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온을 되찾다

잡록 2005. 7. 21. 00:18 |
군복무 시작을 전후해 요 몇 주간 불안정한 생활을 보내다가 이제야 좀 평온을 되찾았다. 아직 요원 생활이 몸에 익지 않아서 그런지 일과시간이 마치고 나면 피로한 기운에 저녁 시간을 제대로 보내고 있지 못하고 있지만 차차 나아질 것이다. 요원 생활 동안 허송세월을 하지 않으려면 저녁 시간을 잘 활용해야 한다지만 그게 마음만큼 쉽지는 않을 것 같다. 그래도 훈련소에서 걸렸던 지독한 감기도 이제 다 나았고, 짧았던 머리도 제법 자라서 답답했던 모자도 벗어버렸다. 그간 초췌했던 모습은 윤기가 흐르는 여유로 바뀌고 있다. 자정도 되기 전에 졸리는 현상만 극복하면 훈련소 이전의 생활방식을 거진 회복할 수 있을 것이다. 출근길에 공짜신문 3종을 탐독하다가 앞으로 덤으로 얻은 시간을 알차게 보내 얻은 성과물은 나만을 위해서 쓰지 말기를 다짐했다.


마냥 귀엽고 잘해주고 싶은 남자 후배들의 대부분이 군대 문제로 씨름해야 하는 광경을 보는 것은 늘 따갑다. 한 두 사람 보내본 것도 아니고 이제 좀 무덤덤해질 때도 됐는데 떠나보내는 마음은 늘 섭섭하고 아쉽다. 복거일 선생의 말대로 징병제는 자유민주주의와 자본주의를 구성 원리로 삼은 사회에는 맞지 않는 제도다. 가뜩이나 사병들에 대한 복지가 열악한 실정인데, 모병제 군대로 전환할 때 예상되는 엄청난 비용은 참 고심스런 문제다. 게다가 여전한 북한의 군사적 위협도 우리 사회의 국방색이 탈색되는 것을 막고 있다. 그러나 우리 군대가 적어도 의무복무기간을 대폭 줄이는 쪽으로 나아가기 바란다. 징병제를 실시하는 60여개국 중 우리보다 긴 복무기간을 가진 나라는 북한을 비롯해 5개국 정도에 불과하다고 한다. 탄탄한 동기부여와 전문가정신으로 무장한 정예병이 국가안보에 더 보탬이 된다고 본다면 복무기관 단축에 인색할 이유는 없다.


사는 게 고만고만한 현역병들에 비해 공익근무요원들의 삶은 다채롭다. 어떤 생활은 생각보다 빡세서 고개를 가로젓게 만들고, 어떤 생활은 얄미울 정도로 부럽기도 하다. 사람 욕심은 참 끝도 없어서 구청에 와서 보직을 배정 받는 그 순간까지 가능한 무난한 일이 되기를 손꼽아 기다렸다. 기왕이면 내가 잘할 수 있는 일이 주어지기를 바라는 심정이라고 둘러댔지만 실상 남들이 선망하는 편한 일을 기대했다. 내게 주어진 일이 인연이라 생각하고 즐겁고 재미나게 해나가야겠다. 한결같은 것을 좋아하는 나이지만 2년은 제법 긴 시간이라 날마다 근면성실한 모습을 보이기는 힘들 것이다. 가끔은 태업의 달콤함을 맛볼지 모르겠지만 엄연히 병역의 의무를 수행하는 만큼 나태함에 빠져 희희낙락하지 않을 것을 서약한다. 구청 구내식당에서 맛난 밥을 먹을 때마다 고마움을 품는다면 은인자중(隱忍自重)하면서 소소한 재미도 챙길 수 있으리라. 짜증과 투정보다는 안온한 나날들로 꾸려보자. - [憂弱]
Posted by 익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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