쿨은 무장해제다

잡록 2005. 3. 10. 18:44 |
나는 ‘쿨(Cool)’이라는 단어를 처음 접하고 무엇인가에 지나치게 얽매이지 않고, 남을 제 뜻대로 강제하지 않는 자유로운 정신으로 좋게 해석했다. 그러던 중에 한 친구의 글에서 “쿨하다=자기중심적이고 타인에 대한 배려가 없다”로 왜곡되어 쓰이는 것 같다며 안타까워하는 것을 읽었다. 친구는 쿨하다는 방패로 남의 가슴에 비수를 꽂는 것은 잘못된 일이라며 통박했다.


다소 개인주의 색채가 짙은 쿨한 자세는 한국적 유대관계와는 사뭇 다른 모습이다. 게다가 개인주의는 자칫 잘못하면 이기주의의 늪에 빠지기도 하니 쿨에서 이기주의의 냄새를 맡고 이물감을 느끼는 것도 이해할 만 하다. 비록 내가 쿨함이 부족한 것 같아 좀 배우려고 노력 중이지만 친구의 우려는 십분 동감한다. 나 또한 매정한 이기주의자가 쿨의 가면을 쓰고 횡행하는 것은 볼썽 사납다.^^


어쩌면 쿨 해야할 때와 쿨 하지 말아야할 때를 분간하는 것이 가장 큰 문제인지도 모르겠다.^^ 이처럼 세상만사는 대개 일장일단(一長一短)라서 나를 늘 곤혹스럽게 한다. 그냥 무조건 좋은 것도 있고, 무조건 나쁜 것도 있어서 좋은 것은 취하고, 나쁜 것은 버리면 편할 것이다. 하지만 조금씩 섞여 있다 보니 차마 속시원하게 버리지 못하고 지나고 나서도 미련을 가지거나 후회를 하게 만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안마다 장단점을 분석하는 노력은 다원주의 사회를 사는 내가 자청한 업보다.


쿨하다는 것이 치열한 자기절제 수준을 넘어 메마른 냉혈한이 된다면 사양한다. 과격한 열정을 줄이는 것을 넘어 다정한 모습까지 버리는 것이라면 원치 않는다. 나와 남을 구속하지 않겠다는 의지를 넘어 소중한 인연마저 경시한다면 부끄러운 일이다. 쓴소리를 할 수 있는 용기를 넘어 날카롭기만 한 독설을 즐기는 것도 경계해야한다. 이런 미묘한 차이를 재고 따지는 것은 그다지 쿨한 모양새는 아닐지 모른다. 하지만 쿨한 백조가 되기 위해서는 수면 아래서는 열심히 발을 저어야하듯이, 쿨도 중용의 체로 걸러내야한다.


쿨하다는 것은 빠르게 변화하는 시대의 각박한 인심이 낳은 궁여지책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잘만 쓰면 개인의 자유를 신장하고, 헛된 집착과 탐욕에서 벗어날 수 있게 해줄 수도 있으리라. 우리가 쿨함에서 배워야할 것은 스스로 절차탁마(切磋琢磨)하는 자세와 인간에 대한 진솔한 애정일 것이다. 즉, 열심히 노력하되 결과에 따른 책임에는 쿨하게 승복하고, 다양한 사람들 속에서 평정심을 잃지 않는 것이 쿨의 미덕이다.


쿨은 내 자신이 상처 받을까봐 꼭꼭 막는 방패나, 남을 배려하지 않고 푹푹 찌를 수 있는 창이 아니다. 진정한 쿨은 열린 마음과 열린 자세로 건설적인 관계를 맺기 위한 무장해제가 되어야 한다. - [憂弱]
Posted by 익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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