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대학교 총학생회 탄핵발의안이 전체학생대표자회의(이하 전학대회)에서 찬성 13표, 반대 39표, 기권 2표로 부결되었다. 전학대회 재적인원 66명의 3분의 2 이상이 찬성해야 총회 또는 총투표 안건으로 상정하게 되는데 그 전 단계에서 자초된 것이다. 이미 충분히 예견된 결과였고, 총투표 찬성의견을 밝힌 대의원들 상당수가 5월 2일 시위가 정당하다고 생각하지만 탄핵 총투표를 통한 재신임을 원한 것이었다고 한다.


일련의 사건들을 놓고 학내 여론을 극심하게 대립한 것에 비하면 학생 대표자들의 회의에서는 상당히 일방적인 결론이 난 셈이다. 전학대회 참석 대의원 54명 중 십 수명이 5월 2일 시위 참여 대의원이라고 하니 중이 제 머리 못 깎는다는 조소가 나올 법하다. 시위 참여 대의원들만 반대해도 어차피 통과시키지 못할 참으로 싱거운 싸움이었다. 그러나 탄핵발의안은 그 자체로 의미심장했고, 달걀로 바위치기를 하며 마음고생이 심했을 평화고대 여러분들께도 깊은 고마움을 표한다.


이제 한바탕 소란은 정리되었다. 마땅히 승복하고 갈등을 마무리해야함에도 불구하고 그게 쉽지는 않을 것 같다. 이번 일이 학생 대표자들에게 경각심을 일깨워줬기를 바랄 따름이다. 이번 일은 그간 학생회 살림을 주도적으로 꾸려왔던 학생운동 세력 전반에 대한 엄중한 경고이기 때문이다. 여전히 나는 아무 잘못도 없는데 몰상식한 자들이 자신들을 음해했다고 생각한다면 얼마나 부끄러운 일인가. 여하간 이제 우리 고대에 평화가 좀 찾아오길 바란다. 그간 불필요하게 서로 너무 얼굴을 붉혔다.


이번 사건의 핵심적인 논란 중의 하나는 학생 대표자의 정파성 문제다. 일반 학우들은 학생 대표자 개개인의 정치적 의사 표현 자체를 나무라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학생 대표자들의 언동 하나하나는 비단 일개인에 국한되는 것이 아니라 소속된 학생 전체의 의사를 대변하는 것으로 오해되기 십상이다. 적어도 학생회는 정치적 결사체가 아니다. 원하는 정치적 의사표시는 별도의 정치적 조직을 통해 하면 충분하다. 필요할 때는 학우들의 대표자라는 위세를 빌리고, 여의치 않을 때는 개인의 자유라며 빠지는 것은 온당치 못하다.


이번 이건희 학위수여식 사건은 정의와 불의의 문제가 아니었다. 일부 학생들의 시위에 부정적인 여론을 재벌권력의 하수인쯤으로 취급하려는 태도가 더욱 반발을 재생산하고 있지 않은가 우려스럽다. 이런 반대 여론을 삼성의 부정적 측면은 죄다 외면하는 놈들로 구획 지으려는 시도도 이제 그만했으면 한다. 자신만이 정의라고 착각하기는 쉬운 일이나, 세상은 그렇게 단순하지 못해서 두부 썰 듯이 쉽게 두 동강나지는 않는다. 자신들이 하는 일을 옳다고 믿는 것은 좋으나 폐쇄적 자세로 일관한다면 허구한 날 민주주의를 외쳐도 비민주적인 조직이라는 비판이 따가울 것이다.


학생회 일꾼들의 땀과 눈물을 모르는 바는 아니나 종종 벌어지는 이런 행동은 그간의 공적을 야금야금 갈아먹는다. 여러분들이 직접 뽑은 사람에 대한 부당한 비난을 거두라고 다그치기 전에, 믿고 뽑아준 사람들의 상심을 헤아리는 여유를 보여주기 바란다. "고대 정신"이라는 것이 있다면 그것은 그 누구의 것도 아닌 우리 모두 것이 되어야 한다. 자유, 정의, 진리를 독점하려는 욕심을 버리자. - [憂弱]
Posted by 익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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