쓸쓸한 황룡사터에서 희망을 찾다

문화유산은 잘 만드는 것도 중요하지만 잘 보존하는 것도 능력이다. 그런 면에서 우리나라는 형편없는 축에 속한다. 잦은 외침에 시달려 찬란했던 문화유산들을 한없이 파괴당하고 약탈당했다. 또한 일제시대를 겪으며 어지간한 문화유산은 개박살이 났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동족간에 전쟁을 치르는 것도 모자라 개발독재 시절 난개발의 후유증도 계속되고 있다. 진정한 문화 강국은 잘 만드는 것보다 잘 지켜내는 것에 있는지도 모른다.


훼손된 문화유산의 목록은 끝도 없지만 그 중에서 많은 이들을 애타게 하는 것 중에 대표적인 것이 바로 황룡사다. 황룡사는 4대왕 93년이라는 긴 세월에 걸쳐 완공된 신라 최대 사찰이다. 동양 최대의 목탑인 9층목탑과 구리 3만여근, 황금 1만198푼이 들어간 본존불 금동장륙상 및 성덕대왕신종(에밀레종)보다 4배나 큰 황룡사종이 있었다고 한다. 1238년(고려 고종 25년) 몽골군의 침입으로 불타버리고, 임진왜란 때도 왜놈들이 불타버린 황룡사의 유물들을 파헤쳐 갔다고 한다.


지금의 황룡사터는 금동장륙상을 올려놓았을 커다란 석조대좌 흔적과 9층목탑을 쌓았던 64개의 초석 정도가 남아 있을 뿐이다. 잿더미가 되고 약탈도 당했지만 발굴 당시에 많은 유물이 쏟아져 나왔다. 경주국립박물관에서 볼 수 있는 높이 182cm, 최대 폭 105cm인 대형 망새는 황룡사의 규모를 짐작케 해준다. 망새는 치미라고도 하는데, 궁궐, 절 전각의 용마루(지붕 위의 가장 높게 마루진 부분) 양쪽 머리에 얹는 용머리처럼 생긴 기와 장식물을 말한다. 거대한 망새의 존재는 당시의 건물이 얼마나 웅장했는지 즐겁게 상상하게 만든다.


9층목탑 터에 서면 전율이 돋는다. 600년대에 세워진 높이 80m(225척)의 웅장한 목탑의 위용은 가늠하기조차 힘들다. 현존하는 목탑 중에 세계에서 가장 높다는 1056년 요나라 때 만들어진 응현5층탑을 능가하는 높이다. 많은 이들이 9층목탑 복원을 소망하는 것도 문헌상의 기록으로만 짐작하는 화려했던 목탑에 대한 기대감 때문이리라. 너른 목탑 터에서 세계 최고의 목탑을 세운 것에 대한 자부심보다는 지켜내지 못한 것에 대한 회한이 더 짙게 드리운다. 거대한 심초석을 어루만지며 고종석 선생의 소설집에 등장하는 세계적 석학 피터 버갓씨의 냉소를 떠올렸다.


이 나라는 뭐든지 규모가 작다. 일본 사람들은 작은 것 잘 만들어내는 데 세계 제일로 알려져 있지만, 옛 일본 사람들이 남겨놓은 유적들은 그 규모가 꽤 볼 만하다. 한국은 궁전이든 사찰이든 너무 작다. 단지 작을 뿐만 아니라 초라하다. 나는 이 나라가 아시아의 다른 나라들에 비해 미국인이나 유럽인에게 덜 매력적인 것이 충분히 그럴 만하다고 판단했다. 좋게 평가하자면, 이 나라는 과거의 나라가 아니라 미래의 나라인 듯하다. 이 나라 사람들이 자신들의 조상에게서 물려받은 빈약한 자연적 문화적 자원을 생각하면, 이 정도의 사회라도 만든 것이 대견하다 싶을 정도다. 한국 사람들은 자기들의 나라를 이탈리아나 아일랜드에 비교하고 싶어하지만, 이 나라에는 이탈리아나 아일랜드만한 과거가 없다.
- 고종석, [엘리아의 제야](2003), 문학과 지성사, 89 ~ 90쪽


우리가 풍요로운 전통문화를 자랑한다고는 하지만 이웃나라인 중국과 일본의 문화유산을 보면 주눅이 드는 것도 사실이다. 그만큼 지켜내는 능력이 부족했던 우리 자신이 부끄러워진다. 오늘날 우리가 세계에 알려지게 된다면 풍성한 문화유산보다는 첨단 기술력의 덕이 더 클 것이다. 2004년 12월 삼성물산은 아랍에미리트(UAE) 수도 두바이에 세워질 높이 700m가 넘는 버즈 두바이 빌딩을 수주했다. 이로써 삼성은 세계 3대 마천루 모두를 건설하는 영예를 누리게 되었다. 또한 롯데물산은 서울 송파구 신천동 제2롯데월드 부지에 높이 800m 규모의 초고층 빌딩 건립을 추진 중이라고 한다. 선조들의 장인정신이 우리를 미래의 나라로 이끌어주는 것은 아닐까.


