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아산 김윤규 부회장의 퇴진을 둘러싼 현대아산과 북한의 갈등이 심화되고 있다. 다시금 대북사업의 리스크를 실감하게 하는 사건이다. “비리 경영인 인사조치가 잘못된 것이라면 비굴한 이익보다 정직한 양심을 택하겠다”는 현정은 회장의 선언도 예사롭지 않다. 이렇게 신뢰도 떨어지는 상대방과 계속 교류를 나눠야 하는지 회의감도 적지 않다. 현대가 막대한 투자를 통해 얻어낸 독점사업권을 이렇게 간단히 무시한다면 대북사업 전체의 신뢰도에 치명적인 타격이 될 것이다. 상도덕을 준수하지 않는 상대와 무슨 사업이며, 지원이란 말인가.


북한은 “100% 포식하려 들지 말고 80% 정도의 포만감에 만족해야 한다”는 김대중 전 대통령의 충고를 경청해야 한다. 걸핏하면 민족공조를 외치면서 조금만 배알이 뒤틀리면 습관성(?) 몽니를 부리는 자세는 적절치 않다. 북한은 남한 사람들이 금강산과 개성이 정말 볼 것이 풍부해서 비싼 돈 내며 관광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 이런저런 불편함을 감수하고 북한을 굳이 찾아가는 이들이 어떤 안쓰러운 마음으로 북녘 땅을 밟고 있는지를 헤아릴 필요가 있다.


칸트는 영구평화론(Zum ewigen Frieden)에서 영구 평화는 두 가지 조건이 충족될 때 가능하다고 설파한다. 자본주의의 확산과, 민주주의의 심화가 그것이다. 슬프게도 북한은 이 두 조건 모두를 충족시키고 있지 못하다. 오히려 핵을 이용한 협박으로 세계평화를 위협하고 있다. 김정일 정권은 제 인민들을 굶겨 죽이면서도 폭압적 전제정치만 고수하고 있다. 이처럼 지구상에서 가장 어처구니없는 나라 중의 하나인 북한과 통일 준비를 해야한다는 것은 심원한 비극이다.


북한은 국가의 안정을 위해 언제나 외부의 적과 전쟁을 벌여야 한다는 영원한 전쟁(perpetual war) 개념을 가장 충실히 하는 나라로 보인다. 네오콘의 대부 레오 스트라우스의 이 개념이 북한에 그대로 적용된다는 것을 볼 때 극과 극은 통한다는 것을 여실히 보여준다. 2000년 남북정상회담 이후 남북 화해무드가 계속되고 있기는 하지만 북한의 안하무인적 태도는 여간 불편한 것이 아니다. 이러다가 “영구적 평화”는커녕 “영원한 전쟁”에 함몰되어 있는 한반도는 “항구적 분단”이 고착되는 것은 아닌가 염려스럽다.


믿음도 산산이 부서질 때가 오고, 눈물도 마를 때가 오며, 사랑도 식을 때가 오게 마련이다. 북녘을 내 나라 땅처럼 여기며 아끼고 챙겨준 이들이 등을 돌리게 해서는 안 될 것이다. 퍼주기라는 비난과 친북주의자라는 꼬리표를 마다치 않았던 이들을 이런 식으로 욕보인다면 곤란하다. 믿음의 자리에 실망이, 슬픔보다는 성냄이, 사랑 대신 증오가 싹 트지 말라는 법도 없다. 북한 인민과 남한 국민들을 볼모로 호의호식하는 한줌의 노멘클라투라들은 가슴에 손을 얹고 돌아봐야한다. 시간은 결코 북한 편이 아니다.


아울러 현대 그룹은 교착상태에 빠진 대북사업에 주눅들지 말고 원칙을 흔들림 없이 견지해나가기 바란다. 내정간섭을 끔찍이 싫어하는 북한이 남의 나라, 기업에 간섭하기를 즐기는 것은 아이러니다. 고 정주영, 정몽헌 회장의 유지도 대북사업이 평화통일의 초석이 되기를 바라는 것이지, 북한의 부당한 압력에 굴복하라는 것은 아닐 것이다. 평화통일은 너무나 소중한 지상과제지만 의연하고 당당하게 추진해나가야지, 비굴하게 매달릴 필요는 없다. 현정은 회장의 말대로 대북사업은 지금 기로에 서있다. 대한민국은 몰상식과 파렴치까지 다 받아줄 만큼 만만한 나라가 아니다. - [憂弱]
Posted by 익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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