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부터인가 나를 따라다니는 지상과제가 있었다. 대중성 확보가 바로 그것이다. 고등학교 시절 언젠가 ‘넓은 익구 정책(Broad Ikgu Doctrine)’을 펼치게 된 이래로 익구의 대외 정책의 근본 기조는 변함이 없었다. (독트린은 ‘국제 관계에서 자기 나라의 정책이나 행동의 기반이 될 원칙을 공식적으로 표명한 것’이라는 뜻이다. 개인을 소국가로 치환시켜서 생각하는 익구로서는 즐겨 쓰는 용어다) 어린왕자에서 세상에서 가장 어려운 일이 뭔지 아냐는 물음에 사람의 마음을 얻는 일이 가장 어렵다는 구절이 나온다. 실로 누군가의 마음을 얻는 다는 것은 어렵고도 소중한 일이다.


성격심리학적으로 내향적인 나는 내면세계에 울타리를 치고 있어 넓은 교제가 힘들고 가까운 몇몇 사람들과 흉금을 터놓고 깊은 관계를 맺는 경향이 강하다고 한다. MBTI 16가지 성격유형 중에서 가장 독립적 성향이 강하다는 INTJ형인 나는 주위 사람에게 무심하게 대하거나 현실과 벽을 쌓고 냉정하고 거만한 모습을 보이기도 한다. 지적 탐구를 좋아해서 몽상과도 같은 깊은 사색을 즐기며, 논쟁을 좋아하지만 자신의 생각에 집착하는 고집불통이 되기 십상이라고 한다. 또한 농담도 별로 하지 않고 남의 농담도 잘 받아들이지 못하거니와 자신을 비롯한 다른 사람에게도 상당히 높은 수준을 설정해서 까다로운 리더나 부모의 전형이 된다고도 한다(마지막은 동의할 수가 없다. 내가 얼마나 널널한데... 푸하하).


사람 성격은 선천적인 측면이 강하기 때문에 쉽게 고치기 힘들다고 한다. 숱한 노력을 기울여 내 성격의 단점을 고치려는 노력은 소중하지만 분명 거기에는 한계가 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이것만은 절대 못하겠다, 이건 정말 내 타입이 아니다라는 생각이 무의식중에 들어 하지 못하는 일들이 제법 되는 것 같다. 하지만 내 성격유형이 가리킨 대로라면 나란 놈은 정말 대인관계 꽝인 아웃사이더 인생에다가 홀로 유유자적 고고함을 추구하며 사는 것이 딱 맞는 녀석이 되어버린다. 세상에 내가 얼마나 사람을 좋아하고 누군가와 대화하고 관계 맺는 것을 좋아하는데 이렇게 불공평할 수가 있냔 말이다. 내가 얼마나 외로움을 많이 타는데...^^;


이런 답답한 마음에 도올 선생이 조금 풀어주셨다. 도올 선생은 검증 없이 우리 머리를 짓누르고 있는 엉터리 위험한 말로 가운데 이런 것이 있다고 말한다.

“야! 넓은 사람은 깊지 못해. 깊은 사람은 넓지 못하고-. 야! 말 잘하는 사람은 글을 못써. 글 잘쓰는 사람은 말 잘 못하고-. 야! 철학 잘하는 사람은 예술은 못해. 예술에 뛰어난 사람은 철학은 못하고-.”



도올 선생은 이것이 서구문명이 특히 기독교 문명이 현대적 인간에게 선사한 가장 큰 죄악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한다. 그는 어떻게 넓은 사람이 깊은 수 없을 수가 있으며, 어떻게 깊은 사람이 넓지 않을 수가 있겠느냐고 반문하며, 깊으면 깊어질수록 인간은 넓어지게 마련이고, 넓으면 넓어질수록 인간은 깊어지게 마련이라고 말한다. 만약 그렇지 않으면 그것은 참으로 깊은 것이 아니며, 그것은 참으로 넓은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결국 우리는 다면적일 수 있고, 다면적이어야 한다고 역설한다. (김용옥, [철학강의], 통나무, 1998, 255~256쪽 참조)


나는 무릎을 쳤다. 이것이냐 저것이냐 고르는 OR의 사고에서, 이것도 저것도하는 AND의 사고를 가질 수 있게 된 것이다. 그러면서 넓은 익구 정책을 펼치게 된다. 하지만 내가 그토록 원하던 대중성 확보라는 것이 무엇인가 하는 문제가 남는다. 이는 크게 두 가지로 관계맺음의 절대량을 증대시키는 것과 현실감각을 기르는 것이다. 이 둘의 상호작용을 통해 많은 사람과의 좋은 관계를 도모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이는 공짜로 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엄청난 사교비용을 쏟아 붓게 된다. 실제로 돈, 시간, 노력 등 가용자원을 많이 투하했다.


하지만 특히 남자들과의 관계에서 큰 효용을 가져다 주지 못했다는 생각이다. 스포츠를 보거나 하는 것을 죄다 시큰둥해하고, 각종 게임도 젬병에다가, 여자 연예인 이야기에도 관심이 없고, 이런저런 잡기에 무지한 데다, 꼴에 양성평등주의자라고 이래저래 까다롭기까지 한 나를 도대체 무슨 재미로 옆에 두고 싶겠냐는 것이다.^^; 아무리 시장조사를 해서 세분시장을 파악하고 표적시장을 정해서 포지셔닝을 하려고 해도, 내가 비집고 들어갈 틈새시장조차 확보하기가 여의치 않다. 여기서 나의 딜레마가 있는 것이다. 내가 원하는 것은 광대한 시장인데, 내 상품성은 틈새시장조차 확보하기 힘들기 때문이다.


나는 내 스스로가 누군가에게 좋은 벗, 선/후배가 될만한 자질이 있는지 아직 자신이 없다. 그러나 정말 진솔하고 투자할 만한 가치가 있다고 생각될 수 있도록 실력과 인격을 겸비하기 위해 노력할 것이다. 나는 궁극적으로 진지하고 깊이 있는 인간관계를 만들어 나가면서도 교류의 즐거움, 소통의 기쁨을 나눌 수 있는 친구, 후배, 선배, 동생, 형이 되기를 바란다. 진지한 유쾌함을 선사하는 것이 나의 포지셔닝이다. 대중성 확보는 이를 위한 수단에 지나지 않는다. 그러나 배보다 배꼽이 커버린 형국이 되어버렸지만 가치를 제공하지 못하는 인간관계는 지속될 수 없다는 것만은 분명하다.


난 앞으로도 무뚝뚝하고 고리타분해서 인간관계에 서투를지 모른다. 그러나 진정성을 가지고 한 사람 한 사람을 대한다면 대중성은 저절로 따라올 것이며 나와 관계 맺고 있는 지인들께 진지한 유쾌함을 비롯한 이런저런 가치들을 창출해서 나눠 가질 수 있을 것이라 확신한다. 有麝自然香 何必當風立(사향노루는 자연스레 향기가 나는 것이니 어찌 바람을 맞아 서 있을 필요가 있겠는가?)라는 말이 있다. 억지로 대중성을 쥐어 짜내는 데는 한계가 있다. 내가 뿜어내는 향기가 은은하다면 자연스레 나란 녀석과 관계 맺을 유인이 생길 것이다. 나의 개인주의는 고립의 미학이 아니라 다른 개인과의 연대를 통해 아름다움을 일구는 것을 지향하기 때문이다. 대중성 확보를 위한 아름다운 타협은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이 글을 읽는 그대, 익구에게 투자해주시라~ - [憂弱]
Posted by 익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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