문득 2004년 중국 베이징 여행 때 들렀던 원명원이 생각난다. 본디 이화원을 능가하는 호화로운 이궁(離宮)이었으나 1860년 영국과 프랑스 연합군에 의해 약탈당하고, 1900년 또 다시 8개국 연합군에 의해 파괴되어 폐허만 남게 되었다. 서양루 유적지를 둘러보니 여기저기 부서진 석재들이 그 자체로 매력이 있었다. 하지만 황룡사터 경우에는 목조 건축이다보니 주춧돌만 덩그러니 남아 그런 감흥이 일지가 않는다. 남은 잔해가 거의 없으니 아무리 머리를 쥐어 짜내도 제대로 느끼기가 힘든 것은 목조 건축의 치명적 단점인 셈이다.


많은 외침과 일제시대를 거치면서 우리의 문화유산은 어느 하나 성한 것이 없다. 목조 건축의 단점을 보완하기 위해 적극적인 문화유산 복원 작업을 할 필요가 있다. 잘 지켜내지 못한 만큼 다시 세우려는 노력만은 게을리 하지 말아야한다. 이 마저 소홀히 한다면 볼 것 없는 나라라는 오명을 벗지 못할 것이다. 가능한 많은 문화유산을 복원(혹은 중건)하는 것은 관광수지 적자에 대처하는 장기적인 투자다. 미래로 치닫는 세상이지만 한편으로는 과거에 대한 관심도 높아지고 있다. 문화유산은 국가 경쟁력의 중요한 요소로 부상하고 있음을 인식하고 과감한 투자가 절실하다. 폐허마저 흥미로운 볼거리였던 원명원은 2008년 올림픽을 대비한 대대적인 복원 공사가 진행 중이다.


2002 대선 때 민주당과 한나라당은 불교 표심을 잡기 위한 공약으로 황룡사, 미륵사 복원을 똑같이 내세웠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큰절인 미륵사나 세계 최고의 황룡사 9층목탑이 다시 세워지는 것은 황홀한 일이다. 설령 옛날의 그 솜씨만큼은 못하더라도 복원한 것이 훗날에는 또 하나의 문화유산이 될 수 있을 것이다. 분명 대역사일테니 만반의 준비를 한 뒤에 시작해야겠지만 그 날을 고대하고 있다. 고증이 어려워 제대로 된 복원이 힘들다는 고충이 있겠지만 북한의 문화유산 개건(改建)처럼 원형에 대한 강박관념은 조금 덜어낼 필요가 있다.


그런데 현지를 답사해보니 단군릉은 북한에서도 ‘복원(復元)’했다고 말하지 않고 명백히 ‘개건(改建)’했다고 말하고 있다. 이 점은 동명왕릉, 왕건릉도 마찬가지이다. 그러니까 단군릉은 5천 년 전 유적이 아니라 20세기 유적이라는 사실을 분명히 하고 있는 것이다. 마치 남한에서 충남 아산에 만든 현충사가 조선시대의 유적이 아니라 20세기의 기념건축인 것과 같은 맥락에 있은 것이다.
- 유홍준, [나의 북한 문화유산답사기] 상권(1998), 중앙M&B, 143쪽


개건이라는 용어는 원형 그대로를 복원한다는 것보다는 다소 유연한 입장이다. 물론 북한의 개건 사업은 현대에서 재해석이라는 선의보다는 민족주의를 이용한 정권연장의 꿍꿍이가 더 강해 보이기는 하지만 말이다. 북한 정권의 평소 행태로 보아 대규모 개건 사업은 나치 정권이 독일 전역에 거대한 규모의 기념물들을 세운 것과 마찬가지로 이해된다. 하지만 열악한 문화유산에 생명력을 불어넣기 위해 노력한다는 점은 평가할 만 하다. 허나 단군 황조(皇祖)와 동명성왕, 태조 왕건께서는 굶주린 인민들 걱정하시느라 잘 단장된 무덤이지만 편히 쉬시지 못할까 걱정된다.


황량한 황룡사터에서 어깨도 쭈욱 펴고 입술도 질끈 깨물어보자. 잃어버린 역사에 대한 아쉬움보다는 새로 만들어갈 희망을 노래하기 좋은 곳이다. 9층목탑터에서는 흐뭇한 표정도 지어볼 일이다. - [憂弱]
Posted by 익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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