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와 말을 놓고 지내기를 희망하는 삼수생 04학번 후배 몇 명이 있다. 요즘은 확실히 학번이라는 표지(標識)만큼이나 재수, 삼수를 따지는 경향이 크다. 나는 새내기시절 학번이 깡패라는 소리도 적잖이 들었고, 어지간하면 학번으로 위계를 나누는 것이 가장 적절하다고 배우고 느꼈다. 지금도 학번과 나이 사이의 교통 정리(?) 문제에서 어지간하면 학번에 무게중심을 두는 편이다.


이제는 학번만이 절대적인 표지이던 시대가 아니지만 아직도 비교적 학번을 고집하는 나를 보고 보수적이라며 핀잔을 준 친구가 있었다. 그러나 같은 나이끼리는 말을 놓도록 하는 것이 탈권위적이고, 진보적이라고 보지는 않는다. 어차피 학번이 사라진 자리에 생물학적 나이라는 표지가 들어찬 것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호랑이 없는 곳에 여우가 왕인 것과 별반 다르지 않다.^^;


여하간 농으로라도 아직도 말을 놓게 하지 않는다며 지청구를 먹을 때 많이 고심이 된다. 하기야 길게 잡으면 1년 동안이나 확답을 미뤄왔다. 03학번 후배의 경우 이런저런 경우로 말을 놓고 친구처럼 지내는 경우가 있었지만, 04학번의 경우에는 전례가 없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말 놓기를 청원하는 후배는 그저 더욱 돈독한 관계를 맺자는 의도에서 그러는 것이니 나의 튕기기가 궁색한 것은 어쩔 수 없다.


문제를 확장시켜 보니 현재의 잣대로 과거를 째려보는 것, 과거의 잣대로 현재를 구박하는 것에 대해 생각해볼 수 있었다. 예전에는 과거의 잣대로 현재를 마름질하는 것에 대한 반발만이 가득했다. 그러나 요즘은 부쩍 현재의 잣대로 과거를 난도질하는 것의 부박함이 만만치 않음을 느끼고 있다. 오늘의 가치관에 매몰되지 않고 어제의 생각묶음과 살림살이를 존중하는 것은 참 힘든 일이다.


변법자강운동으로 유명한 청나라 말기 학자 캉유웨이는 저서 <대동서> 중 '부모자녀문(門)'이라는 글에서 모든 인간이 정신의 윤회에 의해 다시 태어나는 이상 나이 차이란 우연에 불과한 것이라고 말한다. 따라서 연소자가 연장자에게 대해서 특별히 예의를 갖출 필요가 없다고 주장한다(박노자, 허동현, [우리 역사의 최전선](2003), 푸른역사, 102쪽 참조). 그의 이런 문제제기는 경청할 만 하지만 "차마" 받아들일 수는 없다. 대개의 경우 "차마"할 수 없는 일은 거의 완전히 할 수 없음과 동의어다.


조선 말기 단발령을 내려지자 개화파 유길준은 유림의 거두 최익현에게 단발을 촉구하면서 "어찌 한줌의 머리털을 그리도 아끼십니까?"라며 힐난한다. 최익현은 개혁에는 본말과 경중이 있다면서 "부강(富强)으로 병립할 수 있다는 것만을 알고 강상(綱常)이 이미 추락하고 상하가 무서(無序)하여 만사불성(萬事不成)인 것을 알지 못하고 있다"며 질책한다(김삼웅, [왜곡과 진실의 역사](1999), 동방미디어, 230~237쪽 참조). 앞사람이 보기에 뒷사람은 늘 예의 없어 보이기 마련이니, 학번의 벽이 허물어지는 것이 강상이 무너져 내리는 일이라 생각지는 않는다. 다만 학번중심주의(?)가 마냥 고루한 것은 아니라고 항변하고 싶다.


꼬리를 무는 생각 끝에 나름의 결론을 내렸다. 말을 놓는 것은 허용하되 선배라는 호칭만은 붙여줄 것을 제안할 생각이다. 예를 들자면 "익구 선배, 술 한 잔 해야지?"쯤 될 것이다. 어차피 대화 중에 내 이름을 부를 일은 거의 없으니 사실상 말을 놓는 것과 진배없다. 내가 끝내 "익구야~"를 마다하는 까닭은 내 02학번 동기들에 대한 경애의 표현이며, 선배님들에 대한 흠모의 산물이다. 또한 이 학교에 조금이나마 먼저 울고 웃은 내 자신에 대한 존경이기도 하다.


나의 타협안(?)이 어떻게 받아들여질지 잘 모르겠다. 혹시나 구태의연함을 고집하는 우매한 녀석으로 치부될까 두렵다. 호방하게 우리 이제 말 놓고 친구처럼 지내자고 하지 못하는 나의 졸렬함만 더욱 드러날까 저어된다. 하지만 나는 인덕을 보인답시고 넉넉한 척 헤프게 대한다거나, 위엄을 갖춘답시고 같잖은 유세를 부린다거나 할 생각이 전혀 없다. 그저 내 깜냥대로 최선을 다하면서 교류를 나눌 따름이다. 끝으로 나 같이 못난 놈에게 보여준 04학번 후배의 도타운 우애가 가슴 깊이 고맙다. - [憂弱]
Posted by 익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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