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넷 검색을 하던 중에 ["조선찌라시·맹바기·발끈해공주" 고대 시험예문 파문]이라는 8월 10일자 경향신문 기사를 보고 무척 놀랐습니다. 제가 2004년 2학기에 강의를 들었던 경제원론1 중간고사 문제가 보도되었거든요. 그 시험문제에는 "조선찌라시/ 월간조선찌라시뺑끼칠/ 맹바기나라/ 딴나라의 화폐단위는 친미/ 발끈해 공주/ 國害擬員인지 寄生層인지 정체가 불분명한 주성영씨" 등의 표현이 나옵니다. 아마도 특정 정당의 정치인들과 일부 언론을 비하하는 표현이 나와서 뒤늦게 언론을 탄 것 같습니다.


경제원론 재수강을 어떤 분을 들을까 하다가 친구의 추천으로 이 선생님의 강의를 듣게 되어 한 학기 동안 쉽고 재미나게 배울 수 있어서 개인적으로 즐거운 추억으로 간직하고 있습니다. 돌이켜보니 학기 중에 강의용 클럽게시판에서 시험문제의 인명이나 단위가 편향된 것이 아니냐는 어떤 학우 분의 지적이 있었습니다. 저 또한 그 때 일을 계기로 편파성이라는 것에 대해 다시금 생각해보기도 했고요. 편파적인 채점 시비가 아닌 이런 정도의 시험 출제가 문제시되는 것을 보면서 표현의 자유에 과도한 비용을 요구하는 것인지는 아닌지 씁쓸합니다.


언론 보도 이후 선생님께서는 수강생들과 문제지에 실린 모든 이들께 사과한다는 요지의 사과문을 보내왔습니다. 사실 이만한 일로 사과까지 하고 불이익을 걱정해야하는가 안타깝습니다. 물론 경제학 강의였고 정치적 사안에 대한 언급은 거의 없었기 때문에 시험 문제에 그런 식의 표현들이 등장하는 것은 다소 부적절하다고 볼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분명 강사의 편파성 자체가 문제는 아니라고 봅니다. 강사의 해석이 과연 타당한 논거로 적실성 있게 주장되고 있는지 여부가 강의 시간만으로는 파악하기 어려웠다는 점이 지적될 수는 있습니다. 강의 시간에는 별 말 없다가 시험 문제는 덜컥 그런 식으로 나오면 당황할 수도 있다는 점에서 말입니다(그런데 시험에 앞서 단위 등을 비꼬아서 낼 것이니 주의해서 풀라고 누차 강조해주셨습니다).


문제 상의 인명과 단위가 명목적(nominal)이 아니라 특정인을 비하하고 조소할 의도가 있었다고 해도 좀 어떻습니까. 교양과목 강의에 그 정도의 여유와 풍자도 들어갈 틈이 없다면 너무 팍팍하겠지요. 물론 일부 의뭉스러운 보수 세력들이 밉살맞아서 이런 문제들을 내셨겠지만 크게 악의에 차 보이지도 않고요. 선생님께서는 사과를 하는 것으로 이번 사건을 마무리지으시려고 하는 것 같습니다. 어쩌면 앞으로 이런 식의 센스가 돋보이는 문제를 출제하지 않으실지도 모르고요. 차라리 경제학 또한 가치와 인간이 빠질 수 없는 학문이라는 것을 밝히고, 난이도도 높일 겸 교수 재량으로 문제를 좀 비틀거나 희화화하여 내는 것을 너그러이 양해해달라고 하셨으면 어땠을까 생각해봅니다.


