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작권법을 어기기 싫다

2005. 2. 27. 02:00 |
문화관광부 홈페이지에 있는 ‘네티즌이 알아야 할 저작권 상식’의 문서를 읽어보았다. 50개 항목이 문답식으로 정리되어 있었는데 다 읽고 나니 졸지에 범법자가 된 것 같아 기분이 묘했다. 익구닷컴에서 문제가 되는 것은 여러 칼럼을 수집하는 펀글 전용 게시판이다. 대부분 출처가 신문 칼럼이니 신문사나 칼럼니스트, 기자의 허락을 얻어야 하는 셈이다. 저작권 상식 문서 본문에 “영리를 목적으로 하지 않는 개인 홈페이지에 출처를 표시하고 이용하더라도 허락을 받아야 한다”고 명시되어 있다(코멘트에 올린 첨부자료 참조).


이미 익구닷컴에는 수백 편의 남의 글이 있다. 좋아하는 타인의 글을 멋대로 퍼온 것을 부인할 생각은 없다. 그냥 문서 파일로 나 혼자 보관만 해도 될 것을 이렇게 홈페이지에 게재한 것은 좋은 글은 나눌수록 더 가치가 커진다는 믿음 때문이다. 저작권법은 친고죄로 되어 있어 저작권자가 고소하여야 비로소 책임을 지게 된다. 그렇기 때문에 지금 당장은 범법자가 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언제나 고소될 수 있는 불안정한 상태에 놓여 있는 것도 사실이다. 이 아슬아슬한 상황에도 불구하고 내 생각에 많은 영향을 끼쳤던 글을 기왕이면 가감 없이 게재하여 함께 공유할 수 있도록 할 것이다. 좋은 글을 나눠준 많은 네티즌 덕분에 오늘의 내가 있었기에.


여러 칼럼니스트가 빈곤층에 위한 정책을 논하는 글, 성차별 문제를 고찰하는 글, 병무행정 개혁을 촉구하는 글, 사회 고위층의 불법적 행태를 고발하는 글 등등을 많은 이들과 나누고 싶더라도 이를 퍼가는 사람은 저작권법상 범법자가 될 소지가 크다. 가난하고 힘없는 이들에게 희망이 될 수 있는 글들이 정작 가난하고 힘없는 이들이 널리 읽는 것이 어렵게 되는 어이없는 상황도 충분히 상상해볼 수 있다. 글쓴이는 좀 더 많은 이들이 이 글을 읽고 공감해주기를 바라겠지만 그의 글이 해당 신문사 홈페이지에만 갇혀있게 되는 셈이다. 네티즌들이 맨날 그 사이트 찾아가 확인하고, 퍼가기 위해 일일이 허락 받을 만큼 한가한 사람들은 아니다.


무고한 네티즌들이 줄줄이 범법자가 되는 것을 원치 않는다면 저작권법의 억지 적용에 동감하지 않는 많은 논객들은 자신의 글을 영리적인 목적이 아니라면 자유로이 퍼가서 쓸 수 있다고 공지해주기 바란다. 특히나 좋은 글을 많이 써주시는 분들일수록 더욱더 말이다. 이 글 퍼가도 되겠습니까라는 문의를 해야하는 독자나 괜찮다고 답변하는 글쓴이나 피차간에 피곤할 뿐이다. 이제 글 쓰는 사람은 읽는 이가 자신의 글을 합법적으로 나눠보고 토론할 수 있도록 배려해줘야 하는 우스운 상황이다.


여하간 저작권 보호라는 미명 하에 기본적인 표현의 자유나 커뮤니케이션 권리 등이 침해되는 것은 불만스럽다. 인터넷 문화의 핵심인 문화적 교류의 편리함을 이런 식으로 규제한다면 국가보안법보다 훨씬 광범위하고 일상적으로 작용하는 통제 메커니즘이 될 것이다. 국가보안법을 끝끝내 존속시키고 있는 국회가 이번에는 정보보안법(?)을 만들어내려고 하고 있다. 네티즌들이 한가한 사람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억지스런 족쇄를 가만히 보고 있을 사람도 아니다. 네티즌들은 인터넷을 통해 많이 배웠고 지적으로 성숙해졌다. 우리를 우습게 보지 마시길.^^ - [憂弱]
Posted by 익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