을 거둘 수 있을지는 장담할 수 없는 노릇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활활 타오를 기회는 나중에 널렸다며 불씨 정도만 간직하고 사는 성실한 공부쟁이들을 나는 존중한다. 그리고 나 또한 공부권으로서의 기질이 다분함을 느낀다.


학교 우등생이 사회 열등생이라는 말은 이제 옛말이다. 학교 모범생이 사회에서도 두각을 나타내는 실력위주의 사회가 도래한지 오래다. 고지식하고 순발력도 떨어지는 나 같은 범생 스타일이 앞으로 좀 더 사회의 주도적 위치로 진출할 수 있을 것이라고 호들갑을 떨어본다. 지금 당장에 시급 4000원의 알바보다는 미래에 시급 40만원의 역량을 쌓는 것이 한 개인에게 있어서나 사회 전체에 있어서나 후생을 증대시키는 유쾌한 노력이 될 것 같다. 물론 높아질수록 낮은 곳을 응시할 줄 아는 올챙이적 기억을 간직하겠다는 기본적 합의가 전제된다면 말이다.


어느덧 대학 3학년이라는 압박에 허덕이는 나를 보면서 많은 질문을 던져본다. 당최 앞으로 뭘 해서 밥 벌어먹고 살지 막막한데, 무엇에 내 꿈을 투자해야 할지도 아직은 묘연하다. 고민할 시간이 자꾸 침식되어 가고 있다는 절박감이 엄습한다. 일단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의 방책은 오늘 하루를 열심히 배우고 익히면서 살아내는 것이다. 분명 언젠가 이거구나 하는 것이 내게 살포시 다가 올 것이라는 희망을 안고서 말이다.


공부권들은 개인주의 혁명에서 자신들을 묶고 있는 무식의 족쇄 외에는 잃을 게 없다. 그들에게는 얻어야 할 진리가 있다.

만국의 공부권들이여, 흩어져라! - [憂弱]
Posted by 익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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