저는 시험 문제를 풀고 나서 개인적으로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 사람들을 풍자해서 시원하기도 했지만 한편으로는 역으로 생각해봤습니다. 노무현 대통령을 개구리나 놈현으로, 열린우리당을 닫힌너네당, 돼지우리당으로, 유시민 의원을 개시민 등으로 표현한 시험문제를 받아 들고서는 처음에는 기분이 언짢을 수도 있겠지요. 하지만 교수 개인의 좋고싫음 자체를 구박하고 싶지는 않습니다. 가기업, 나기업, 다기업... A씨, B씨, C씨... 원, 달러, 위안 대신에 개인의 편향이 가미된 것이 좀 들어가는 것 정도는 용인할 수 있다고 봅니다. 강의 열성적으로 해주고, 시험문제 깔끔하고, 채점 또한 공정하다면 딱히 시비 걸 까닭이 없지요. 오히려 제가 좋아하고 제가 믿는 바의 허술한 점을 집어주고 비판해줘서 발전의 계기를 만들어 준다면 제자로서 감사할 노릇입니다. 여하간 학교를 비롯한 사회 전반에서 때로는 극단적이거나 유치한 표현까지도 수용할 수 있는 자유주의의 너른 포용력이 발휘되었으면 합니다.


살펴보면 불편부당(不偏不黨)을 주창하면서 뒷구멍으로는 추악한 편들기를 하는 자들이 적지 않습니다. 자기 생각을 솔직하게 드러냄으로써 사상의 자유시장에서 티격태격하다가 생채기 나는 것은 회피하면서 말입니다. 자신의 표현에는 비용을 지불하지 않으면서 남의 표현에는 과도한 비용을 지불하도록 하는 것은 상도덕에 어긋나는 처사일 겁니다.


그런데 다원화된 사회가 될수록 옳고/그름의 문제보다는 그저 다름의 문제에 봉착하게 되는 경우가 늘어납니다. 유시민 선생의 표현대로 "한 점의 오류도 없는 사상이나 단 한 톨의 진실도 담지 않은 사상은 없"기 때문입니다. 옳고 그름은 판정 내리기가 비교적 쉽지만, 다름의 문제 앞에서는 선택의 자유를 움켜쥐고는 하염없이 고독해집니다. 실컷 고심해서 내놓은 결론도 남의 입장에서는 또 하나의 편파적이고 자기본위의 주장이기 일쑤입니다. 아무리 애를 써도 우리는 깔끔한 객관성과 담백한 평형감각이라는 이데아(idea)는 확보할 수 없을지 모릅니다.


이런 어려움 때문에 당최 편파적인 것이 염려된다면 존 롤즈가 말한 반성적 균형(reflective equilibrium)을 지향해보면 좋을 것 같습니다. 반성적 균형은 자신이 옳다고 생각한 것에 대해 외부의 비판을 검토해서 자신의 견해를 수정하고 보완하는 과정을 반복하는 것입니다. 자신의 생각을 타인과의 관계에서 다시 한번 평가하고, 스스로 다시 궁리하여 보다 나은 접점을 찾으려는 노력으로 중용(中庸)과 비슷한 개념이지요. 결국 조금 더 합리적인 의사결정을 하기 위해 자신의 직관적 판단(개인적 선호)에서 시작하여 끊임없이 숙고하여 적절한 상태에 도달하려는 노력입니다. 여기서 반성적 균형상태는 단순한 산술평균이 아니라 숙고한 반성의 내용이 한쪽으로 치우칠 수도 있다는 점이 포인트입니다.


저는 치열하게 고민해서 나온 결과물을 가지고 당당히 편파적(!)으로 사는 멋진 사람들이 많아졌으면 합니다. '즐거운 편벽됨'이 우리네 삶을 보다 윤택하고 촉촉하게 만들어 주리라 믿습니다. 결론으로 이르는 과정이 진실하고 합리적이어야 한다는 자세를 갖춘다면 말입니다. 저 또한 과정상의 엄격함과 성실함을 확보한다면 누구든 자유로이 발언할 수 있는 분위기가 조성되는데 일조하고 싶습니다. 끝으로 존경하는 경제원론 선생님께서 앞으로도 고대 학우들께 좋은 강의 해주시길 부탁드리며 내내 건승하시길 바랍니다. 선생님께서 즐겨하시는 말씀으로 이 글을 마칩니다. "평안하시길..." - [憂弱]

<참고기사>
- "조선찌라시·맹바기·발끈해공주" 고대 시험예문 파문(이걸 꾸욱~)
- '딴나라'의 '발끈해 공주'가 가격규제 한다면?(이걸 꾸욱~)
Posted by 익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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