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구열 선생의 [한국 문화재 수난사](돌베개, 1996)라는 책을 보는 내내 가슴이 쓰렸다. 이 책은 우리 문화재의 훼손에 대한 안타까움을 기록하며 문화재 애호사상의 생활화를 일깨워주고 있다. 흔히들 우리의 문화유산이 볼품 없고 보잘것없다고 말할 때 나는 주로 그렇지 않다고 항변하는 입장이었다. 하지만 국권이 미약하여 우리의 문화유산의 수난을 막지 못했던 것은 두고두고 아쉬운 일이다.


이 책은 일제시대, 한국전쟁, 해방 이후의 수난 등을 중심으로 다루고 있지만 일제시대의 수난에 많은 지면을 할애하고 있다. 일제의 만행이 문화재까지 미쳤다는 것이야 누구나 짐작하겠지만 막상 그 참상을 접하니 슬픔이 밀려왔다. 또한 한국전쟁의 난리통 속에 가까스로 지켜진 박물관 유물들에 대한 이야기와 해방 이후의 수많은 도굴과 도난 사건들도 시리게 다가왔다. 일제의 문화유산에 대한 만행 중 대표적인 것은 다음과 같다.


개성 등지에서 고려고분 파괴와 고려자기 도굴을 크게 조장시킨 원흉인 이토 히로부미에 대한 내용, 경천사 십층석탑, 불국사 사리탑이 일본으로 반출되었다가 가까스로 돌아온 사연들, 석굴암에서 사라진 오층소탑과 감실 부처 2점의 안타까움, 행방불명된 불국사 다보탑의 돌사자 3점, 항일민족사상과 투쟁의식을 유발시키고 있는 민족적인 사적비에 대한 파괴, 보신각종이 일제 병기창으로 끌려가서 녹아 사라질 위기에 처했던 일, 낙랑고분, 가야고분, 신라고분의 처참한 도굴 사례들, 광개토왕릉비 조작, 백제고분을 연구한답시고 부장품을 파낸 악당 가루베의 만행...


하나하나 가슴이 따끔거리는 이 참담함을 잘 나타내준 다음과 같은 기록이 있다. 다음은 총독부 고적조사위원이었던 이미니시의 조사보고에 경북 선산군 옥성면의 처참한 가야고분 도굴현장에 대한 증언의 일부이다.


“이곳의 고분들 중에는 묘광(墓壙)을 그대로 누출시킨 것도 있다. 고분의 봉토가 유실되어 그렇게 광을 노출시키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민중이 거기에 접근하지 않고, 또 침해하지도 않는 순박함이여. 사자(死者)에 대한 예(禮)를 결(缺)하고 있는 현대의 도굴, 파괴, 고인(古人)의 분묘에 능욕을 가하고 있는 현대인(일본인)에 비하면 송연한 바가 있다. 구(舊)조선의 도덕을 보려거든 이 옥성면의 제분(諸墳)을 가 보면 족하리라.”
- 이구열, [한국문화재 수난사](1996), 돌베개, 186쪽


이러한 문화재 약탈 사례들이 좀 더 많은 이들에게 알려지기를 바란다. 누구나 어려웠던 기억을 되돌리는 것은 힘든 일이다. 하지만 이 구차하고 비루했던 우리 역사와 똑똑히 마주함으로써 현재를 다잡고 미래로 나아갈 수 있을 것이다. 우리의 문화유산을 지켜내는 능력이 부족했던 것을 인정하되 앞으로는 소중히 보존하고, 지속적인 보수, 복원하려는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잘 가꾼 문화유산은 세계화 시대에 대비한 주요한 경쟁력으로 자리매김 할 것이다. 더 이상 잃어버릴 ‘우리의 것’도 없지 않는가.


용서하되 잊지는 말자고 했다. 그러나 우리의 모습을 보면 너무 빨리 잊어버리는 것은 아닐까 싶다. 전반적인 문화유산에 대한 인식도 낮고, 우리 역사에 대한 관심도 날로 줄어들고 있다. 이미 수능시험에서 국사가 사회탐구 선택과목의 하나일 뿐이며, 2월 25일 치러지는 행정고시, 외무고시 1차 시험에서 마지막 국사시험이 치러진다. 우리가 스스로 제 나라 역사를 팽개치고 있는 셈이다.


그 사이에 이 작은 나라에 뭐가 그리 뜯어먹을 것이 많은지 여기저기 군침 떨어지는 소리가 들린다. 주한 일본대사는 독도는 자기네 땅이라며 망언을 내뱉고, 중국은 고구려사, 발해사를 제것으로 만들려는 야욕을 하나둘 실현해나가고 있다. 그나마 작은 땅덩어리도 반으로 쪼개져서 서로 총칼을 겨누고 있고, 한쪽은 독재와 굶주림에 신음하고, 한쪽은 그 작은 땅덩어리마저 쪼개서 싸우고 있다. 이 비극적 현실에 좌절하여 자기혐오에 빠지기보다는 스스로 존중하고 아끼는 마음으로 이 난국을 대처할 수 있기를 바란다. 희망은 가난한 자의 빵이니까. - [憂弱]


추신 - 일본에게 빼앗겨서는 안되는 중요한 문화재가 있으면 값을 따지지 않고 사들여 우리 문화재를 수집, 보호한 간송 전형필 선생에게 깊은 경의를 표한다. 훗날 돈을 제법 벌게된다면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에 대한 큰 모범이 되어주셨다. 매년 5월, 10월에 관람 가능하다는 간송 미술관을 꼭 찾아가야겠다.
Posted by 익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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