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C드라마 [5공화국]을 보는 내내 속이 메스꺼웠다. 12.12 사태 당시 탐욕스런 고깃덩어리들이 헌정을 유린하는 모습을 보는 것은 당대를 살지 않은 내게도 무척이나 고역이었다. 대세가 전두환 일당들에게 기울어 갈 때도 마지막 순간까지 타협하지 않은 몇 안 되는 군인들을 보는 것도 서글펐다. 구차하게 제 안위를 챙기느라 갈팡질팡했던 대다수 인물들을 보며 한없이 씁쓸했다.


특히 직속상관인 정병주 특전사령관을 체포하는 최세창 3공수여단장을 보며 권력의 비정함을 새삼 실감했다. 정 특전사령관을 마지막까지 보호하려한 특전사령관 비서실장 김오랑 소령이 절친한 친구인 3공수여단 예하 15대대장인 박종규 중령에게 살해당한 것도 기가 막혔다. 직속상관을 체포하고, 친구를 사살하는 역겨운 순간을 보다 보니 평소 욕지기를 거의 하지 않는 나도 이따금 몇 마디 내뱉고 말았다.


또한 반란을 막기 위해 동분서주하면서 시청자들의 눈길을 사로잡았던 장태완 수도경비사령관도 인상적이었다. 여기저기 눈치보기와 배신이 벌어지고 있을 때 가장 적극적으로 진압군을 지휘했던 그야말로 진정한 군인의 사표였다. 쿠데타가 거의 성공할 때도 자신의 휘하 병력 100여명을 이끌고 진압 작전에 나섰다고 하니 그 용기가 존경스러울 따름이다.


89년 의문의 변사체로 발견된 정병주 특전사령관과는 달리 장태완 장군은 비록 강제 예편에 가택연금을 당하기도 하고 아버지와 아들이 세상을 떠나는 아픔을 겪지만, 반역도당들이 역사의 심판을 받으며 뒤늦게나마 명예회복을 했다. 재향군인회장과 새천년민주당 국회의원을 역임한 것이 지난날의 비운을 보상하기에는 턱없이 부족하겠지만 말이다.


하지만 이러한 그가 2002년 대선 때 장 장군은 후보단일화협의회에 참여하면서 전국구 의원직을 유지하기 위해 스스로 탈당하지 않고 당에 제명을 요구하는 추태를 부렸다. 그 참담한 반역의 순간에도 민주주의를 위한 지조를 지켰던 그가 국민과 함께 뽑은 대통령 후보를 흔드는 일에 동참한 것은 그의 빛나는 지난날을 배반하는 처사다. 물론 후단협 가입과 탈퇴를 반복하며 적극적으로 참여하지는 않은 것 같지만 말이다.


지난 대통령 탄핵발의안에 서명한 의원 명단에서 그의 이름을 발견했을 때 다시금 침통했다. 탄핵소추안 가결 당시 행인지 불행인지 미국에 체류하는 바람에 표결에 불참했기 망정이지 표결에 참석했다면 노장군의 영예에 또 한번 먹칠을 하고 말았을 것이다. 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해 목숨을 바쳤던 이가 어쩌다가 현실 정치에서 이런 꼴을 보이고 물러났는지 가슴이 아프다.


살아있는 사람을 존경하는 일은 이만큼 힘들고 어려운 일이다. 과거는 미화되기 싶지만 지금 현재를 살아가는 이의 잘잘못을 논하는 것은 대개 편이 갈리고 다툼이 있기 때문이다. 불완전한 인간이 살아가며 실수를 저지르게 마련이며 개인적 한계를 나타내기도 한다. 장태완 장군에 대한 애증이 교차하지만 반역의 회오리에서 중심을 지킨 몇 안 되는 인물이라는 점에서 사모의 정을 표하는 것으로 내 예우를 다할까 한다.


나는 앞으로도 제2, 제3의 장태완을 만날지도 모른다. 이 경우 그 사람을 어떻게 평가해야할지 무척 곤혹스러울 것이다. 그럴 때면 유시민 선생의 다음과 같은 말을 되새기며 시름에 잠길 것 같다. - [憂弱]


어느 하나의 문제에 대한 다른 사람의 견해를 비판하시는 것은 얼마든지 좋습니다. 그러나 그 문제에 대한 그의 견해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해서 인간적인 배신감을 느끼지는 마십시오. 그 사람의 사상과 삶의 궤적 전체를 비난의 대상으로 삼는 일도 삼가주십시오. 세상은 완전히 희거나 검은 사람만 사는 곳이 아니며 타고난 악당과 성인군자가 싸우는 무대도 아닙니다. 세상은 불완전한 인식능력을 지닌 불완전한 인간들이 숱한 고뇌와 번민 속에 서로 다투면서, 그리고 저마다 실수와 잘못을 저지르고 그것을 바로잡아 가면서 살아가는 곳이라고 저는 믿습니다.
- 유시민. "마지막 당부... 다시한번 기회를..." 한국경제신문. 2000. 05. 29
Posted by 익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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