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히들 대학에서의 인간관계는 참 쉽지 않다고 푸념을 늘어놓는다. 대학 새내기에서부터 졸업반에 이르기까지 사람 사이에 대한 어려움을 털어놓기 일쑤다. 서로간에 솔직하지 못하다며, 너무 신경을 써야 한다며, 이해타산을 따져야 한다는 등으로 투덜거린다. 그러나 대학에서의 인간관계는 중등학교 이전의 인간관계와 당연히 달라야 한다. 다양한 사람과 갖가지 생각이 부딪치는 데 쉬울 리가 없다. 훨씬 힘들어야 자연스럽다. 거저먹는 인간관계는 없다.


이미 소원해져버린 관계를 애써 외면하고 바빠서 잘 못 만나고 있다고 위안한다. 변변히 교류 나누지도 못하면서 언제 시간이 되면 괜찮은 관계가 될 수 있다고 희망한다. 그러나 세월이 사람을 기다리지 않듯이, 사람도 사람을 기다리지 않는다. 굳이 기다리는 경우는 이미 절친한 관계가 되어 인연의 끈이 매우 질긴 이후의 일이다. 끈을 놓는 것이 더 가슴 아릴 때야 그리운 마음이 싹튼다. 그렇지도 않는데 멀어졌다며 불평하고, 나중에 다시 끈끈해질 거라며 손놓고 있어봤자 백년하청이다.


나는 사람 사이의 관계에서 인연을 꽤 믿는 편이다. 하고많은 사람 중에 이 공간, 이 시간을 공유하는 주변 사람들은 꽤 각별한 연분이라고 본다. 사실 사람과의 만남은 랜덤하고 우연하게 배정되는 것인데도 불구하고 그 우연성을 필연으로 착각하게 만드는 노력은 참 숭고하다. 인연이란 "아무리 애가 타도 앞당겨 끄집어 올 수 없고, 아무리 서둘러서 다른 데로 가려 해도 달아날 수 없(최명희의 [혼불] 中)"는 그 무엇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불가항력이라며 될 대로 되라고 나 몰라라 하는 것이 아닐 것이다. 인위적으로 맺어보겠다고 억지로 떼쓰지 말라는 뜻이지 내 참마음을 내어 보이는 용기까지 버리라는 뜻은 아니다. 또한 나는 이 사람에게서 멀어졌는데, 그 사람은 여전히 나를 좋아 해주기 바라지 않는 신실함이다. 도덕경 48장의 "아무 것도 (억지로) 하지 않으나 이루지 않는 것이 없다(無爲而無不爲)"란 구절을 곱씹어본다. 소중한 인연은 억지 춘향이가 아니다.


앨빈 토플러는 [미래의 충격]에서 영속성보다는 일시성이 두드러진 미래사회의 인간관계는 한 사람과 총체적인 관련을 맺기보다는 그 사람의 한 부분에만 관련을 맺게 될 것이라고 말한다. "이제는 만나지도 않고 이해도 달리하는 친구들 대신에, 새로운 친구들을 탐색하는 사회적 발견의 냉혹한 과정"을 통해 효용가치가 없는 옛친구들은 빨리 버리거나 잊고 살림살이에 보탬이 될만한 새 친구를 찾아야한다는 그의 주장이 날카롭다(앨빈 토플러 著 장을병 譯. [미래의 충격](1986). 범우사. 88~108쪽 참조).


법정 스님의 말씀을 기대하며 찾아왔다가 외면당한 사람의 볼멘 소리를 들은 스님은 허허 웃으며 "때로는 인정이 없어야 하는 게 수행자다. 만나자는 사람 다 만나주면 내 공부는 언제 하라는 말이냐"고 대꾸했다고 한다(이형삼. "法頂이 있어 맑고 향기롭게 산다." 신동아. 1999년 12월호 기사 참조). 스님은 "인정이 많으면 도심(道心)이 성글다는 옛 선사들의 말을 빌릴 것도 없이, 집착은 우리를 부자유하게 만든다(법정. [무소유](3판, 2001). 범우사. 75쪽)"고 말한다.


토플러의 탁견이나 법정 스님의 일화에서 내 자신을 가꾸기 위해 애써야함을 깨달았다. 스치듯이 지나가는 숱한 관계에서 내가 좀 더 오래 실존할 수 있으려면 내 밑천이 두둑해야한다. 조금 사귀고 나니 별 볼일 없이 깡통 소리만 낸다면 나라도 마음이 떠날 것이기 때문이다. 어느 정도의 사교적 몸부림이야 필요하겠지만 보다 근본적으로 나란 녀석과 진지한 유쾌함을 나눌 수 있게 만드는 역량을 키워야 한다. 관계를 맺고 교류를 나누는 자체에만 정신이 팔려 스스로 공부를 등한시하면 사랑과 우정의 샘물도 이내 마르고 만다.


명심보감 성심편에 "有麝自然香 何必當風立(사향을 지녔으면 저절로 향기로운데 어찌 바람을 맞아 서 있을 필요가 있겠는가?)"란 구절이 있다. 내가 뿜어내는 향기가 은은하다면 자연스레 나란 녀석과 관계 맺을 유인이 생길 것이다. 내가 풍기는 자유와 사색의 내음, 배움과 인덕의 내음으로 벗을 구해보자. 나는 불콰하게 술에 익은 얼굴로 터놓고 가까워지거나 말쑥한 첫인상의 아찔함으로 유혹하는 재주는 없다. 조금 시간이 지나야 드러나는... 세월에 바래지 않는 나만의 멋을 아껴주는 고마운 사람을 찾을 따름이다.


내 인연들이 久而敬之(논어 제5편 공야장 中)할 수 있기를 꿈꾼다. "오래되어도 여전히 공경한다"라고 해석하면 친해지더라도 존경심을 잃지 않고 범속에 빠지지 않는다는 뜻이다. 시간이 흘렀다고 무심해지지도 않고, 세월이 지났다고 차갑게 식지 않는 그런 존재 말이다. "오래 사귈수록 공경하게 된다"라고 해석하면 오래 사귀어도 그 사람의 약점이 드러나기보다는 강점이 더욱 커진다는 뜻이다. 아니 어쩌면 그 약점과 한계마저 품을 수 있을 만큼 그릇이 커진다는 뜻인지도 모르겠다. 세월로 빚어내는 久而敬之, 가장 아름다운 인연이 아닐까. - [憂弱]
Posted by 익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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