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19 혁명 45주년을 기념해 학교에서 올해도 어김없이 4.18 구국대장정이 열렸다. 본래는 오전에 학교에 가서 후배들이나 보고 학교에서 책이나 볼 생각이었다. 하지만 갑자기 4.19 국립묘지를 차분히 둘러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 개인적으로 찾아가 보기로 했다. 그런데 새로 장만한 컴퓨터 앞에서 한창 고민하고 있는 연호(年號)와 관련된 잡글을 쓰느라 시간 가는 줄 몰라서 너무 늦게 출발하고 말았다.


부랴부랴 수유역으로 달려갔는데 막상 전철에 있는 안내지도에는 4.19 묘역을 찾을 수가 없었다. 당연히 있을 줄 알고 자세히 알아보지도 않았는데 참 난감했다. 약간 헤맸지만 다행히도 길을 제대로 찾아서 무탈하게 찾아갈 수 있었다. 좌우로 태극기가 걸린 길을 따라 걷는데 제법 걷는 것이 미니 4.18을 하는 기분이 나서 괜찮았다.^^ 제법 걸어야 하는 거리라 안내지도에는 나타나지 않은 것이었다. 교통표지판을 따라 가면 크게 찾기 어렵지 않아서 다행이었다.


늑장을 부린 터라 이미 고대생들은 이미 도착해서 참배가 한창 진행 중이었다. 올해는 경영대가 끝에서 두 번째 순서라 참배를 마냥 기다리고 있었다. 작년에 경영대가 맨 앞에서 간 것 때문에 이번에는 뽑기 운이 좋지 않았던 모양이다. 참배도 하고 싶었으나 아직도 참배가 한참 진행 중인데 경영대 순서까지 기다리기보다는 당초 계획대로 혼자 둘러보기로 했다.


4.19혁명 기념관을 가장 먼저 둘러봤으나 고대생들로 붐벼 제대로 보기는 힘들었다. 늘 느끼는 것이지만 영상자료와 밀랍인형 전시를 빼고 특별한 유물 같은 것은 없는 터라 크게 흥미를 끌지는 못하는 것 같다. 4.19 혁명을 소재로 한 시비들을 하나하나 읽어보기도 하고, 기념사진들도 주욱 돌아봤다. 비록 문은 닫혀 있었지만 4·19혁명 희생자의 위패를 모시고 있는 유영봉안소에 올라가 4.19 희생자 영령에 대한 짧은 묵념을 했다.


그러고는 평소 전통건축에 대한 관심이 발동하여 건물을 살펴보고 말았다.^^; 정면 7칸, 측면 3칸의 제법 큰 규모에 팔작지붕을 한 건물이었다. 전통 제례 건물의 대표주자인 종묘 정전의 단아한 맞배지붕과는 사뭇 다른 느낌이었다. 단청도 종묘 정전은 가칠단청(선이나 문양 등을 전혀 그리지 않고 바탕칠만 칠한 단청)인 반면, 유영봉안소는 그 다음 단계로 약간 문양을 넣는 긋기단청이었다. 또한 현대에 지은 건물이라서 그런지 암막새와 수막새 모두 무궁화 문양이 독특했다. 유영봉안소 오르는 길에 소맷돌(돌계단의 난간)과 답도(踏道)는 솔직히 말해 너무 성의 없이 만든 것 같이 정감이 가지 않았다. 또한 입구 쪽에 문인석 한 쌍까지는 좋았으나 기왕 옛 흉내를 내려면 무인석 한 쌍도 있었으면 좋았을 것이라는 생각을 했다.


올해도 고대타임(?) 사태 때문에 시간이 지체되어 개방시간인 6시를 넘겨서도 참배가 한참 진행되었다. 방송으로 개방시간이 6시까지임을 알리는 방송이 끊임없이 나오는 것이 듣기 거슬렸다. 열댓 번은 방송이 나온 것 같은데 어차피 강제로 쫓아낼 것이 아니라면 한두 번의 협조 요청 방송만 했으면 좋았을 것이다. 기왕이면 4월 18일, 19일 이틀 정도는 개방시간을 늘리는 것도 검토해 볼만하다. 물론 그렇다고 늦게까지 남아서 민폐를 끼친 고대생들이 잘했다는 것도 아니다. 어쨌든 개방시간에 맞게 서둘러 출발하는 노력을 좀 더 기울여야 할 것이다. 애꿎은 공익근무요원들의 퇴근 시간만 늦추는 것도 미안한 일이다.


4.18 고대생 의거는 고대인의 자랑이다. 하지만 4.18이 있어서 4.19가 있었느니 하는 거창한 의미 부여는 자제해야겠다. 초동을 끊었다는 것은 자랑스럽지만, 4.18이 없었어도 4.19는 분명 어떤 식으로든 표출되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몇 십년전 "대한민국에서 민주주의가 발전하는 것은 쓰레기통에서 장미꽃이 피기를 바라는 것과 같다"는 영국 언론의 비아냥은 분명 옛날 이야기가 되었다. 어쨌거나 쓰레기통에 장미꽃을 피우기는 했는데... 이제 그 꽃을 꽃병에 예쁘게 꽂는 노력이 필요하지 않을까? 쓰레기통에만 있으면 꽃내음이 쓰레기통의 악취에 묻혀버릴 것이 아닌가(이 문단은 내가 예전에 썼던 글을 다시 끌어다 쓴 것이다)?^^


후배들을 만나 조형물 "정의의 불꽃"에서 기념사진을 간단하게 찍고 4.19 묘역을 나오며 혁명이라는 것에 대한 상념에 잠겼다. 혁명이라는 것은 저수지에 물이 차서 저절로 넘치는 것처럼 자연스레 일어나는 수밖에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유시민의 표현을 빌리자면 "가슴속에 가득 고여 절로 흘러 넘쳐 나오는" 혁명만이 오롯이 생명력을 유지할 것이다. 어떠한 혁명도 억지로 쥐어 짜내서 성사시킬 수 없다.


이제 적어도 독재를 걱정하지 않을 만큼 우리 사회가 성숙해졌다. 4.19 기록사진 같이 초/중/고등 학생들이 거리로 나설 일은 어지간해서 없을 것이다. 앞으로는 민주와 반민주의 사생결단이 아니라 서로 다른 가치 사이의 치열한 논쟁이 전개될 것이다. 암울했던 시절에 부득이 극단적이고 편향적인 사고를 했던 것이 어느 정도 용납이 되었을지 모르나 이제는 더 이상 통하지 않는다. 다원주의 사회에서는 숙고된 균형감각만이 요구될 뿐이다.


문득 이탈리아의 경제학자, 사회학자인 파레토가 했던 "엘리트의 자격이나 요건은 변하지만 엘리트가 사회를 이끈다는 사실은 바뀌지 않는다"라는 말이 떠올랐다. 4.19 혁명에서 알 수 있듯이 혁명의 과실은 소수가 따먹기 일쑤라는 생각이 들어서 그런 것인지 알 수 없다. 의회 민주주의와 전문가정신(professionalism)으로 무장한 엘리트주의를 지향하는 녀석으로서 혁명에 대해 궁리하는 것이 마냥 즐겁지만은 않았다. 끝으로 이 날 4.18과 4.19의 의미를 곱씹었던 많은 고대 학우들에게 경의를 표한다.^^ - [憂弱]



배운대로 바른대로 노한 그대로
물결치는 대열을 누가 막으랴
주권을 차지한 그대들이여
영원히 영원히 소리칠 태양
- 송욱, [소리치는 태양] 中

Posted by 익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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