史記에서 내가 가장 감명 깊게 읽은 이야기 중의 하나는 맹상군 이야기다. 내 초등학교 일기장에도 세상에 버릴 사람은 하나도 없다는 맹상군의 정신을 본받아야겠다는 구절이 나올 정도였으니 말이다. 언젠가 맹상군이 파면되자 삼천명에 달했다는 그의 식객들이 모조리 그의 곁을 떠나버렸다. 맹상군이 복직되자 거의 유일하게 남아 있었던 식객 풍환은 다시 그 식객들을 모으려고 했다.


맹상군은 만일 뻔뻔스럽게 찾아오는 자가 있다면 그 낯짝에 침을 뱉어주고 싶다며 버럭 화를 냈지만 풍환은 차분하게 말했다. 세상 이치에 반드시 그럴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That's the way the ball bounces!(그것이 세상 돌아가는 이치이다) 결국 세상 인심은 원래 그 모양 그 꼴이라는 것이다. 부귀한 몸이 되면 따르는 자가 많으며 가난하고 천한 몸이 되면 벗이 적어지는 것은 필연적인 일일 뿐이라며 다음과 같은 비유를 든다.


“시장에 가셔서 보십시오. 아침에는 서로 앞을 다투어 먼저 문으로 들어가려 하지만, 해가 진 뒤에는 시장을 쳐다보지도 않습니다. 이는 아침에 시장을 좋아하다가 저녁에는 미워하기 때문이 아닙니다. 다만 저녁 시장에 원하는 물건이 없기 때문인 것입니다. 식객들이 귀공의 파면을 보고 떠난 것도 같은 이유에서입니다. 그들을 미워해서는 안됩니다. 아무쪼록 그 전과 다름없이 대우해주셨으면 좋겠습니다.”


누구나 어떤 일을 맡아서 하다 보면 혼자 덩그러니 남아서 무진 애를 쓴다는 기분이 들 때가 종종 있다. 사실 지나가 보면 아무것도 아니고, 별 것도 아닌 것이 세상사의 허망함이다. 그러나 그 순간만큼은 아프고 화나고 힘들고, 그 순간을 함께 나눠줄 사람이 정말 절실하게 마련이다. 그 순간은 그저 지나보내고서 나중에 좋게 좋게 넘어가려는 이들을 보면 아무리 세상 이치가 그렇다고 해도 얄밉고 섭섭한 것이 인지상정이리라.


나는 그런 기분이 들 때면 도덕경 2장의 功成而弗居(공성이불거)나 9장의 功遂身退 天之道(공수신퇴 천지도)란 구절을 떠올린다. “공이 이루어져도 그 공 속에서 살지 않는다”, “공이 이루어졌으면 몸은 물러나는 것, 하늘의 길이다”라는 구절을 자주 읊조리는 것은 그만큼 내가 일구어놓는 것에, 나와 인연이 닿은 것에 애착 혹은 집착이 강하다는 것의 방증이다. 내가 어쩌다가 좋은 일 하나 해서 남들이 그 덕분에 알콩달콩 재미나게 지내는 모습을 본다면 괜히 침 흘리지 말기를, 하나둘 나란 녀석을 모른 체 해도 잊혀지는 것에 너무 몸서리치지 말기를 다짐해왔고 비교적 잘 준수해왔던 것 같다.


그런데 학생회 잡일을 하면서 반일꾼들이 일은 일대로 하면서 욕은 욕대로 먹는다며 하소연할 때는 뾰족한 대책이 없었다. 그런 소리를 들으면 여러분들보다 훨씬 더 구박을 많이 받는 나도 이렇게 싱글벙글 웃으며 지내고 있으니 조금 여유롭게 생각하자고 독려를 하지만 별로 효과는 없는 것 같다. 사실 귀찮은 일, 궂은 일 피하고 싶은 것이 사람 마음이지만 그래도 어느 정도 일을 추진할 사람이 있어야 한다는 것도 어쩔 수 없는 일이니 늘 딜레마인 셈이다.


개인주의자인 나로서는 누군가의 희생으로 어떤 일이나 조직이 유지되는 것은 별로 바람직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그런데도 현실적으로 그렇게 전개되는 경우가 많은 것 같다. 내가 경영학도로서 건진 몇 안 되는 지식 중에 수익자부담원칙과 참여자보상원칙이 지켜지지 않는 조직은 오래가지 못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한국 사회는 여전히 정과 의리, 집단주의 등의 어찌 보면 비합리적이라 할만한 요소들에 많이 좌우되는 경향이 있다. 빡셀 때는 두 손놓고 있다가도 일이 다 끝나면 “좋은 게 좋은 거”라며 밥숟가락 들고 찾아오는 것도 그러려니 넘어가는 경우가 많기도 하다.


누군가의 고생으로 이룩하고, 힘겹게 쥐어 짜내야 돌아가는 조직이라면 머지않아 곧 망해야 할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소간의 손해를 감수하면서도 망하는 속도를 조금 늦추려 하고, 합리적으로 추정 가능한 수준에서 망하도록 하려고 노력하는 이들도 많다. 풍환처럼 “원래 이 바닥이 그래”라며 속 편히 말하면서도 미안한 마음으로 그네들의 노고에 깊은 고마움을 느낀다. 그런 좋은 사람들의 선의가 악의에 짓밟히지 않는 세상이 되도록 나도 돕고 싶다. 팍팍한 세상을 조금이나 촉촉이 하는데 나도 일조하고 싶다.


나는 경영학도이고 손해보는 장사는 정말 싫어하지만 살면서 가끔 손해보면서 남 좋은 일을 잠시라도 해보는 것을 유쾌한 경험으로 추억할 수 있는 넉넉함을 가졌으면 좋겠다. 꼭 見善如渴이라는 말처럼 착한 일을 보거든 목마를 때 물 본 듯이 주저하지 않을 정도는 아니라도 말이다. 또한 나를 달면 삼키고 쓰면 뱉는 사람들에게 상처받기보다는 내가 그네들의 살림살이에 보탬이 되지 못한 것을 먼저 반성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내 주위에 사람이 많아서 부대끼다보니까 어쩔 수 없이 발생하는 현상이라며 내 인복에 고마워하면서 말이다. 그리고 가야할 때가 언제인가를 분명히 알고 가는 아름다움을 품었으면 좋겠다. 내가 이뤄놓은 것에 마냥 흐뭇해하기보다는 남이 이룰 것을 북돋워주면서 말이다. - [憂弱]
Posted by 익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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