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개인을 표현하는 어휘는 무척 다양하게 존재할 것이다. 나란 녀석을 표현하는 수식어구 중에 빠지지 않는 것이 아마도 “소심하다”일 것이다. 그다지 좋은 뜻빛깔(뉘앙스)을 가지고 있는 단어는 아니지만 나는 스스로도 부인할 생각이 없고 비교적 여기저기 말하고 다니는 편이다. (대학 새내기 시절 실용영어 시간에 자신을 표현하는 형용사를 하나 들어보는 시간이 있었는데 나는 주저함이 없이 “timid”를 들었고, 주위 반응은 웃음이 쏟아졌다) 소심하다라는 말에는 대담하지 못하고 겁이 많다는 뜻과, 조심성이 많다는 두 가지 의미가 병존하고 있다. 물론 이 단어가 부정적으로 다가오는 것은 전자의 뜻이 강하기 때문이며, 좋게 해석할 수 있는 후자마저도 오늘날 같은 빠른 흐름의 시대에는 부적절한 것으로 취급당하기 일쑤이다.


실컷 재미나게 이야기하고 돌아서서는 “이 이야기를 좀 더 할 걸, 이건 하지 말 걸...”이라며 한참을 지난 만남의 대화에서의 잘잘못을 따지면서 어찌나 호들갑을 떠는지 모른다. 잡글을 쓸 때도 ‘~이다’, ‘~해야한다’라고 멋지게 내뱉지 못하고 ‘~일지도 모른다’, ‘~이면 좋겠다’라고 구차하게 둘러대고 만다. 게다가 혹시라도 읽는 이가 오해라도 할까봐 괄호 안에 온갖 해명과 부연설명을 늘어놓기도 한다. 이런 글쓰기는 내 글의 가독성과 효율성을 떨어뜨리면서 대중성 확보를 힘들게 하는 주범이기도 하다. 물론 빈틈없는 모습을 보이겠다는 자세는 좋지만 독자를 위한 글쓰기를 하지 못하면 잡글 쓰기는 한낱 자기 위안 삼는 시간 때우기에 불과하다.


관리회계 강의에서 배운 것 중에 불확실성하의 의사결정 부분에서 ‘기대효용기준의 의사결정’이란 것이 있다. 의사결정은 기대이익의 크기나 수익률에 의존하지만 대개 그에 따르는 위험(리스크)를 고려하게 마련이다. 이러한 위험에 대한 반응은 투자자의 성격에 따라 다르게 나타난다. 달리 말해 거래 위험에 따라 거래 규모가 달라진다는 이야기다. 이 식상한 이론에서 나는 당연히 ‘위험회피형 투자자’에 속한다. 결국 아무리 이익의 규모가 크더라도 순이익이 발생할 확률이 적은 투자안은 거부하고, 수익률이 다소 낮아도 순이익을 낼 수 있는 안전한 투자안을 선택하는 것으로 결정할 가능성이 높다.


이러한 소심함이 대체 어디서 나왔을까라는 물음을 던져보면 갖가지 추측들이 쏟아진다. 일단은 나의 개인주의자 기질에서 연유된 것이 아닐까라는 생각을 해본다. 한 개인의 역량은 늘 모자를 수밖에 없고, 할 수 있는 일의 범위는 그리 넓지 않다. 결국 연대를 통한 외연 확장을 위한 노력을 기울이게 되지만, 그것이 여의치 않을 때는 한정된 자원으로 최대한의 성과를 내기 위해 이리저리 머리를 굴릴 수밖에 없다. 이리 재고 저리 재고 하던 습관이 익숙해진 결과라는 설이 매우 그럴 듯 하다.


또한 선후인과의 오류일지도 모르지만, 살면서 이렇다할 우여곡절을 그리 겪어보지 못했다는 점을 들 수 있다. 물론 소심한 성격 덕분에 어떤 커다란 사건을 겪을만한 계기를 사전에 차단할 수 있었다는 점도 있다. 아마도 상호작용의 산물이라고 보는 것이 타당하겠지만, 인생의 쓴맛(?)이란 것을 겪어보지 못했다보니 소심함과 피드백 작용으로 인해 다시 강화되는 주기가 반복된다는 진단이 일면 타당하다. 실상 내가 기억하고 있는 어려웠던 시절이라고 해봤자 초등학교 6학년 때 서울로 전학 온 것 같이 너무나 자잘한 것들에 국한된다. 또한 수시모집 합격으로 인해 수능도 부담감 없이 치른 편인데다, 재수생활 같은 것도 없었으니 초중고 세월이 무난하게 잘 흘러왔다는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소심쟁이에도 여러 종류가 있을 것이다. 나쁘게 말하면 겁이 많고, 좋게 말해 순박한 마음씨를 지닌 소심쟁이에서부터, 사소한 문제에도 따지기 좋아하는 옹졸한 소심쟁이까지 다양하게 포진하고 있다. 나는 비교적 뒤쪽의 소심쟁이에 속하는 편이다. 게으른 성격임에도 불구하고 결벽증이 녹아 있는 나는 논쟁을 일으키고, 손익계산 따지기 좋아하는 편이다. 그래서 쓸데없는 분란을 일으키는 회색분자 취급을 받기도 하고, 이해타산을 따지는 냉혈한으로 비춰지기도 한다. 그러나 앞쪽의 소심쟁이 기질이 때때로 발휘되어 이러한 딴지걸기와 수지분석을 쉽사리 판단 내리지 않는다는 면도 있다. 오히려 소심쟁이들은 어떤 근거가 없이는 함부로 싸움을 일으키지 않는다는 점에서 평화주의자며 남을 배려하는 마음이 많다고 생각된다. 또한 소심쟁이의 필수품이라고 할 수 있는 심사숙고의 미덕도 얼마든지 유용하게 쓰일 수 있다.


예전에는 소심한 내 모습을 몽땅 버리고 싶어서 안달이 났다. 하지만 이제는 좀 더 좋게 보이고 자신도 생기는 것 같다. 뭐 이것도 소심쟁이의 특기인 자기합리화 기제의 발동이라고 볼 수도 있겠지만 말이다.^^; 오며가며 대범함의 경계를 잃어버린 뻔뻔함과, 당당함의 정도를 넘어선 오만함으로 무장한 사람들을 접하면서 소심함도 덕목까지는 안되더라도, 그럭저럭 쓸만한 삶의 양식의 하나로서 충분히 존중받을 가치가 있음을 느끼게 된다. 다만 나의 소심함이 현실논리에 경도되지 않도록 늘 부지런히 감시해야 할 것이다. 힘의 논리에 포획되지 않고 탄탄한 합리성 위에 바탕을 둔 소심함이라면 애써 마다할 필요가 없다. - [憂弱]
Posted by 익구

댓글을 달아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