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지간한 군자와 성인이 아니라고 한다면 개인적 좋고싫음의 상당수는 편견에 지나지 않을지도 모른다. 인간관계에서 개인적 좋고싫음은 자연스러운 것이며 그 과정이 크게 합리적이지 않더라도 폭력적이지만 않는다면 존중받아야 한다. 어떤 사람에 대해 나쁜 감정을 품는 것은 자유지만 그것을 가지고 그 사람의 말과 글을 신뢰하지 않는다거나, 자신의 뜻대로 강요하는 행위는 폭력적이고, 구박받아 마땅하다. 이런 경우의 대표가 나만 잘났다고 생각하는 사람, 자신은 절대적으로 옳다고 생각하는 사람일 것이다.


최근에 뉴라이트(New Right) 운동을 표방하며 등장한 자유주의연대를 위시한 단체에게서 “나만 잘났다”의 혐의를 지울 수 없다. 사실 처음 자유주의연대가 등장했을 때 극우파들에게 신선한 자극제가 되어 제대로 된 보수세력으로 자리매김할 수 있기를 바랐다. 그런데 이들이 하는 일이라고는 오로지 남의 탓이며 내 말이 옳다라는 독선을 보여주는 것이었다. 명색이 자유주의자라는 이들이 이 짓거리니 더욱 실망스럽다.


제 정신이 박힌 사람이라면 “나는 누구인가?”를 가장 중요한 물음으로 삼아야 한다. 그런데 뉴라이트들은 “너는 누구인가?”를 캐내는 데 날밤을 새고 있다. 너는 주사파고 빨갱이라며 손가락질하기 바쁘다. 자기 반성 없이 누군가를 비판하는 것은 얼마나 공허한가. 합리적 보수 세력을 꿈꾸는 이들이라면 먼저 극우파와 수구세력을 통박하는 것이 순서다. 국가주의적 폭력과 손잡는 사이비 자유주의자와 경제적 자유에만 편향된 자유주의자들을 극복하는 데서 제 존재 의의를 찾았어야 한다.


그런데 뉴라이트들은 진보좌파를 공격한답시고 노무현 정부에 화살을 쏘고 있다. 자기 반성 없이 남 손가락질하는 것도 우스운데 그것도 번지수를 한참 잘못 찾아간 셈이다. 뉴라이트와 노무현 정부의 사회경제정책이 얼마나 차이가 있는 것인지 모르겠다. FTA를 통해 시장 개방을 추진하고, 노조 등에 욕 먹어가며 기업의 자유를 보장하는 데다 사회복지도 열악해서 부실 도시락 파문이나 일으키는 정부가 무슨 좌파라는 것인지 수긍하기 힘들다. 게다가 대한민국의 헌법이 규정한 사상과 양심의 자유를 실현하기 위해 국가보안법 폐지를 하겠다는데 자유민주주의의 위협이 된다고 생각하니 황당할 따름이다.


앞서 말했듯이 자칭 자유주의자들은 자신을 먼저 돌아볼 필요가 있다. 극우파의 횡포에 침묵했거나 오히려 한술 더 떠서 거기에 기생하고 봉사했던 것을 부끄러워하지 않는 자유주의자는 사이비에 불과하다. 왕년의 주체사상 신봉자였던 이들이 전향해서 극우파를 지원사격하는 것도 자유주의와 거리가 먼 것은 피차 일반이다. 아니 오히려 극단을 넘나들며 헛소리를 반복하는 모습에서 연민이 느껴진다. 물론 사람은 누구나 변화할 수 있는 가능성을 품고 있고 주사파에서 반공투사로 바뀌는 것도 있을 수 있는 일이다. 그러나 자신들의 고해성사를 빌미로 남의 양심고백을 얻어낼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왕년에 요설을 휘둘러 대장질 하던 재미가 쏠쏠했는지는 몰라도 이제는 통하지 않는다.


