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억울함

잡록 2005. 3. 9. 11:10 |
지난 2004년 2학기 경영대 사물함 추첨 때 사물함이 다소 부족했다. 새 사물함을 대거 들여오기 위해 낙후된 사물함을 일부 철거했기 때문이다. 늘 조금 남는 경영대 사물함이지만 이번만큼은 많은 학우들이 사물함을 못 쓰지 않을까 걱정했으나 다행히 경쟁률은 1.043대 1이었다. 신청 양식을 잘못 기입한 경우도 과감하게 배정 대상에서 제외했지만 그것을 포함해도 1.1대 1도 안 되는 경쟁률이었다.


사물함 배정은 컴퓨터 학과 선배님의 도움으로 만든 추첨 프로그램을 돌리는 것으로 나는 일체 관여하지 않는다. 100% 아웃소싱으로 이래저래 많은 신세를 진 셈이다. 앓던 이가 빠진 심정으로 배정 결과를 공지했다. 그런데 그 후 곤혹스러운 일들의 연속이었다. 엄청나게 낮은 경쟁률이었음에도 떨어졌다는 사람들이 왜 이리 많은 것인지. 게다가 안면이 있는 학우들의 불평을 많이 접했다. 딱히 내 잘못은 아니지만 그들이 느끼는 인간적인 섭섭함 앞에서 참으로 난감했다.


사물함 수리를 철저하게 한 덕분에 예년에 비해 고장 신고가 거의 들어오지 않아서 여분 사물함을 추가로 배정해주는 것이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의 배려였다. 워낙 낮은 경쟁률이다 보니 떨어진 것이 납득하기 힘들었음을 충분히 이해한다. 그래서 내게 쏟아진 볼멘 소리도 기꺼이 받아들일 수 있었다. 그러나 분명 사물함 배정은 당초 공지한대로 랜덤 배정이며, 그 배정마저 내가 한 것이 아니라 외부에 맡겨서 한 것으로 한 점 의혹도 없다.^^;


그런데 그로부터 한참이 지난 2005년 3월에 어느 후배로부터 재미난 이야기를 들었다. 당시에 커플들이 많이 떨어졌다는 루머가 돌았다는 것이다. 2인 1조로 신청할 때 여자와 남자가 함께 신청한 조를 일부러 골라서 배정시키지 않은 것 아니냐는 의혹이었다.^^; 그냥 농담 삼아 하는 이야기였던지라 웃고 지나갔지만 사실 엄청 억울한 일이다. 내가 무슨 억하심정이 있다고 그런 만행(?)을 저질렀겠는가.^^;


하지만 원래 억울함이란 그런 것인지도 모른다. 내 자신에게 치명적인 불명예가 아니라면 그 정도의 오해는 너그러이 품고 갈 일이다. 그런 화풀이를 통해 커플들의 우애가 돈독해지고 사물함 탈락의 아쉬움이 조금이나마 가실 수 있다면 나로서도 반가운 일이다. 내 학생회장 임기가 끝난 지는 제법 시일이 지났지만 내 불찰로 걱정을 끼치거나 내 게으름으로 불편하게 한 점이 적지 않을 것임을 새삼 일깨워주는 고마운 제보(?)였다.^^;


분명 그 사람이 지은 죄 이상의 벌을 내리는 것은 또 하나의 죄를 짓는 것이다. 과도한 벌이 내려지는 경우는 대개 그 사람이 만만한 소수자이거나, 별 볼일 없는 비주류일 경우일 때가 많기 때문이다. 자신이 한 일에 책임을 지는 것이 개인주의의 원칙이라면 보상과 문책이 누구에게나 공정히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나는 “공만큼의 상을, 죄만큼의 벌을!”이라는 구호를 입버릇처럼 되뇐다. 하지만 억울한 일을 당했을 때 설령 내 잘못이 없다고 해도 한바탕 웃고 말일이면 좋게 간직하는 여유도 있어야 할 것이다. 예외 없는 법칙이 어디 있나.


이 에피소드를 듣던 중에 문득 미우라 아야코의 소설 [빙점]에서 주인공 꼬마가 돈을 잃어버린 뒤 “내 돈을 주운 사람은 얼마나 운이 좋을까?”라고 생각하는 장면을 떠올렸다. 무료한 일상 속에서도, 곤고로운 사건을 겪을 때라도 이런 정도의 넉넉함을 갖춘 낙관주의자가 되고 싶다. 설령 진실이 아닌 일에 억울한 일을 겪고, 내가 조금 손해본 것 같을 때 누군가가 이익을 봤다면 그것으로 위안을 삼을 수 있었으면 좋겠다. 별로 대수롭지 않은 일에 인상 쓰고 비감에 젖어 살기에는 시간은 열심히 달리고 있고, 인생은 너무 짧다. - [憂弱]
Posted by 익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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