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임 학생회장 A/S도 다 끝난 마당에 이제 학생회 일 이야기는 그만 하려고 했다. 허나 대학 3년 간 내가 유일하게 했던 학업 외 활동이 이 것뿐이니 어쩔 수 없는 모양이다. 대학시절 동안 다양한 경험을 해봤다고 하기에는 그 폭이 너무 좁은 것 같아 아쉽다.ᅮ.ᅮ


37대 경영대 학생회 홈페이지를 폐쇄하기 전에 게시판을 한번 둘러보던 중에 비상학생총회를 홍보하는 글을 읽다가 피식 웃었다. 당시 비상학생총회를 바라보는 내 견해가 그대로 드러난 글이었다. 이것은 홍보문이라기보다는 세부적 의견 차에 너무 얽매이지 말고, 절대 강제하지 않으며, 잠깐의 자발적인 참여로 권익을 향상하자는 나의 생각을 써놓은 논설문이었다.^^;


4월 8일 비상학생총회
오후 1시 중앙광장에서 만나요~

비상학생총회는 총학생회 회칙에 의거해 고대생 전체 재적인원의 1/10 이상의 참석으로 개의할 수 있습니다. 이번 비상학생총회는 등록금 인상 반대, 신자유주의 교육 재편 반대, 탄핵 반대, 국회해산의 기치 아래 진행됩니다.

2000명 이상의 학우가 모여야 개의되기 때문에 여러분들의 참여가 절실합니다. 설령 세부적인 구호에 동감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런 차이와 이견에도 불구하고 함께 모여 우리의 뜻을 전달한다면 학교측에서도 좀 더 우리들의 요구를 수렴하는데 노력을 기울일 것입니다.

바쁜 걸음 잠시 멈추시고 잠시라도 들러주시기 간곡히 호소합니다. 학생사회의 행사는 절대 강제란 있을 수 없습니다. 하지만 잠깐의 자발적인 참여가 보다 많은 우리들의 권익 향상에 도움이 될 수 있을 것입니다. 아무쪼록 많은 참여 부탁드립니다.



비상학생총회는 긴급을 요하는 사항이 있을 경우 소집하는 것으로 재적인원 1/10 이상 출석으로 개의하고, 출석인원 과반수 찬성으로 의결한다. 재적인원 과반수 출석으로 개의하는 학생총회 성사가 사실상 불가능하기 때문에 현실적으로 가장 높은 의사결정행위라고 할 수 있다. 여담이지만 학생총회를 소집할 만큼 난리가 났다면 재적인원 과반수 출석하고 자시고 할 여유가 있지도 않을 것 같다. 이런 불가능한 규정이 악세사리로 들어있는 것 같아 마뜩지 않다. 그리스 폴리스 시절에 있었다던 직접민주주의에 대한 향수인가?


여하간 이런 비상학생총회가 2002년부터 3년 간 열렸다. 누가 보면 학교가 늘 긴급상황이 발생한 것으로 오해할 일이다. 3년 동안 지켜본 많은 학우들이 연례행사냐며 볼멘 소리가 가득했다. 2005년에도 비상학생총회를 계획하는 모양인데 언제 한번 정족수 미달로 회의가 무산되어 봐야 정신을 차릴 모양이다. 총학생회 선거 투표율 50%를 넘겨야 한다며 편법 연장선거를 자행하는 이들이 총투표니 비상학생총회니 하면서 학우들을 동원하려는 광경이 또 반복되는 것 같아 아쉽다. 피차 번거로운 행사는 최대한 줄이는 것이 학우들에 대한 예의일 것이다.


이렇게 매섭게 쏘아붙였지만 사실 나는 2002년 비상학생총회 준비를 거들었고, 2003년에도 참석했다. 2004년에는 학생회장 신분인지라 참석을 독려해야 하는 처지에까지 놓였다. 비상학생총회의 취지에 공감하지 않는 일부 반대표들의 항의가 곤혹스러웠고, 비상학생총회를 달갑지 않게 생각하는 나의 심중을 읽힌 탓인지 저조한 참석률에 애먹었다. 시간대도 최악이었고, 깔끔하게 불참한 단과대학도 있었지만 나는 적은 수나마 머릿수를 보태는 것으로 만족했다.


