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월 22일 신입생 특강 뒤풀이에 참석했다. 05학번 새내기들과도 처음으로 말을 제법 많이 나눠볼 수 있었다. 내 짧은 기억력 탓에 이름과 얼굴도 거의 잊어먹었지만 05학번과의 만남도 무척 유쾌했다. 물론 늘 반가운 04학번 후배들과의 만남에 더 많은 시간을 할애하기는 했지만 말이다. 새로움이 압도할 때 익숙함을 찾는 것은 인지상정이다.


내색은 안 했지만 고학번 선배를 바라보는 눈빛에서 긴장감이 역력했다. 조금만 대화 나누다 보면 대단치 않고 부담 없는 선배라는 사실이 금방 탄로가 나지만 말이다.^^; 하지만 굳이 처음의 그 어색한 공기마저 마다할 필요는 없을 것 같다. 사람을 처음 만날 때는 원래 어렵고 힘든 것이니까. 사람과 사람 사이의 진입장벽을 넘어서려는 아름다운 노력을 느낄 수 있어 좋았다.


대선배님이라는 칭호를 붙여주는 05학번들과 대화 나누면서 고학번 선배의 대열로 밀려들었음에 대한 서운함이 적잖이 들었다. [어린왕자]에서 어른들은 숫자를 좋아한다는 핀잔이 나오기는 하지만 내게 붙은 02학번이라는 숫자가 세월의 무게를 머금을 정도의 시간이 지나기는 한 모양이다(여담이지만 경영학도라면 숫자에 밝을 필요가 있다).


05학번 새내기들에게 어줍잖은 충고라고 몇 마디 내뱉었던 것을 다시 되새겨보니 얼굴이 화끈거렸다. 이건 충고라기보다는 내가 못한 것을 대신 이루어주기를 바란다는 일종의 주술(?)이 아닐까라는 생각에서였다. 그러나 후배가 이런저런 충고를 잘 취사선택하여 훗날 선배를 능가해 후생가외(後生可畏)를 실감하게 한다면 이 또한 즐거운 일이리라.


아직 술을 마시기 시작한지 얼마 되지 않은 새내기들에게 음주인생(?) 초반에는 제 주량을 감지하기 위해 술잔을 세면서 마실 것을 주문했다. 선배들이 주는 술을 모두 받아먹는 미련함보다는 제 몸을 건사하는 재치를 귀띔하기도 했다. 술을 많이 마셔주는 것을 좋아하면서도, 늦게까지 취하지 않고 남아 있는 것도 좋아하는 선배들의 이율배반적이면서도 변덕스런 마음을 잘 헤아릴 것도 당부했다.


또한 이름이 흔한 새내기에게는 금방 헷갈리기 쉬우니 한번 더 이름을 알리려는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고 말했다. 학기 초반에 있을 각종 행사에서 최소한 동기들이라도 많이 익혀두는 부지런함을 역설했다. 그러면서도 옛친구들과의 유대관계도 이어나가고, 학과 공부도 결코 소홀히 하지 않는 ‘균형감각’이야말로 새내기의 덕목이라며 강조했다.


영특한 후배들이 이런 유의 시시한 내용을 모르지는 않을 것이다. 결국 문제는 실천이다. 나 또한 대학 새내기로서 이 정도쯤은 할 수 있겠거니 하면서도 실천하지 못한 것이 너무 많다. 새내기 시절 못다 이룬 꿈들은 이제 고스란히 빚이 되어 이자만 불리고 있다. 이를 갚아나가는 것은 기품 있는 선배가 되는 것에 있을지 모르겠다. 희망에 설레는 눈망울들을 바라보며 더 가슴 뛰게 살 것을 다짐했다. - [憂弱]


추신 - 술자리 말미에 B반의 아끼는 후배가 A반과 B반 중에 어느 반이 좋냐는 질문을 던졌다. 나는 다 소중한 경영대라며 끝끝내 대답하지 않았다. 후배는 적잖이 실망한 표정이었고, 나는 나대로 무척 당혹스러웠다. 물론 그 자리에서 B반이 당연히 더 좋다며 맞장구를 쳐줄 수 있었으면 좋으련만 그런 말을 할 수 없었다.


술 마시면 평소보다 더 잘 웃는 내 특성상 싫은 기색이 드러나지는 않았지만 솔직히 좀 기분이 언짢았다. 어느 B반보다도 B반에 대한 애착을 가지고 행사 때마다 참여했던 내게 그런 물음은 좀 지나쳤다. 별다른 연락이 없어도 내가 먼저 일정을 확인하고 찾아왔던 것을, 늦은 시간에라도 찾아가서 인사라도 나누려고 했던 나를 몰라주는 것 같아 조금은 섭섭했다.


공식적인 행사 뒤풀이 때야 그나마 알고 찾아갈 수 있지만 각 반별로 소소하게 있는 행사들은 내가 알 길도 없다. 그런 잡다한 모임들에 내가 낄 자리가 없다는 것을 알 때의 기분을 조금 헤아려줄 수는 없었을까? 때때로 내가 가질 수밖에 없는 아웃사이더, 이방인의 감정을 모르지 않을텐데 말이다. 이렇게 볼멘소리를 했지만 그 후배도 좋고, 우리 경영대도 사랑한다.

Posted by 익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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