사상의 자유시장을 옥죄는 국가보안법을 나 몰라라 하고서 “나와 정정당당하게 한 판 겨뤄보자”는 외침은 공허할 뿐이다. 진정한 자유주의자는 “전면적 자유주의자”라야 한다. 경제적 자유만을 절대시하는 것은 진리의 포트폴리오를 하겠다는 이의 자세가 아니다. 경제, 정치, 사회, 문화 모든 영역에서의 자유가 만개할 때 자유주의가 실현되는 것이다. 자유가 모든 영역에서 평등(!)하게 적용할 때 비로소 자유주의자로서의 보람을 느껴야 한다. 일부 사이비 자유주의자들은 제 입맛에 맞는 자들의 자유만 옹호하고, 합리적 토론을 가로막는 각종 폭력적 방식에 침묵, 방조하는 편식을 함으로써 스스로의 영혼을 야위게 하고 있다.


태도로서의 자유주의는 모든 ○○주의자의 상식이 되어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유주의자라는 타이틀이 한국 사회에서 유효한 것은 전체주의와 싸우고, 이 땅의 숨막히는 보수성에 유연성을 불어넣고, 개인의 해방을 추구하는데 아직 할 일이 많다고 보기 때문이다. 뉴라이트가 공연히 연막작전이나 피우면서 한나라당 등의 세력을 돕는 판세가 되는 것을 경계해야한다. 조선일보에 실리는 진보적 색채의 글 상당수가 조선일보의 극우성을 감추는 분칠을 하는데 쓰이는 것처럼 말이다. 뉴라이트가 첫마음을 잃고 극우파와 짝짜꿍할 때 그네들이 그렇게 주창하는 자유시장의 법칙에 따라 퇴출되거나 한나라당에 인수, 합병되는 수밖에 없을 것이다.


뉴라이트는 자신의 자유만큼 남의 자유가 소중하다는 것을 알고 함부로 강요하는 행위를 경계해야 한다. 힘있는 자의 자유에는 너그러우면서 힘없는 자의 자유에는 매서운 자유주의자는 볼썽사납다. 오류의 가능성을 인정하지 않는 김정일 폭압정권을 누구보다 비판하는 분들인 만큼 자신들도 그 덫에 빠지지 않도록 노력해야 한다. 니체는 “괴물과 싸우는 사람은 자신이 괴물이 되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고 했다. 싸우면서 닮는다고 하지만 공산당을 극복하겠다면서 파시스트의 방식을 답습해서는 희망이 없다. 자유주의자가 믿고 기댈 것은 남의 생각과 색깔을 따지기 전에 스스로를 회의하고 성찰하려는 자세, 사상의 자유시장에서 부당한 지원 없이 정정당당히 겨뤄보려는 자세다.


신자유주의 바람이 우리의 삶을 윤택하게 만들기 보다 자꾸만 팍팍하게 만든다면 진짜 자유주의자들이 앞장서서 비판해야 한다. 부당한 부자유와 불평등으로 인해 인간다운 삶이 위협받을 때 새로운 대안을 모색하는 것도 진짜 자유주의자들이 포기할 수 없는 과제다. 이제 진보주의자들이 각종 개혁 의제를 독점하게 놔두지 말자. 앞으로 진보 세력에게 볼멘소리로 시비나 걸고 반동적 목소리에 동조하는 추한 모습도 삼가자. 우리가 몸둘 곳은 치열한 경쟁이 있는 자유시장이지, 안온한 자본과 기득권의 품속이 아닐 것이다. 자유시장에서 상도덕을 지키며 살다보면 끼니마다 고기반찬이 오르기 힘들지는 몰라도, 편식 없는 고른 영양섭취로 영혼이 살찔 수 있을 것이다.


자유주의자는 확신을 미감으로 하지 않는다. 그러나 인간에 대한 신뢰만은 포기하지 않는다. 이러한 낙관주의가 없으면 자유주의는 비루해진다. 남의 자유를 존중하고 그 자유가 잘 실현될 수 있도록 배려한다면, 굳이 서로를 철썩 같이 믿지 못해도 낙관적으로 세상을 바라보고 살 수 있을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뉴라이트의 건투를 빈다. - [憂弱]
Posted by 익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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