핑계라면 핑계지만 오래 전부터 비상학생총회 개최는 자연스런 지상과제였고, 별다른 이의제기도 없이 통과된 것이라 나는 별다른 문제의식을 제기해보지도 못했다. 나의 책임방기지만 어차피 막지 못할 일에 태클만 걸면 가뜩이나 안 좋은 경영대 이미지가 더 나빠질까 봐 몸을 사렸다.^^; 사실 나는 1년 간의 중앙운영위원회(단과대/동아리 대표자들의 정기적 회의) 대부분을 고독한 소수파에다 깐죽거리는 성격파탄자가 되어야 했으니 가끔은 그냥 넘어가기도 해야하지 않겠는가.^^;


학생회 조직이 과거와는 많이 달라졌다고 하지만 학우들의 무관심의 벽은 더 높아가고 있다(여기서 학생회 조직은 주로 학생운동 진영이 꾸리는 학생회 살림을 말한다. 비운동권 진영은 일관성과 연속성이 없는 경우가 대부분이라 분석하기 힘들다). 우리네 군대가 좋아졌다고들 하지만 사회는 더욱 더 좋아져서 군이 그 변화를 따라잡지 못해 아직도 말썽인 것처럼 말이다. 학생회가 아무리 변화해도 일반 학우들과의 거리감이 더 벌어지는 것은 비극이다. 이제 학우들은 아무리 선의가 충만한 것이라고 해도 동원이라는 생각이 들면 결연히 반대하고 있다. 자발적인 참여의 부재만을 탓하는 것도 이제는 지겹다.


현재 학생회 조직에 불만을 품는 학우들은 참여를 통한 변화를 꾀하기보다는 대부분 합리적 무시(rational ignorance)를 하고 있다. 합리적 무시는 다수의 대중보다 똘똘 뭉친 소수의 집단이 훨씬 강력한 힘을 발휘하는 현상을 말한다. 어떤 사안에 있어 대개 소수에게 걸린 이해관계가 다수의 것보다는 상대적으로 더 크게 마련이다. 그렇다면 다수의 입장에서는 굳이 논쟁에 참여하는 비용을 지불하기보다는 무시하는 전략을 쓰는 편이 이득이라고 판단하는 것이다. 물론 이러한 귀차니즘을 누적시키기보다는 다소 간의 참여와 논쟁 비용을 지출하는 것이 바람직하겠으나 개개인의 비용 지출에 왈가왈부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외부의 자극이 시원치 않으면 내부의 혁신이라도 있어야 할 것이다. 그러나 현재의 학생회 상층부 의사결정에서 생산성을 기대하는 것은 무리인 것 같다. 너무 많은 일을 하려해서 문제고, 너무 제 생각을 고집해서 문제다. 기성 정치판에서도 익히 보아온 의사진행방해나 결과 불복도 적지 않았다. 고작 3년만을 보고 섣부른 판단을 내리는 것인지는 모르나 내부에서 획기적인 변화가 있을 것 같지는 않다. 전/현직 학생회 일꾼들이 크게 섭섭하게 생각할지는 모르겠으나 결국 학생회 조직의 시대가 저물어 가는 것을 막을 길은 없어 보인다.


비상학생총회 참석을 독려하며 썼던 내 글을 보며 나 또한 매너리즘에 빠져 만만한 후배들을 이런저런 행사에 내몰았던 것은 아닌지 반성한다. 혹여라도 나의 날치기 통과(?)에 실망한 분들께도 깊은 사과말씀 드린다. 한가지 일을 오래 붙잡고 있어도 크게 나아지지 않음을 깨달을 때 내 자신의 초라함이 너무 부끄럽다.


프리챌 커뮤니티는 회원이 마스터 본인만 남아야 폐쇄가 가능한 관계로 1570명의 회원들을 강제탈퇴 시켜 겨우 폐쇄할 수 있었다. 폐쇄를 한 순간 지난 한해 내가 열정을 쏟았던 그 무언가가 이제 말끔히 지워짐을 느꼈다. 내게 아름다운 마음을 보여주신 분들, 모자란 녀석에게 투자해주셨던 모든 분들께 보답하기 위해 좀 더 멋진 녀석이 될 것을 다짐할 뿐이다. 이제 이 말도 그만하고 실천! 실천! 실천! - [憂弱]
Posted by 익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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