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책임분석의 발견

잡록 2005. 8. 5. 21:30 |
중구청에서 일하게 된 4주는 그리 긴 기간은 아니지만 정이 제법 들었다. 그 결정적 이유 중에 하나가 싸고 맛있는 구청 구내식당에 흠뻑 빠졌기 때문이다. 훈련소 짬밥보다 백만배쯤 다채롭고 맛나는 점심식사를 하다보면 스트레스가 스르르 풀리는 것 같다. 문득 즐거운 점심식사를 하다가 음식을 거의 남기지 않는 나를 발견했다. 가령 반찬에 샐러드가 나올 때 오이를 빼고 담으려고 무던 애를 쓴다. 거의 먹지 않고 버릴 오이를 담지 않기 위해서다. 이런저런 노력을 통해 대부분 잔반이 거의 없었다. 문득 그 이유가 자유배식에 대한 모종의 책임감의 발로가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원하는 만큼 마음껏 덜어갈 수 있는 만큼 음식물쓰레기나마 덜 남기는 것으로 보답하려는 의지가 아니겠냐는 것이다. 훈련소 때 담아주는 음식들을 많이 남긴 것과는 대조적이다. 4주 동안 짬밥을 다 먹은 적이 단 한차례도 없었으니 말이다.


시사주간지 시사저널은 “자유만큼 책임을 생각하는 언론”이라는 사시(社是) 혹은 모토를 내세우고 있다. 2004년 경영대 신입생 오리엔테이션 학생회장 인사 시간에 내가 새내기들에게 했던 첫 번째 당부가 “자유를 만끽하시고 그 결과에 책임을 지시기 바랍니다"였다. 이처럼 “자유에 따른 책임을 지자”고 설파하고 다녔던 나는 무언가 선수를 당한 느낌에 아쉬웠다. 표절인지라 그대로 따오기는 민망하지만 자유와 책임이라는 개념은 공공재적 성격이 강하기 때문에 슬쩍 빌려써본다면... “자유만큼 책임을 생각하는 익구”^^; 자유주의자에게 있어 그 어떤 모토보다 명징한 신념이 아니지 싶다.


히로가네 겐시의 [정치 9단]이라는 만화에서 주인공 카지 류우스케는 “자유와 책임당”을 창당하는 데 주도적인 역할을 하고 종국에는 총리대신의 자리에 오르게 된다. 자유와 책임당은 신자유주의 색채가 강하지만 개인의 자유를 중시하되 그에 따른 책임을 묻는 정강정책들은 나름대로 매력적이었다. 자유책임당의 약자는 자책당(自責黨)이라고 쓰면 좋을 것 같다. 이승만 전대통령 때문에 자유당이라는 명칭은 이제 거의 쓸 수가 없어졌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맨날 남 손가락질하기 바쁜 정당이 아닌 내 탓을 하고 양심에 가책을 느낄 줄 아는, 자책할 줄 아는 정당이라니 괜찮지 않은가!^^;


지난 2004년 미국 대선에서 뉴욕타임스는 존 케리 민주당 후보를 열렬히 지지한다고 선언했다. 이렇게 정치적 자유를 누리는 것은 뉴욕타임스가 보여주는 반성적 균형(reflective equilibrium)에 대한 신뢰가 있기 때문이다. 반성적 균형은 자신이 옳다고 생각한 것에 대해 외부의 비판을 검토해서 자신의 견해를 수정하고 보완하는 과정을 반복하는 것이다. 여기서 반성적 균형상태는 단순한 산술평균이 아니라 숙고한 반성의 내용이 한쪽으로 치우칠 수도 있다는 점에 주의해야 한다. 설령 특정 후보 지지 같은 편파적인 결정이 나오더라도 그 과정이 공정하다면 불편부당에 위배되는 것은 아니다. 앞에서는 공평한 척하며 뒷구멍으로 온갖 꼼수를 부리는 우리의 일부 언론들을 볼 때 정치적 자유를 누리되 공정 보도, 객관적 분석이라는 책임을 다하는 모습이 참 부럽다.


쇠고기버섯국에 밥을 말아먹는 내내 자유와 책임을 생각했다. 자유로운 선택을 할 여지가 많을 때 그 만큼 책임도 막중해진다. 남 핑계대기 쉽고, 변명으로 떠넘기기 쉬운 세상이지만 그럴 때일수록 자기 몫의 일에 자기 탓을 할 수 있어야한다. 요리학적으로 자유라는 곰국에는 책임이라는 뼈다귀를 푹 고아 삶아야 제 맛이다. 연애학적으로 자유와 책임은 백년해로해야 할 연인인 셈이다. 수학적으로 자유와 책임은 일대일대응이 되어야 한다. 회계학적으로 분개할 때 차변에 얼마만큼의 자유를 쓰면, 대변에는 그만큼의 책임을 기입해야 대차평균의 원리가 맞는다. 점심시간 동안의 사색을 통해 앞으로는 주어진 자유만큼의 책임을 다했는가하는 자유책임분석(Liberty-Responsibility Analysis)을 생활화해야겠다는 결론을 내렸다(경영학의 비용편익분석에서 영감을 얻었음). 이만하면 오늘 밥값은 한 셈이다.^^ - [憂弱]
Posted by 익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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