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글픈 낙산사여!

문화 2005. 4. 7. 03:43 |

5일 산불이 옮겨 붙으면서 화염에 휩싸인 강원도 양양군 낙산사 보타각. (양양=연합뉴스)

강원 양양지역에서 발생한 산불이 끝내 천년고찰 낙산사(洛山寺)를 집어삼켰다. 낙산사는 의상대사가 671년 세운 절로서 우리 역사의 시련과 함께 했다. 고려시대 몽골 침입 때 전소된 뒤, 조선 세조 때 중창했으나 임진왜란과 병자호란 때 다시 불타버렸다. 그 후 겨우 제 모습을 찾았으나 한국전쟁으로 잿더미가 되었다. 1953년에 다시 지어진 낙산사는 결국 다시 시름에 잠겼다.


문득 고등학교 1학년 때 동해안, 설악산 방면으로 수학여행을 갔다가 낙산사를 들른 기억이 났다. 아직도 수학여행 기념사진으로 햇살에 눈이 부신 날 해수관음상(海水觀音像)과 찍은 것이 남아 있다. 그 해수관음보살 주변 석축물들이 검게 그을려 그 우아한 풍모가 빛을 바랬을 것을 생각하니 씁쓸하다. 세상 모든 고통의 목소리를 들어준다는 관세음보살도 눈물 몇 방울 훔치셨을지 모를 일이다.


다행히 화마를 피한 의상대(義湘臺)에서의 추억 한 꼭지도 떠오른다. 의상대에 올라 동해를 굽어보며 무슨 생각을 했는지는 기억이 나지 않는다. 다만 당시 교감 선생님과 시오노 나나미의 [로마인 이야기]에 대한 이야기를 나눈 것이 생각난다. 교감 선생님은 로마사 인물 중에서 누가 마음에 드느냐고 질문하셨고, 나는 패장에 대한 연민 때문이었는지 한니발을 꼽았다. 그 때 교감 선생님은 네게는 키케로가 더 잘 어울린다고 하셨고, 나는 속으로 어차피 정치적 패배자임은 마찬가지라며 호들갑을 떨었다.


보물 제479호인 낙산사 동종이 쇳덩어리가 된 것을 비롯해 아름다운 우리 문화유산이 또 훼손된 것 같아 안타깝다. 막을 수도 있었던 인재로 인해 국가문화재인 보물을 제대로 지켜내지 못한 것이 더욱 가슴이 따갑고 부끄럽다. 문화재청의 의지대로 중요한 전각 터에 대한 발굴조사를 통해 최초 창건 당시 가람 원형을 찾아 복원할 수 있기를 바란다. 소 잃고 고치는 외양간은 전에 것보다 더 튼실하고 보기 좋아야 할 것이다.


주지하다시피 국보, 보물 등 국가지정문화재의 절반 이상이 불교문화재이다. 특히 산 속 사찰의 목조건물에 화재가 발생하면 이번과 같은 끔찍한 비극이 다시 나타나지 마란 법도 없다. 이름만 들어도 알만한 해인사 장경판전, 화엄사 각황전, 부석사 무량수전, 금산사 미륵전, 법주사 팔상전, 불국사 대웅전이 불길에 타 들어가는 모습을 상상만 해도 참혹하다. 아울러 큰 손해를 볼 가능성이 높은 보험사나 값비싼 보험료를 내야하는 사찰 모두가 가입을 꺼려온 사찰 보험제도도 정비해서 활성화시킬 필요가 있다.


동해안 여행에서 빼놓을 수 없는 답사코스가 화마에 소실됨으로써 많은 이들이 그곳에 서렸던 수많은 추억들이 떨어져 나가는 슬픔을 느낄 것이다. 다시 관동팔경 중의 하나로 당당히 뽐낼 그 날을 고대하며 아픈 상처를 다독여보자. - [憂弱]
Posted by 익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