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학자들이 그들의 나라에서 왕이 되지 않는 한, 또 반대로 왕 또는 지배자로 불리는 이들이 실제로 지혜를 사랑하지 않는 한, 즉 정치 권력과 철학이 하나로 합쳐지지 않는 한, 국가에 있어서 인류에 있어서 나쁜 것들이 종식될 날이 없을 것이다”


그 유명한 플라톤의 철인군주론이다. 플라톤이 실제로 정치적 야심을 품고 왕이 되고자 직접 거사를 도모했던 적도 있다고 한다. 제자들은 자못 답답한 마음에 물어왔을 것이다. “무엇 때문에 스승께서는 그토록 권좌에 집착하십니까?”라고 말이다. 플라톤의 대답은 간단했다. “나보다 못한 놈들이 나를 다스리는 것을 참을 수 없으니까.” 대철학자의 자부심과 안타까움이 묻어 나오는 일화가 아닐 수 없다.


2002년 대선 당시 노무현 후보의 지지율이 떨어진다는 이유로 여기저기서 흔들기를 하고 있을 때 유시민 선생이 칼럼니스트 활동을 접고 절필을 선언한 일이 있다. 경기장에 반칙이 횡행하는데도 심판이 그것을 묵과하거나 오히려 반칙한 쪽은 편드는 일이 반복되는 데 해설자 노릇만 하고 싶지 않다는 이유였다. 떳떳하게 경기하는 선수가 발길에 채이고 밟히고 모욕당하고 있는 것에 대한 분노는 많은 이들을 공감시켰다. 그는 결국 반칙하는 선수를 규탄하는 관중을 조직하는 데서 나아가 선수로서 경기장을 누비고 있다.


플라톤이나 유시민은 대리인비용(agency cost)을 치르는 것이 버거워 본인이 주체가 되기로 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M.jensen & W.Meckling은 1976년의 논문에서 법인세나 개인소득세 등을 고려하지 않는 경우에도 대리인비용의 존재로 인하여 기업의 최적자본구조가 존재할 수 있다고 주장하였다. 재무학 관점에서 보면 자기자본의 대리인비용과 부채의 대리인비용의 합인 총대리인비용이 가장 작아지는 부채비율이 존재하며 이 지점에서 자본비용을 극소화하고 기업가치를 극대화하는 최적자본구조가 되는 것이다.


모든 인간들이 이기적이라는 경영/경제학적 가정에 기반을 둔다면 사람들은 저마다의 이익이 극대화가 되도록 행동하는 경향이 있다. 기업의 다양한 이해관계자들 사이의 이해관계는 항상 일치될 수 없다. 주주와 경영자, 주주와 채권자 등의 관계에서 이해관계가 상충될 수 있으며 이로 인해 발생하는 문제를 대리인문제(agency problem)라고 한다. 주주와 채권자간에 발생하는 대리인문제의 경우는 채권자는 대리인문제를 감안해서 높은 이자율을 매길 수 있으므로 결국은 기업과 주주가 손실을 부담하게 된다. 결국 대리인문제는 불특정 다수인들로 구성되어 비교적 약자의 입장에 있는 주주들에게 가장 치명적이다.


M.jensen & W.Meckling은 대리인문제와 관련하여 발생되는 모든 비용인 대리인비용을 다음 세 가지로 분류했다(정확히 말하면 ‘자기자본의 대리인비용’이다). 감시비용(monitoring cost)은 대리인의 행위를 직접 감시, 감독하는 데 드는 비용뿐만 아니라 일의 성과에 대한 평가비용, 합리적 보상체계와 유인체계의 도입비용, 기회주의적 행위의 제재비용 등을 말한다. 보상유인정책(incentive system), 예산통제시스템의 설정 등이 그것이다.


확증비용(bonding cost)은 대리인이 스스로 기회주의적 행위를 하지 않겠다는 물적, 인적 보증을 하는 비용을 말한다. 즉, 대리인이 주인에게 해가 되는 행위를 하지 않고 있음을 확증하기 위해야 대리인이 부담하는 비용을 말한다. 주인의 이해에 반하는 행동을 하지 않기 위해 스스로를 제약하고, 위반시의 벌칙을 약속하는 행위, 회계감사를 받아 영업보고서를 공시하는 경우 등이 그것이다.


잔여손실(residual cost)은 감시비용과 확증비용의 지출에도 불구하고, 대리인의 의사결정이 주인의 최적의사결정과 일치하지 않음으로써 발생하는 주인의 부의 감소를 말한다. 감독과 보증노력을 하고 나서도 남는 비효율과 낭비로서 대리관계로 인한 생산의 감소 혹은 주인의 효용 감소라고 볼 수 있다.


보통의 합리적 인간이라면 대리관계에서 어느 정도의 감시비용과 확증비용을 지출하려고 노력하게 마련이다. 하지만 감시비용과 확증비용은 말 그대로 비용이 들기 때문에 대리인의 기회주의적 행위를 원천봉쇄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주인과 대리인, 즉 주주와 경영자가 똑같이 의사결정을 하기 때문에 경영자가 주주 부의 극대화를 이룰 수 있다는 완전자본시장의 이데아는 희망사항이라는 것은 상식이다. 결국 일정 정도의 잔여손실은 불가피한데 이에 대한 개개인의 판단도 다를 것이다.


잔여손실에 대한 내성(耐性)의 정도를 ‘잔여손실내성도’라고 명명해본다면, 플라톤의 거사나 유시민의 절필은 자신의 잔여손실내성도를 넘어섰기 때문에 더 이상 대리인비용을 치르기보다는 차라리 자신이 직접 하는 것이 낫겠다는 판단을 한 것이라고 해석할 수 있다. 어련히 알아서 잘 했으면 비용도 조금만 지출하고 자기 하고 싶은 일 하면서 재미나게 보낼 수 있는 것을 원체 죽을 쑤고 있으니 참다 못해 내 손으로 하는 것이 손실을 줄이는 방책이라는 것이다.


민주주의 사회에서의 모든 권력은 주권자인 국민이 일정 기간 동안 위임해준 것이다. 주인인 국민에게 이익을 가져다주지 못하는 정치권력, 경제권력, 문화권력은 감시비용과 확증비용을 현격히 높이다가 궁극적으로는 잔여손실을 증대시킨다. 사람마다 잔여손실내성도는 다르겠지만 대리인들의 삽질이 계속되면 될수록 대리인들을 퇴출시키고 자신이 직접 나서는, 그것이 아니라면 적어도 다른 대리인을 내세우려는 유인이 커진다. 자신의 잔여손실내성도를 넘어섰을 때 이에 적극적으로 대처하는 사람이 상도덕을 바로 세워 짭짤한 수익을 거둘 수 있을 것이다. - [憂弱]
Posted by 익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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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새우범생 2004.08.09 03:21 Address Modify/Delete Reply

    플라톤이 거사를 일으켰다는 이야기는 이왕주 著, [철학풀이, 철학살이], 민음사(1995) 刊, 280쪽에 짤막하게 나오지만 이 것 이외에 플라톤이 거사를 일으켰다는 다른 이야기를 접해보지 못했다. 다만 시라쿠사의 폭군 디오니시우스 1세를 철학적으로 설복시키려는 시도나 다음 군주인 디오니시우스 2세에게 철인 정치가 교육을 하려다가 국외로 추방되는 모습들에서 그의 노력을 알 수 있고 하도 자기 말 안 듣는 군주들에게 화가 났을 법도 하다는 상상을 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